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보 여보, 제발 벼랑 끝에는 가지 마소"

매물도로 낚시를 다녀오다

등록 2005.07.29 14:03수정 2005.07.29 14: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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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주말(23일)을 이용해 낚시를 다녀왔다. 회사 직원들과 오랫동안 낚시를 같이 다닌 지인이 함께 부산을 출발해 경남 통영 선착장에서 배를 타고 1시간을 달려 매물도에 도착했다.


내가 <오마이뉴스>의 시민기자가 되면서 모든 면에서 많이 달라졌다. 낚시를 다녀 본 사람은 잘 알겠지만 떠나기 전에 이것저것 준비해야 될 것이 한두 가지가 아니다. 그러나 오늘은 낚시 채비도 취재 위주로 바뀌어 가장 먼저 카메라를 챙겼다.

그런데 아뿔싸! 회사 사무실 책상 위에 카메라를 두고 왔다. 회사에 모여 가지고 갈 짐을 점검하면서 카메라를 너무 신중히 모신(?) 탓이었다. 야영을 위해 라면과 김치를 사고 포장마차에서 받아 든 시원한 콩국을 들고 차에 올라 바로 출발해 버렸다. 남해고속도로를 막 진입한 순간에 카메라가 생각났다. 이것이 초보 기자의 한계였다. 아직 투철한 기자 정신이 몸에 배지 않아서인가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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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쮸쮸바의 유혹> ⓒ 정수권

그동안 낚시도 수년간 출조했지만 나의 낚시 수준은 어느 소설가가 해설해 놓은 '구조오작위(九釣五作尉)' 중 '조졸(釣卒)'을 겨우 벗어난 '조사(釣肆)' 등급이었다. 즉 '낚시를 간다'고 하면 될 것을 꼭 '출조한다'로 말하고 '입질이 온다'를 '어신이 온다'로, '고기를 못 잡았다'는 '조황이 부진했다' 등으로 어렵게 말하며 이따만한 대물을 잡았네, 놓쳤네 하면서 허풍을 보탠 너스레를 떠는 단계다.

그런데 기자가 되면서 단번에 3단계를 뛰어넘어 '낚싯대를 드리우고 세월을 낚는다'는 '조차(釣且)' 단계에 이르렀다. 솔직히 그 전에는 배를 타고 갯바위에 내리자마자 앞뒤좌우 살펴볼 겨를도 없이 장대를 펼쳐들고 고기야, 고기야 하면서 이리저리 고기 잡는 데만 온 신경을 집중했다.

그러나 이제는 아니다. 섬에 내려 주고 돌아가는 배를 향해 손을 흔들었다. 그리고 천천히 주위를 둘러보았다. 아! 매물도 서쪽 끝에서 바라보는 낙조는 황홀했다. 이름 모를 섬에 걸린 해가 지면서 멀리 수평선까지 노을이 물들었고, 건너편 소매물도 너무 아름다웠다. 가족과 함께 휴가를 저기서 보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좌우 양쪽에 미리 와서 자리 잡은 또 다른 꾼들에게도 손을 높이 들어 "많이 잡았수?"하면서 인사를 건넸다. 그렇게 덥던 날씨도 해가 지고 바람이 불면서 많이 시원해졌다. 풀 한 포기 나무 한 그루 없어 보이는 돌섬도 자세히 들여다 보니 그곳에도 이름 모를 풀들이 자라고 갈라진 바위 틈엔 원추리 꽃 한 송이가 피어 있었다. 경이로웠다. 이럴 때일수록 그놈의 디카가 생각나 더욱 애석했다.


통영 선착장에 도착했을 때, 남해 각지에서 온 많은 꾼들과 함께 타고 온 배에서 하나 둘씩 모두 내리고 우리 일행 4명이 맨 나중에 남았다. 내릴 장소를 찾아 이리저리 몇 군데 배를 대어 보다가 장소가 너무 협소해 결국 함께 내리지 못하고 나와 회사에서 함께 근무하는 정 이사가 먼저 내렸다.

같이 있지 못해 아쉬웠지만 내일 아침 철수할 때 보자며 회사 사장님과 지인은 다른 곳으로 이동했다. 사전에 혹시나 하고 숙식비품을 대충 나누긴 했지만 막상 갯바위에 내려 살펴 보니 라면과 콩국, 그리고 가장 중요한 얼음이 몽땅 저쪽으로 가버렸다. 아쉽지만 할 수 없었다. 이럴 땐 다른 간식거리로 견뎌내야 한다. 다행이 먹을 물은 충분했다. 만약 이 더위에 물이 없다면 생각만 해도 끔찍하다.

