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 감자는 나의 것!

공부방 아이들과 감자를 캐고 왔습니다.

등록 2005.07.27 16:16수정 2005.07.27 17: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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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 감자캐기 선두주자 김태영

감자캐기 선두주자 김태영 ⓒ 이선미

지난 22일, 춘천의 낮 최고 기온이 34도라고 했습니다. 아침 뉴스를 보고 어찌나 식겁을 했던지. 바로 그 날은 공부방 아이들과 감자를 캐러 가기로 한 날이었거든요.


아시는 분이 춘천시 근처에 있는 인람리에서 토마토며, 감자며 키우고 계셔서 그 집에 전화를 걸어 생떼를 써서 아이들 21명에 선생님들 4명, 총 25명이 무작정 감자 캐러 가겠다고 한 날이었습니다.

a 감자캐는 아이들

감자캐는 아이들 ⓒ 이선미

차 3대를 나누어 타고 굽이굽이 시골길을 달려 30분 만에 도착을 했습니다. 여전히 동선이는 멀미를 합니다. 비포장도로를 5분정도 들어가는데, 동선이는 어쩔 줄 모르고 괴로워했습니다. 얼마나 안쓰럽던지.

드디어 푹푹 찌는 땡볕 더위에 도착한 농가.
보통 새벽부터 일을 하시는데 뒤늦게 오전 11시에 빠글빠글 아이들을 데리고 온 것이 못내 미안했습니다.

우리를 맞아준 선배는 여기서 감자밭에 가려면 차를 타고 다시 5분을 가야한다고 했습니다. 그래서 멀미가 심한 동선이를 비롯한 세 녀석은 농가에 앉혀놓고 나머지 아이들만 데리고 갈 수밖에 없었습니다.

오전임에도 불구하고 어찌나 덥던지.
뜨거운 햇볕아래, 호미를 들고 도착한 감자밭은 보기만 해도 건조하고 뜨거운 흙 기운이 훅훅 달려드는 것 같았습니다.


a 호미질 가르쳐주는 선배와  서툰 호미질의  진규

호미질 가르쳐주는 선배와 서툰 호미질의 진규 ⓒ 이선미

서툰 호미질로 감자를 캐다가 큰 감자를 찍기 일쑤.
아이들은 감자를 찍고 나서 미안한지 선배의 눈치를 살핍니다. 그리고 '찍힌 감자'를 '상자에 넣어? 말어?' 고민을 합니다.

선배가 괜찮으니 상자에 다 담으라고 하자, 아이들은 그제야 신이 나서 마구, 마구 감자를 캡니다.


호미는 여섯 개고 아이들은 18명.

돌아가면서 감자를 캐다가 지쳐서 물먹다가 차로 먼저 돌아간 아이, 감자 상자를 옮기거나 맨손으로 감자를 캐는 것을 시도하는 아이, 형이 캐는 감자를 신기해서 '입으로만' 감자를 캐는 아이 등등 별의별 모습들이 다 보였습니다.

a 아이들이 캔 감자

아이들이 캔 감자 ⓒ 이선미

감자가 제법 잘 캐지고 양도 많아지자 아이들은 일당을 받아야 된다며, 모터가 달린 듯 땅만 보고 감자만 계속 파네요. 이 날 최고의 일꾼은 김태영, 김진규, 박용진 이렇게 세 명의 친구들이었습니다.

태영이는 플라스틱 감자바구니를 매고 땀범벅이 되어서는 묵묵히 감자를 캡니다. 김진규는 왕감자를 캘 때마다 얼굴에 대고는 사진을 찍어달라고 해서, 왕자병이라며 아이들의 질타를 받았지만 감자 하나는 정말 잘 캤습니다. 용진이는 중학교 1학년 형인만큼 아이들 틈에서 자잘하게 감자를 캐지 않고 아예 자기구역을 잡아서 한 상자를 혼자서 너끈히 채웠습니다.

감자 밭 한 줄을 캐고 나니 다들 더위에 지쳐서 그만 중지를 시키고 감자 상자 5개를 낑낑대며 차에 실었습니다.

a 선생님과 감자캐기

선생님과 감자캐기 ⓒ 이선미

그리고 선배 집에 가서 오이냉국에 국수를 말아서 김치를 찢어가며 다들 맛있게 먹었지요. 국수를 먹고 옥수수를 후식으로 먹는데 옥수수가 맛있어서 두개를 뚝딱 해치웠습니다.

날씨만 덥지 않았다면 감자를 더 캘 수 있었을 텐데, 일은 제대로 도와주지 못하고 점심만 축내고 나니 그곳에 사는 선배한테 염치가 없어지기는 했습니다. 그러나 아이들이 자신이 직접 감자를 캤다는 자부심 하나는 정말 대단한 것이어서 염치없더라도 기분은 참 좋습니다. 선배는 감자 두 상자를 주면서 아이들에게 나누어주라고 했습니다.

a 감자캘 때마다 사진찍는 김진규

감자캘 때마다 사진찍는 김진규 ⓒ 이선미

오후 3시가 넘어 공부방에 도착해 아이들에게 감자를 나누어주었습니다. 다들 무거울 텐데 열띤 얼굴로 감자 하나만 더 달라고 떼를 씁니다. 그리고 낑낑대며 감자가 든 봉지를 가지고 갔습니다.

아이들 모두, 이 날의 경험은 있지 못할 추억이 될 것 같습니다.

a 점심으로 먹은 국수

점심으로 먹은 국수 ⓒ 이선미

기다려라, 애들아! 가을엔 고구마가 있단다!

덧붙이는 글 | 이선미 기자는 춘천시민광장 부설 <꾸러기어린이도서관>과 <꾸러기공부방>에서 일하고 있습니다.

덧붙이는 글 이선미 기자는 춘천시민광장 부설 <꾸러기어린이도서관>과 <꾸러기공부방>에서 일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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