내가 동물원에 간 이유

대전동물원에서 찍은 동물 사진 몇 컷

등록 2005.07.22 13:14수정 2005.08.12 11: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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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쩌면 우리 시대는 아름다움에 목말라 있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 때가 있습니다. 사람과 사람 사이의 아름다운 관계에 목말라 하고, 아름다운 풍경에 목말라 합니다. 그러다 보니 한 순간만이라도 아름다운 풍경을 붙잡고 싶어서 주말이 되기 무섭게 서둘러 여행을 떠나는 건 아닐는지요?

그래도 아름다운 것에 대한 갈구는 쉽사리 채워지지 않는 듯 합니다. 마음이 쉽게 채워지지 않으니 자연히 말이라도 풍성해야겠지요.


사람들은 아무 곳에나 시도 때도 없이 미학이라는 말을 붙이기 시작했습니다. 비움의 미학이니 느림의 미학이니 하는 것까진 나무랄 생각이 없습니다만, 폭력의 미학이니 콘크리트 미학이니 하는 것은 좀 그렇지요?

세상이 그렇게 미학으로 넘쳐나는 것과 달리 아름다운 관계, 아름다운 풍경에 대한 우리의 갈증은 여전히 가실 줄 모르니 이것 역시 '역설의 미학'이라 할 수 있나요?

동물원에서 배우는 공생의 아름다움

우리가 없는 시간을 쪼개서 짬을 내어 아이들을 데리고, 땀 삐질삐질 흘리며 동물원에 가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책에서만 볼 수 있는 동물의 실제 모습을 보여주고 생태 따위를 설명해주기 위해서?

"자, 봐라! 저것이 바로 사자란다. 갈기가 참 죽여주지 않니?" 혹은 "노랫말처럼 원숭이 똥꼬는 정말 빨갛지 않니?"


설마 이런 것들이 우리가 아이들을 데리고 동물원에 데리고 가는 이유의 전부라고 생각하시는 건 아니시겠지요?

동물의 생태를 이해함으로써 생명이 있는 것은 너나없이 다 아름답다는 걸 깨우치게 하고 왜 사람과 동물이 더불어 살아가지 않으면 안 되는 것인지도 알려 줄 필요가 있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세상천지가 말이 되는 미학, 말도 되지 않는 미학으로 가득한 마당에 미학이란 말을 또 다시 끄집어내기 좀 그렇긴 합니다만, 이것이 바로 '공생의 미학'이 아닌가 합니다.

자, 그럼 더위도 식힐 겸 사랑스런 동물의 세계로 저와 함께 떠나 보실래요?

김유자
왼쪽 사진이 록키산양입니다. 록키산양은 캐나다 북서부 해발 3000m이상 산악지대에서만 서식하는 소목, 소과의 희귀산양이랍니다. 지난 5월 대전동물원이 국내에서 처음으로 출산시켜 자연 포육하는데 성공했다고 떠들썩했답니다.

어미 옆에서 풀 뜯는 흉내를 내고 있는 게 바로 그때 낳은 쌍둥이 아기 록키랍니다. 바라만 봐도 마음이 한가롭고 평화로워지는 것 같지 않나요?

어느 한 순간 정현종 시인의 '그 굽은 곡선'이란 시가 절로 떠오르더군요.

내 그지없이 사랑하느니
풀 뜯고 있는 소들
풀 뜯고 있는 말들의
그 굽은 곡선!

생명의 모습
그 곡선
평화의 노다지
그 곡선

왜 그렇게 못 견디게
좋을까
그 굽은 곡선!

정현종 ' 그 굽은 곡선" 전부


그 옆 사진이 소목 소과에 속하는 돌산양입니다. 녀석 또한 미국의 알래스카 주, 캐나다의 브리티시컬럼비아 주 북부의 산악지대가 고향이랍니다.

고향 생각이라도 하는지 눈빛이 아스라해 보이지요? 사람이나 동물이나 고향을 그리워하는 유전자만은 그리 쉽게 지울 수 없나 봅니다.

김유자
모가지가 길어서 슬프다는 꽃사슴입니다. 모가지가 길면 왜 슬프지요? 전 목이 짧아서 슬픈 데 말입니다. 시인의 감수성이란 정말 남다른 것이 아닌가 싶습니다.

다음 사진이 세상에서 유일하게 남아있는 야생말이라는 몽골야생말입니다. 종종 자기 지방에 있는 말이 야생말이라고 주장하지만, 이 몽골야생말 빼고는 모두 가축의 말이 야생화된 것이라는군요.

가축으로 기르는 말과도 쉽게 교잡되어 말의 조상이라고 생각하는 학자도 있지만, 말과 전혀 관계가 없다고 보는 학자도 많다니, 정말 특이한 존재지요?

김유자

김유자
독수리는 더 이상의 자잘한 설명이 필요없는 새지요? 새참으로 고기를 먹자마자 아주 맹렬하게 날아오르더군요.

그런데 독수리는 날아다니는 건 잘 하지만 걷지는 잘 못한다고 합니다. 독수리 타법이란 말이 아마도 거기서 나온 게 아닌가 싶습니다.

그 아래 노란 눈을 뜨고 바라보는 녀석이 흰올빼미랍니다. 북극권에 사는 조류랍니다. 풀과 나무가 자라지 않는 황무지나 툰드라의 구릉에서 산다고 합니다. 쓸쓸한 곳에서 살기를 즐기는 놈이라서 그럴까요? 눈동자가 제법 고독해 보이기까지 하네요.

김유자
호랑이와 남미물개 사진입니다. 아무 연고도, 혈연관계도 아닌 두 동물을 나란히 놓은 것은 처한 환경이 판이해서랍니다.

호랑이가 늘어지게 하품을 하고 있습니다. 더위에 지쳐버렸는지 눈빛마저 순해 보입니다. 그 눈빛이 마치 "나, 옛날로 돌아가고파"하고 말하는 듯 합니다. 어느 옛날이냐고요? 그야 호랑이 담배 피던 시절이지요.

남미물개는 지금 자맥질이 한창입니다. '물 만난 고기'라더니 '물 만난 물개'가 안성맞춤 아니겠는지요?

김유자
잘 아시다시피 '사막의 배'라고 하는 낙타입니다. 혹이 한 개인 것이 단봉낙타, 두 개인 것이 쌍봉낙타지요. 한꺼번에 물을 많이 마시고 나면 오랫동안 물을 마시지 않아도 견딜 수 있다고 합니다. 그런데 등의 혹은 물을 저장해 두는 곳이 아니라 지방을 저장하는 곳이랍니다.

김유자
알면 사랑한다

어느 새 날이 어두워지고, 등불이 하나 둘 켜지기 시작합니다. '어둠의 미학'이 스러진 자리를 '밝음의 미학'이 채워나갑니다. 집으로 돌아가야 할 시간을 훌쩍 넘겨버린 제 마음도 덩달아 바빠지기 시작합니다.

'느림의 미학'을 부르짖었던 제가 언제 그랬냐는 듯이 '속도의 미학'으로 변절하게 됩니다.

사람들은 '알면 사랑하게 된다'고 합니다. 이 말은 사람이나 식물이나 동물에게도 고루 해당되는 말이 아닐는지요?

사랑하고 싶은 것들의 목록 속에다 오늘 보았던 몇몇 동물을 등재하며 총총히 동물원을 나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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