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기원
다른 생명체들의 눈에 띄는 것이 결코 이롭지 않다는 걸 알고 있는 녀석들이 나름대로 자신의 목숨을 지키기 위한 방법이겠지요. 날카로운 발톱도 이빨도 없는 녀석들, 날개라고는 흔적만 남아 날 수도 없는 녀석들, 다리는 여섯 개나 있지만 빨리 달릴 재주가 없어 위급한 상황에서는 다리를 떼어 내고라도 도망가야 하는 녀석들입니다. 그래서 남들의 눈에 띄길 원하지 않습니다.
얼마 전에 가까운 사람들과 어울려 맥주를 마시러 간 적이 있습니다. 시원한 맥주 맛과 흥겨운 대화에 취해 앉아 있는데 아르바이트 하는 아가씨가 서비스라며 쥐포 몇 마리를 가지고 왔습니다. 고맙다며 받아 놓는데 그 아가씨가 머뭇대며 내게 인사를 했습니다.
"선생님, 안녕하세요. 저 기억 나세요?"
예상치 못한 상황에서 제자라며 인사하는 녀석이 솔직히 누구인지 기억이 나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누구냐고 물어 보니 졸업한 학교와 이름을 얘기했습니다. 그러고 보니 어렴풋이 기억이 나는 거 같아 겨우 아는 체를 했습니다. 그 녀석은 즐거운 시간이 되시라며 인사를 하고 갔습니다.
졸업생들을 만날 때 녀석들은 선생님이 자신을 기억해 주길 바라고 있습니다. 수많은 아이들을 가르치고 졸업 시키다 보면 흐르는 세월에 묻혀 기억하지 못하는 때도 많다는 걸 녀석들도 이해할 겁니다. 그래도 자신만큼은 기억해 주길 바라는 게 제자들의 바람이겠지요.
만물의 영장이라고 하는 사람들의 욕망 중에 하나는 타인에게서 자신의 존재를 알리고 싶어 하는 마음이 있습니다. 사람은 죽어서 이름을 남긴다는 속담에서도 그러한 욕망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자신의 존재를 숨길 필요가 없는 힘 있는 생명체의 특권이기도 하겠지요.
자신을 숨기며 사는 게 힘없는 생명체들이 사는 법이라면, 자신을 드러내길 바라는 게 힘 있는 생명체들이 사는 법이기도 합니다. 하지만 세상이 그렇게 만만치만은 않습니다. 숨는다고 영원히 숨어살 수 없듯이, 내세우려 애쓴다고 무한정 이름을 휘날릴 수는 없는 일입니다.
남부럽지 않은 힘도 있고 돈도 많은 이들이 최근에 만천하에 드러난 자신들의 치부 때문에 곤경을 치르고 있습니다. 늘 그래왔던 관행일 뿐이었다고, 이미 죄 값은 치렀다고, 억울한 정치 공세일 뿐이라고 흉물스런 자신의 모습을 숨기려 애쓰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