그리고 그 자리에 전날 누군가가 낚시를 마치고 돌아가면서 얼마나 바빴던지 상표도 뜯지 않은 랜턴을 두고 갔다. 낚시를 다니다 보면 가끔 이런 횡재(?)를 할 때가 있다. 밀물 때라 바위 위로 바닷물이 차오르면서 어느덧 어둠이 내려 주위가 캄캄해졌다. 멀리 섬들의 불빛이 빛나고 바다 위를 달리는 배들도 하나둘씩 불이 켜졌다. 예전에는 좀처럼 올려다 보지 못한 하늘도 오늘은 맘껏 쳐다봤다, 주먹만한 별들이 금방이라도 쏟아져 내릴 것 같았다.

늦은 저녁을 도시락으로 때우고 펼쳐둔 낚싯대를 바라보며 이런저런 상념에 잠겨 있을 때, 건너편에서 낚시를 하던 정 이사가 "어어, 큰일났다"며 연신 손전등을 파도치는 발 아래로 비추며 내려가려고 안간힘을 쓰고 있었다. 나도 랜턴을 들고 비춰 보니 이런 세상에! 고기를 담아둘 쿨러, 보조가방, 낚싯대가 파도에 둥둥 떠 있었다. 바닷물이 찰 것을 예상하고 조금 높은 곳으로 올려 놓은 짐들이건만 결국 물에 잠긴 것이었다. 난리도 그런 난리가 없었다.


한바탕 홍역을 치렀다. 정 이사가 엄청 고생을 했다. 다행히 파도가 갯바위 계곡 쪽으로 밀려와서 어렵게나마 건질 수 있었지만, 결국 물통은 잃어 버리고 바닷물이 스며든 짐들은 엉망이었다. 우리 두 사람도 물이 차오르는 바람에 계곡을 사이에 두고 이산가족이 되었다. 간신히 벼랑 끝에 몸을 의지하고 밤참인 건빵, 오이, 복숭아를 낚싯대에 매달아 건네주며 서로의 안전을 당부했다. 그제야 뜬 달빛이 주위를 비추어 그나마 다행이었다. 지친 몸, 등 붙여 누울 자리도 없어 바위에 기대어 쉬고 있을 때 전화가 왔다. 아내였다.

"벼랑 끝에 가지 마소."

또 그 소리다. 알았다며 전화를 끊었다.

나는 벼랑 끝을 좋아한다. 그런 곳일수록 고기가 잘 잡힌다. 딱 한 번, 아내가 가까운 바다로 낚시를 따라 갔다가 낭떠러지 끝에 선 나를 보고 제발 내려오라며 통 사정을 했다. 그동안 돌이켜 보면 한 마리의 고기를 더 잡기 위해 어둠 속의 벼랑 끝을 무수히 헤맸다. 그러나 이제는 대물보다는 '세월을 낚는' 조차(釣且)다.

밤바람이 시원하다 못해 추웠다. 발 밑이 한길 낭떠러지라 잠도 제대로 잘 수 없다. 모기가 엄청 달려들었다. 오랜만에 놈들이 포식을 한다.

어느덧 시간은 흘러 새벽이 오면서 주위가 점점 밝아졌다. 서쪽 끝 바위 밑이라 일출을 보지 못해 아쉬웠다. 피곤한 몸을 추스르고 밤새 드리웠던 빈 낚싯대를 걷었다. 묵직한 것이 고기보다 세월이 먼저 걸려 있었다. 여기까지 와서 그냥 갈 수는 없어 하루 중 낚시가 가장 잘 되는 아침 시간이라, 손맛 한 번 보자고 방금 던진 낚싯대가 휘청했다. 감성돔일까? 얼른 챔질을 했다. 그런데, 어라? 술뱅이.

그 옛날 바다 낚시를 시작하면서 내가 맨 처음 낚은 고기가 술뱅이였다. 희한하게 생긴 고기를 들고 함께 간 일행들에게 물어 보자 술뱅이란다. 참으로 걸작이다. 처음에는 술주정뱅이로 들었는데, 어쩌면 그렇게 그 고기와 딱 맞는 이름을 지었을까 탄복했다. 고기가 술을 마실 줄 안다면 틀림없이 이 색깔일 것이다. 울긋불긋한 색채가 화려함이 지나쳐 싸구려스러웠다. 이놈의 이름은 '놀래기'다. 놀래기과에 속하며 술뱅이는 방언이다.

한참 들여다 보다 얼른 놓아 주었다. 계속 잡았지만 모두 돌려 보내 주었다. 낚싯대와 빈 쿨러를 챙겼다. 아주 가벼웠다. 아침 햇살이 따가웠다. 저 멀리서 우리를 태우고 갈 배가 천천히 오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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