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장] 음란물 판단은 관람자에게 맡겨라

등록 2005.07.28 12:29수정 2005.07.28 14:42
0
원고료로 응원
중학교 미술교사 부부가 인터넷 홈페이지에 올린 맨몸 사진과 남녀 성기 그림에 대해 대법원이 무죄를 선고한 원심을 깨고 음란물이라는 판결을 내렸다. 즉 대법원은 2년 7개월의 심리 끝에 태안 안면중 김인규 미술 교사에게 음란물을 인터넷 홈페이지에 게재한 혐의(전기통신 기본법 위반)로 일부 유죄(6점 중 3점) 취지로 고법에 파기 환송 조치했다.

재판부는 판결의 근거로 "음란이란 보통사람의 성욕을 자극해 성적 흥분을 유발하거나 정상적인 성적 수치심을 해쳐 성적 도의관념에 반하는 것", "음란물 여부는 표현물 제작자의 주관적 의도가 아닌, 사회 평균인의 입장에서 그 시대의 통념에 따라 객관적 규범적으로 평가해야 한다"라고 밝혔다.


이 사건은 처음부터 표현의 자유를 둘러싼 많은 논란을 불러일으키며 세간의 많은 관심을 모았다. 아마 재판부는 그것을 의식하고 이런 '표현의 자유' 논란 시비를 막기 위해서 '제작자의 주관적 의도가 아닌 객관적 규범적 평가'를 음란물 판단의 기준이 되어야 한다는 점을 판결의 근거로 내세운 것 같다.

사실 주관적 의도로 치면 김인규 교사가 이를 통해 어떤 상업적 이득을 취한 것도 없고 또한 건실한 중학교 교사이니 만큼 음란물 제작을 했다고 판단하기 어려울 것이다.

그런데 음란물 판단에 있어 주관적 의도라는 것은 통념에 따른 객관적 평가와 매우 긴밀히 연관되어 있다는 것이다. 나체 그림은 명화들에서 많이 볼 수 있고 또 여성의 성기를 정밀하게 묘사한 그림 역시 산부인과와 관련된 의학 서적에서 쉽게 찾아 볼 수 있다. 그러나 누구도 그것을 음란물이라고 하지 않으며 아무도 거기에서 어떤 성적인 연상을 떠올리지 않는다. 그것은 바로 그것이 어떤 성적 충동을 자극하기 위해서 제작되지 않았기 때문이며 그에 따라 그것을 찾는 사람 역시 어떤 성적인 목적 때문에 그것을 찾지 않기 때문이다.

주관적 의도라는 점을 제쳐 놓고 순전히 객관적 규범적 측면에서 한번 보자. 처음 이 문제가 논란이 되었을 때 나도 호기심에 김인규 교사의 홈페이지에 들어가 보았다. 그의 홈페이지에 게재된 사진과 그림을 보았는데 본래 그림과 사진에 대해 문외한이라서 그런지 그것의 예술적인 가치에 대해서는 아무런 판단도 내릴 수 없었다.

그러나 동시에 그것 속에서 어떤 성적인 연상도 들지 않았다는 것도 분명하다. 그저 사람의 몸을 표현한 것으로 느껴졌고 아마 예술에 조예가 있는 사람이라면 '로뎅의 생각하는 사람'이나 '앵그르의 샘'에서와 비슷한 어떤 예술적인 감흥을 느낄 수도 있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을 뿐이다.


그렇게 느낀 사람은 나뿐만이 아니다. 심지어 이렇게까지 말하는 사람도 있었다. 1심에서 검사가 음란물이라고 하면서 기소를 했을 때 그것을 보고 어떻게 음란한 연상이 가능하느냐고 하면서 그 검사는 변태임이 틀림없다고 맹비난을 하는 누리꾼조차 있었다는 것이다.

물론 나는 그 검사가 변태라고까지 말하고 싶은 생각은 없다. 주관적인 판단에는 차이가 있기 마련이고 그런 차이를 두고, 아니면 소수라는 이유로 해서 변태로 돌리기 시작하면 누구라도 다 변태로 몰릴 수 있기 때문이다. 다만 김인규 교사의 인터넷 홈페이지에 실린 그림과 사진들이 음란한 연상을 불러일으킬 수 있다는 게 소수의 판단일 수는 있어도 결코 객관적인 것은 아니라는 점이다.


그리고 솔직히 인터넷을 통해 널려 있는 것이 성적 자극을 위한 사진과 그림인데 또한 그런 일상에 훨씬 더 노출되어 있는 것이 요즘 사회인데 누가 그런 그림과 사진에서 성적인 연상을 찾으려 하겠는가 말이다.

1심 재판이 끝나고 김인규 교사는 재판정에서 담당 판사가 대뜸 자신에게 '왜 그런 짓 했어'라고 하는 질문에 매우 당황했고 어처구니없었다고 했다. 그것을 두고도 논란이 많았다. 반말을 하는 판사의 권위적 태도나 미술가의 예술적 행위를 '짓'이라고 표현했다는 것 등 말이다.

그런데 냉정하게 생각해보면 검사나 판사에게 그런 예술적 행위에 대한 판단까지 요구하는 게 무리일 수 있다. 더구나 법적인 잣대를 들이대어 객관화하기를 요구한다는 것은 말이다. 그저 한 개인으로서, 관객으로서, 주관적 판단의 일주체로서만 역할하는데 그들을 내버려 둬야 한다는 것이다. 법적인 판단의 대상에서 이런 작품들을 제외시켜야 한다는 것이다.

그래서 판단은 관람자 일반의 몫이다. 비판과 논란을 통해서 그것은 객관화 되는 과정을 거칠 수 있다. 그리고 그 과정 속에서 문제가 있는 작품은 비판이라는 사회적 징벌을 당하면서 정리되는 과정을 거치도록 한다.

그런 점에서 봤을 때 오히려 음란물 판정에 있어서는 주관적인 의도라는 점이 더 중요하다. 그래서 주관적 의도가 분명하지 않다면 가능한 한 법적인 틀이 아니라 판단은 사회적 평가와 비판의 영역으로 내버려 둬야 한다. 그럴 때 작가나 관람자들은 더 큰 자유와 함께 오히려 더 큰 사회적 책임 속에서 작품들을 대할 수 있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AD

AD

AD

인기기사

  1. 1 억대 연봉이지만 번아웃 "죽을 것 같았다"... 그가 선택한 길 억대 연봉이지만 번아웃 "죽을 것 같았다"... 그가 선택한 길
  2. 2 28년 만에 김장 독립 선언, 시어머니 반응은? 28년 만에 김장 독립 선언, 시어머니 반응은?
  3. 3 체코 언론이 김건희 여사 보도하면서 사라진 단어 '사기꾼' '거짓말'  체코 언론이 김건희 여사 보도하면서 사라진 단어 '사기꾼' '거짓말'
  4. 4 마을에서 먹을 걸 못 삽니다, '식품 사막' 아십니까 마을에서 먹을 걸 못 삽니다, '식품 사막' 아십니까
  5. 5 계엄은 정말 망상일까? 아무도 몰랐던 '청와대 보고서' 계엄은 정말 망상일까? 아무도 몰랐던 '청와대 보고서'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