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명박 시장님, 직접 휠체어 리프트 타보세요"

장애인이동권연대, 지하철 승강기 설치 촉구

등록 2005.07.27 20:09수정 2005.07.28 09: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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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 집회 참가자들이 이명박 시장의 약속이행을 촉구하고 있다.

집회 참가자들이 이명박 시장의 약속이행을 촉구하고 있다. ⓒ 오마이뉴스 허지웅

27일 오후 2시 서울지하철 4호선 서울역. 장애인이동권연대가 지하철 승강기 설치촉구 집회를 열었다. 이들은 서울시가 당초 모든 지하철 역사에 승강기를 설치하겠다던 약속을 어긴 것을 비판하고 지하철을 타고 서울역에서 혜화역까지 이동하면서 대시민 홍보전을 펼쳤다.

서울시지하철건설본부는 지난달 30일 지하철 역사 승강기 설치 설명회에서 지난해까지 모든 지하철역에 승강기를 설치하겠다던 약속을 뒤엎고 46개 역사에는 승강기 설치가 불가능하다고 밝혀 장애인들의 강한 반발을 산 바 있다.

“장애인도 서울 시민... 인간답게 살고 싶다”

서울지하철 4호선 서울역에서 만난 장애인들은 한눈에도 위태로워 보이는 휠체어 리프트를 타고 보통사람이 1분이면 통과할 거리를 10분 넘게 소요하고 있었다. 행인들은 요란한 음악소리가 들려오는 리프트와 그 위에 올라 타 있는 장애인을 신기한 눈으로 바라봤다. 지난 해 9월 중증장애인 이광섭씨가 리프트를 이용해 이동하던 중 추락 사고가 있었던 곳이다.

이날 이 곳은 집회를 위해 모인 장애인들과 전경들로 인산인해를 이뤘다. 역사 안은 사람들 열기로 금세 후끈해졌다. 장애인들은 혜화역으로 이동하기 전 간단한 소규모 집회를 열었다.

박경석 장애인이동권연대 공동대표는 “서울시가 승강기를 설치할 수 없다는 46개 역사에 대한 재조사를 요구했더니 알아서 조사해 결과물을 가져오라더라”고 전한 뒤 “장애인도 서울시민이 아니던가, 청계천 공사에 엄청난 돈을 쓰면서 왜 당연한 시민의 권리를 무시하는가”라며 이명박 서울시장을 비판했다.

박영희 장애인이동권연대 공동대표도 “서울시는 ‘고작 46개 역사에만 승강기가 설치되지 않았는데 무슨 투쟁을 하느냐’고 말하지만, 승강기가 설치되지 않은 역이 한 개라도 남아 있다는 것은 언제든지 장애인이 떨어져 죽을 수 있다는 셈”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박 공동대표는 2004년까지 승강기 설치를 완료하겠다고 했으니 이명박 서울시장 달력을 2005년으로 바꿔주자”고 꼬집었다.


이날 자리를 함께 한 신석준 사회당 대표는 “한 개 지하철역이 침수되면 그 구간 전체가 마비돼 난리가 나듯 장애인들에게 승강기 없는 지하철역은 사실상 무용지물”이라며 “승강기 설치는 인간이 누려야 할 최소한의 권리를 주장하는 당연한 요구이므로 당당하게 맞서자”고 주장했다.

a 집회 참가자들과 전경들이 뒤 섞여 인산인해를 이루고 있다.

집회 참가자들과 전경들이 뒤 섞여 인산인해를 이루고 있다. ⓒ 오마이뉴스 허지웅


다수 시민들 "당연한 요구".. "방법이 지나치다" 반론도


이후 혜화역으로 이동하던 장애인들은 4호선 회현역과 동대문운동장역에 내려 시민들을 상대로 호소와 홍보를 계속 했다. 시민들은 발걸음을 잠시 멈추고 장애인들의 요구에 귀를 기울였다. 대부분 시민들은 장애인 주장에 깊은 공감을 드러내며 지지의사를 나타냈다.

