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장] 후안무치한 <중앙> 사설

'삼성 X파일 사건' 관련 중앙일보 7월 25일자 사설을 보고

등록 2005.07.25 14:57수정 2005.07.25 17: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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각 언론사가 자사의 처지에서 특정 사안을 바라보는 건 어찌 보면 자연스러운 것이다. 그 사안이 포함된 복잡한 현상은 개인이건 조직이건 간에 결국 가치관에 의해 주로 형성된 주관적인 판단에 따라 정리가 되기 때문이다.

하지만 각 언론사가 이번 'X파일' 사건을 어떻게 바라볼까 예상해 봤을 때 떠오른 생각들을, 실제 오늘(25일) 드러난 각 사의 사설과 대조해보았을 때에는 씁쓸한 웃음을 지을 수밖에 없었다.

현정부 흔들기의 수단으로까지 확대해석하는 상상력이 풍부한 신문사, 재계 정치계 언론계를 싸잡아 비난하는 '독야청청' 신문사, 삼성을 성역화해서는 안된다고 목소리를 높이는 신문사, 신문법 개정과 관련해 이번 사안을 바라보는 신문사, 하나마나한 소리를 내지르는 신문사 등.

사설이 예상 가능하다는 건 사안의 성격보다는 각 언론사의 처지가 그 동안 취재나 편집 등의 과정에서 더욱 중요한 뉴스 판단 기준이었음을 보여주는 셈이다. 씁쓸함이 든다. 하지만 씁쓸함을 넘어 개탄스러움이 들게 하는 신문사도 있다. 바로 이번 사안에 직접적인 당사자인 <중앙일보>이다.

이번 'X파일' 사건에 대한 중앙일보 사설은 백미다. '하고 싶은 말을 용기 있게 딱 쓰고 퇴고하지 않고 그대로 내보내자'고 다짐하고 쓴 글이라고 밖에 볼 수 없다. 하지만 이건 만용이다.

"...돌이켜보면 1997년 대선 때의 문제로 중앙일보가 겪어야 했던 고초는 말할 수 없이 컸습니다. 대선에서 승리한 김대중 정권은 중앙일보를 압박해 왔고, 그 결과 홍 전 회장은 1999년 탈세 혐의로 구속되기에 이르렀습니다. 말이 '보광 탈세' 사건이지 사실은 선거에서 상대 진영을 도왔다는 괘씸죄였습니다.

이번에 불거진 파일의 내용과 연관이 된 것입니다. 홍 전 회장 본인도 그때 공개적인 사과와 반성을 했습니다. 그로 인해 감옥까지 갔습니다. 그렇다면 일사부재리 원칙이 있듯이 대가는 이미 치렀다고 보아줄 수도 있습니다. 물론 당사자는 끝없는 반성과 자기 성찰을 해야 합니다...."



'97년 대선에서 이 후보를 노골적으로 지지했기 때문에 대선 이후 집권한 정부에 괘씸죄로 고초를 당했다. 당시 탈세 사건은 핑계였다. 또한 그때 고초를 당했으니 처벌은 이미 받았다.' 이런 논리이다. 후안무치의 전형을 보여준다.

당시엔 사주가 보광그룹의 탈세 혐의로 구속된 것이다. 국민의 정부가 어떤 의도를 가졌던 간에 탈세라는 명백한 잘못에 대해 처벌이 이뤄졌던 것이다. 따라서 홍석현 당시 사장의 반성은 언론사 사주도 법치주의의 성역이 아니며 자신도 법을 지키겠다는 자성이었다. 이번 사안과는 별개의 사건이다. 상황이 이러한데 탈세 혐의를 괘씸죄 정도로 여기는 중앙일보의 뻔뻔스러움은 '언론탄압'이라고 부르짖던 그 때와 전혀 달라진 게 없다는 걸 여실히 보여준다.


또한 '객관적이고 공정한 보도에 최선을 다해야 하는 게 언론의 소임'이라는 건 재론의 여지도 없다. 하지만 이 사설에서는 자신들이 무엇을 잘못했는지를 전혀 알지 못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상대 진영을 도왔다는 괘씸죄'라는 표현에선 공정하고 객관적인 보도를 하지 못한 것에 대한 반성은 느껴지지 않고, 오히려 줄을 잘못 섰기 때문에 자사가 고초를 받는다는 말로 이해된다. 일사부재리 운운하는 건 역겹기까지 하다.

이렇다보니 중앙일보가 최근 들어 보이고 있는 '탈(脫)조동' 움직임은 객관공정보도를 위한 선회가 아니라, 줄을 잘못서는 데서 발생할 수 있는 리스크를 줄이기 위한 몸부림 정도로 밖에 보이지 않는다.

신뢰도 회복을 위해선 석고대죄를 해도 시원찮을 텐데, 억울한 점도 있다며 목소리를 높이는 이 신문사가 일등신문이라고 떠들어 대는 우리 언론 시장이 그저 부끄러울 따름이다. 진정성이 담긴 중앙일보의 반성을 촉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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