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장] 대법원 음란판결, 무식인가 편협인가?

김인규 교사 작품에 대한 음란판결을 접하고

등록 2005.07.28 11:53수정 2005.08.24 22: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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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 금강자연미술비엔날레 출품작 <구공주경찰서 유치장>. 김인규, 사진설치.

금강자연미술비엔날레 출품작 <구공주경찰서 유치장>. 김인규, 사진설치. ⓒ 임재광

내가 미국에서 공부를 마치고 돌아온 1999년 무렵 어느 지인의 전시장에서 김인규를 만났다. 나에게 그는 친구의 동생이며 고등학교와 대학의 후배로서 평소 잘 아는 사이다. 그날 그는 나에게 자신의 고민을 말했다. 시골에서 교직생활을 하며 작업을 하고 있는 자기로서는 작품의 발표기회를 갖기 어렵다는 것이었다. 미술가가 창작의 욕구를 이어가기 위해서는 계속적인 발표와 평가의 과정이 있어야 함에도 그 길이 없음을 안타까워 하는 것이었다.

나는 인터넷을 통한 작품 활동을 권유하였다. 그는 당시 매우 개념적인 작업을 하고 있었기 때문에 인터넷을 이용한 활동에 적합해 보였다. 그의 작품에서 가장 중요한 요소는 사진을 매체로 한다는 점이었다. 환경과 인간에 대한 관심을 어떻게 표현할까 고심하고 있었고 출퇴근길에 차에 치어 죽어있는 동물의 시체를 사진으로 기록하고 있었다. 그런 개념의 작품이라면 웹상에서도 효과적일 것이라 판단하였다.


또 한 가지는 사진의 역사에 관한 독특한 개념의 설정이었다. 그의 말에 의하면 미술사의 연장선상에서 사진의 역사를 볼 수 있는데 사진이 아름다움에 대한 허상의 강조로 현실과는 동떨어진 기형의 인간형을 만들어내어 왜곡하고 있다는 것이다. 사진은 오히려 리얼리즘에 반하는 것이며 현실을 왜곡하여 허상을 유포한다는 것이다. 그러한 개념을 작품화 하겠다는 계획을 말했다.

그 후 오래 만나지 못했고 부부사진으로 떠들썩해 진 이후 그의 홈페이지를 방문하여 살펴 보았다. 나와 이야기를 나누었듯이 도로에서 횡사한 동물들의 사진들이 시리즈로 되어있는 부분과 그의 과거작품들이 있었고 문제의 사진이 들어 있는 작품을 볼 수 있었다. 그가 말한 대로 사진의 역사를 자신의 독특한 시각으로 해석한 나레이티브와 함께 여러 장의 사진들이 연결되어 있었다. 과거의 사실주의 회화, 근대 이후의 이미지들, 그리고 마릴린 몬로와 같은 미의 이상형으로 우상화되어 있는 사진들과 함께 자신들의 리얼리스틱한 사진을 제시하며 사진으로 인해 유포되고 세뇌된 허상의 이미지가 아닌 현실을 그대로 보고 이해하자는 의미의 글을 올려놓았다.

그의 작품은 여러 장의 사진들과 글을 하나로 묶어 한점의 작품으로 보아야 하며 전체의 맥락에서 이해를 해야 하는 작품이다. 그러나 당시 세간의 관심은 오로지 그 한 장의 사진에 쏠려 있었고 그것을 가지고 유치한 논쟁을 벌이고 있었다. 그가 문제의 사진에 붙인 글에서도 밝혔듯이 왜곡된 허상의 이미지가 아닌 평범한 우리 몸을 직시하고 스스로의 신체를 사랑하자는 뜻의 작품에 어떻게 <음란>을 갖다 붙일 수 있는지 아무리 해도 이해가 되지 않았다. 다행히 1, 2심 판결에서 무죄로 판결이 났다기에 당연한 귀결이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그러나 대법원에서 그 판결이 뒤집어졌다는 소식은 내 귀를 의심케 하는 어리둥절한 일이다.

법률의 논리는 상식의 논리와는 다른 것인지? 아무리 생각 해 보아도 대법원의 판결을 이해 할 수 없다.

나는 그와 같은 현직 미술교사이면서 미술평론가 라는 명함으로 활동을 하고 있다. 수년간 세계미술의 최전선인 뉴욕에서 헤아릴 수 없이 많은 미술작품을 보았고 현재도 국내외의 미술작품을 보며 살고 있다. 다른 미술작품들에 대해 일일이 열거하기도 싫고 구구하게 말조차 하고 싶지 않다. 내가 살고 있는 이 사회가 답답할 뿐이다. 편협하고 아집에 찬 법의 한계를 절실히 느끼며 절망할 뿐이다.


김인규 교사는 그동안 광주비엔날레와 금강자연미술비엔날레 등에 초대되어 훌륭한 작품을 보여주었고 학교 미술수업에서의 새로운 지평을 여는 프로젝트 수업 모형을 개발하여 보급하였으며 대안교과서를 집필하였고 미술교육의 문제점으로 지적되고 있는 실기중심, 기능중심 미술교육을 개선하여 시각미술교육의 새로운 방향을 제시하는 연구에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다. 뿐만 아니라 고향이며 생활근거지인 서천에서 지역문화에 기여하는 중요한 역할을 수행하고 있다.

문제가 있은 이후 그는 혹독한 어려움을 이겨내고 성실히 살아왔다. 작품의 어느 한 구석에도 음란성은 찾아 볼 수 없으며 일상생활에서도 신망을 받고 있다. 이 판결로 인해 그가 교육계를 떠나야 된다면 한국교육계로서는 큰 손실임은 물론 선량한 개인을 두 번 죽이는 일이며 이는 법을 빙자한 무자비한 폭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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