회현역에서 만난 주부 정명희(47·양천구 목동)씨는 “당연하고 정당한 요구가 아닌가, 똑같이 세금내고 사는 시민인데 장애인들만 차별받는다면 문제가 있는 것”이라며 “선진국 사례를 참고할 필요가 있을 것 같다”고 말했다.

동대문운동장역에서 열차를 기다리던 이혜영(28·수원시 영통)씨는 “장애인들의 요구는 너무나 당연한 것 같다”며 “서울시 입장이 잘 이해가 가지 않는다. 워낙 큰 공사를 좋아하는 시장님이 이런 문제에는 왜 소극적으로 대응하는지 알 수 없다”고 덧붙였다.

반면 장애인들의 주장은 합당하지만 방법에 문제가 있다는 의견도 있었다. 이공련(54·서대문구 홍은동)씨는 “당연히 이런 요구는 들어줘야 하지만 바쁜 사람들도 많은데 지하철역 안에서 이런 식으로 주장을 하는 것은 문제가 있는 것 같다”며 시위방식에 문제를 제기했다.

이날 오후 4시 혜화역에 도착한 장애인들은 역에 설치된 승강기를 이용하여 지상으로 올라갔다. 리프트보다 훨씬 빠르게 이동할 수 있었지만 몸이 불편한 시위대가 다시 모이기까지 적지않은 시간이 걸렸다. 혜화역 4번 출구 앞에 집결한 장애인들은 ‘장애인차별금지법제정을 위한 서명운동’을 벌인 뒤 오후 6시 30분께 자진해산했다.

서울역장 "요구는 타당하지만 현실적으로 어렵다"

이와 관련, 박육규 서울지하철 서울역장은 "장애인들도 똑같이 서울시민 아니냐"며 장애인들의 이동권 보장 요구가 타당하다고 인정했다.

그러나 이들의 요구수용에 대해서는 "현실적 어려움이 있는 게 사실"이라며 난처한 입장을 보였다. 그는 "처음 지을 때부터 승강기를 설치했다면 문제가 없겠지만, 상당수 서울시 지하철 역사가 재보수 공사가 어려운 구조"라며 "비용 등 많은 난제가 있다"고 말했다.

a 혜화역에 도착한 장애인들이 승강기를 이용하여 지상으로 올라오고 있다.

혜화역에 도착한 장애인들이 승강기를 이용하여 지상으로 올라오고 있다. ⓒ 오마이뉴스 허지웅


"이명박 시장, 직접 리프트 타봐야 안다"
[인터뷰] 박경석 장애인이동권연대 공동대표

▲ 박경석 장애인이동권연대 공동대표
ⓒ오마이뉴스 허지웅
- 휠체어 리프트를 이용하는 장애인들을 만났는데 많이 위태로워 보였다.
“리프트 이용은 시간이 오래 걸릴 뿐더러, 언제 어떻게 추락할지 모르는 위험에 늘 노출되어 있다. 리프트는 조금 더 불편한 편의시설이 아니라 장애인 목숨을 앗아가는 살인기계다. 이명박 시장이 직접 서울역에 와서 휠체어 리프트를 타봤으면 좋겠다.”

- 이명박 서울시장이 어떤 약속을 했나.
“2002년 8월 ‘2004년까지 모든 역사에 승강기를 설치하겠다’고 약속했지만 지키고 있지 않다. 그런데 이제 와서 46개 역사는 승강기 설치가 불가능하므로 리프트 97개를 설치하겠다고 일방적인 통보를 했다.”

- 비장애인들에게 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시민분들에게 불편을 끼치면서까지 이런 집회와 선전을 할 수 밖에 없어 죄송하다. 응당 누려야 만 할 인간의 기본권리가 무시되고 있으며 장애인들은 계속 죽음에 내몰리고 있다. 우리가 원하는 것은 우리도 동등하게 지하철을 이용하고 싶다는 것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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