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석현 대사, 사퇴하고 신문 손떼라

[손석춘 칼럼] 한때 '계몽군주'로 불렸던 언론사주의 추락

등록 2005.07.23 17:21수정 2005.07.24 13: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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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MBC 화면 촬영


썩어도 그렇게 썩으리라곤 미처 생각 못했다. 악취가 진동한다. 정계와 재계와 언론계. 부패의 삼각동맹 구조가 고스란히 드러났다. 대통령을 하겠다고 나선 이회창의 품격도 묻어난다.

삼성그룹 회장 이건희는 또 어떤가. 한국 언론이 '수도사적 경영인'으로 칭송하고, 대학이 명예 철학박사로 추어올린 인물 아닌가. 하지만 그가 불법행위를 서슴지 않고 추진했던 사실이 밝혀졌다. 정경유착의 대표적 보기다.

하지만 무엇보다 악취가 진동하는 것은 언론이다. 홍석현. <중앙일보> 사주다. 그가 벌인 '활약상'은 압권이다. 오죽하면 <동아일보>조차 사설에서 홍씨를 '타락한 정상배'라고 비난했겠는가.

동아일보조차 '타락한 정상배'로 비판한 홍석현

a 23일 오후 서울 중구 태평로 삼성그룹 본관건물 뒷편에 중앙일보사 건물이 보인다.

23일 오후 서울 중구 태평로 삼성그룹 본관건물 뒷편에 중앙일보사 건물이 보인다. ⓒ 오마이뉴스 권우성

실제로 <문화방송> 보도가 사실이라면, 홍씨는 불법적인 정경유착에 깊숙이 개입했고, 선거전략까지 충고했다. "노조와 호남에 아무리 아부해도 안 되니 보수 편에 서라"고 이회창 후보에게 말했다는 대목은 믿겨지지 않는다.

그가 <중앙일보> 지면의 최고결정권자라는 사실은 얼마나 끔찍한가. 실제로 홍씨가 재벌의 불법 정치자금 '심부름'을 하고 대통령후보와 유착했을 때, <중앙일보>는 노골적으로 편파보도를 했다. 과연 그가 신문사를 소유할 자격이 있는지 냉엄하게 묻지 않을 수 없다. 편집권이 사주에게 있는 오늘의 신문현실이 지닌 위험성을 새삼 확인할 수 있다.

하지만 문제는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보라. <중앙일보> 7월 23일자 사설을. 제목부터 심상치 않다. 「'X파일', 도청의 진상규명이 먼저다.」 사설은 "소위 'X파일'이라는 것이 세상을 떠들썩하게 만들고 있다. 누구도 확인할 수 없는 이 괴문건에 온 나라가 휩쓸려 들고 있다. 그것이 진실이냐 아니냐는 뒷전에 있다"라며 사뭇 '개탄'한다. 심지어 "어쩌면 '헛것'을 좇아 흥분하고 있는지도 모른"단다. 과연 그러한가.


마침내 "문제의 본질"은 "도청"이라고 강조한다. 물론, 도청은 그것대로 밝혀야 옳다. 국가정보원의 전신인 국가안전기획부가 비밀 도청팀을 운영한 사실은 용서할 수 없는 범법행위다. 하지만 불법도청이 문제라고 해서 도청된 내용을 묵살할 수는 없는 일이다. 그 내용이 단순범죄를 넘어 민주주의를 유린하는 것이라면 더더욱 그렇다.

그런데도 당사자인 홍석현 주미대사는 언죽번죽 말했다. "오래된 일이라 전혀 기억이 나지 않는다." 앞으로의 대응방안에 대해서도 "여기 올 때도 뜻대로 된 게 아니다. 앞으로도 큰 흐름에 맡기겠다"고 밝혔다. 참으로 부끄러움을 모르는 사람 아닌가. 대체 그가 생각하는 '큰 흐름'이란 무엇을 염두에 둔 것일까.


그래서다. 명토박아 둔다. 홍석현 주미대사와 <중앙일보>는 사과부터 하라. 그게 한때는 윤똑똑이들로부터 '계몽군주'로 불렸던 언론사 사주로서 그나마 명예를 지키는 길이다. 언론인의 길을 꿋꿋하게 걸어가려는 <중앙일보>의 젊은 기자들을 위해서라도 그렇다. <중앙일보> 고위간부들도 마찬가지다. 위기에 처한 '사주'의 눈에 들기 위해 사태를 호도하려 들수록, 그나마 유지하고 있는 신문의 품격만 떨어질 따름이다.

노 대통령도 '진실 규명' 의지 밝힐 때

물론, 사과를 한다고 모든 게 해결될 일은 아니다. 홍씨는 주미대사직에서 곧장 사퇴해야 옳다. 그 모습으로 유엔사무총장에 나서겠다면 국가적 수치다. <중앙일보>를 살리겠다면, 신문사 일에서도 그만 손을 떼기 바란다.

마지막으로 사법당국에 촉구한다. '눈치'를 살필 때가 아니다. <중앙일보> 주장대로 녹음내용의 진상을 규명하기 위해서라도 수사는 불가피하다. 명백히 불법을 모의했는데 그걸 모르쇠 한다면 더이상 검찰이 아니다. 게다가 삼성의 떡고물이 검찰에도 흘러갔다는 내용까지 있지 않은가. 검찰의 명예를 걸고 진상을 밝힐 일이다. 구렁이 담 넘어가듯 넘길 일이 결코 아니다. 노무현 대통령부터 진실규명에 분명한 의지를 밝혀야 옳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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