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도 악어와 살고 있습니까?

스페인 작가 마리아순 란다가 쓴 <침대 밑 악어>

등록 2005.07.28 17:06수정 2005.07.28 21: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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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게 어떤 믿을 수 없는 일이 일어났을 때, 바로 그 순간 나 아닌 누군가에게 그 일을 말하고 싶어진다. 그러나 그 순간 아무도 없다면? 있어도 내 말과 생각을 믿어주지 않는다면? 상상만 해도 슬퍼진다.

이 글은 바로 그런 순간(침대 밑에 악어가 나타난 순간부터)을 글로 써 놓은 책이다. 스페인 사람 마리아순 란다가 쓰고, 우리 나라 사람 유혜경이 옮겼다. 그런 순간은 스페인이나 한국이나 별 차이가 없나 보다. 아니면 현대 문명이라는 것이 전 세계를 같은 문화권으로 바꿔놓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이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들은 누구나 침대 밑 악어처럼 무서운 고독과 외로움을 몸속의 일부처럼 가지고 살아간다. 고독과 외로움은 때론 사람을 집어 삼키기도 한다. 이런 무거운 주제를 마리아순 란다는 아주 재미있게 이야기를 풀어나가고 있다.

책을 읽는 중에는 다음 이야기가 궁금해서 그저 깊은 생각 없이 읽어가다가 끝이 나오는데, 끝까지 읽고 난 후 책을 덮어버리는 것이 아니라 처음으로 다시 돌아가서 책장을 펼치게 된다. 그리고는 문장을 음미하고, 행간에 숨어있는 이야기들을 발견하고는 무겁고 차가운 이야기를 따뜻하고 행복하게 풀어놓은 작가를 다시 보았다.

이 책의 주인공은 JJ다. 그는 금융권에서 일하는 젊은 월급쟁이다. 혼자 살고 있으며, 같은 지점에서 근무하는 소녀 같은 견습사원 엘레나를 좋아하고 있지만 표현은 하지 못하는 총각이다(그는 아마도 선량한 눈빛을 하고 마음도 고운 청년일 것이라는 느낌이다).

JJ는 퇴근 후에 집에 오면 침대 밑으로 구두를 집어 던지는 버릇이 있는데 어느 날 아침 구두를 찾기 위해 침대 밑을 보았을 때, 악어 한 마리를 발견한다. 그리고 그 악어를 발견한 날부터 혼자 사는 JJ는 그 사실을 털어 놓을, 그 사실을 믿어 줄 누군가를 찾는 일이 시작된다(JJ는 현명하게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차근차근 한 가지씩 방법을 찾아간다).

JJ는 악어가 있는 놀이공원에 잃어버린 악어가 있는지 전화를 한다(이 악어를 데려갔으면 하는 마음에). 그러나 동물원 직원은 퉁명스럽게 전화를 끊어버리고, JJ의 이야기를 믿어주지 않는다. 그 다음에는 친구라고 생각하는 정육점 주인에게 도움을 청하나, 정육점 주인 눈에는 그 악어가 보이지 않는다.


악어는 오직 JJ의 구두를 먹고 사는데, JJ는 잡아먹히지 않기 위해 계속 구두를 던져주고, 던져주기 위해 구두를 사러 다닌다. 그러다가 지쳐버린 JJ는 병원에 가서 의사의 진찰을 받는데, 자신의 병이 '크로커다일 병'임을 알게 되고, 처방전 대로 약을 지어 주던 약사의 긴 사설을 듣게 된다.

‘크로커다일 병은 이 시대 최악의 병이오. 사람들이 시골을 떠나, 자연스런 삶의 리듬 그리고 삶과 죽음의 영원한 힘과의 만남을 버린 이후로, 도시에 정착하여 땀과 다른 사람의 노력의 결과를 저버린 이후로 말이야.’-본문 67쪽에서

드디어 악어 정체가 무엇인지 알게 되고, 그 정체를 안 이후에는 책을 읽으면서 빙그레 웃음을 머금고 있는 나를 본다.

크로커다일 알약

효능효과 : 세계적인 수준의 효능 검사에서 크로커다일 알약은 악어 병에 매우 효과적인 약제임이 판명되었음. 적정량을 복용할 경우, 고독, 불안, 애정 결핍증에 효과가 있음. 과도 복용 시 환각상태에 빠질 수 있음. 도시생활의 소외감을 치료하는데 탁월한 효능이 있음.

징후 : 크로커다일 알약은 불안, 버려진 느낌, 심한 소외감과 같은 증세에 나타나는 통증치료에 효과적임. 크로커다일은 고립된 상황과 자위에서 오는 인간관계의 절박함을 치료하는데 쓰임. 또한 인간관계와 의사소통의 어려움, 환각 장애, 잠재적 공격성, 적응 장애 및 심리치료에도 효과적임. -본문 76쪽에서

JJ는 이 약을 먹은 후 부작용이 나타나는데 바로 눈물이 계속 흐르는 것이다. JJ는 흐르는 눈물을 감추기 위해 선글라스를 쓰고 출근 했으나 지점장 구두를 악어처럼 먹으려는 실수를 저지르는 바람에 “집으로 가”라는 지점장의 말을 듣고, 집으로 오는 길에 의사와 약사에게 도움을 요청하려 하나, 의사는 너무 바쁘고, 약사는 그날 하루 휴업이었다.


살아가면서 우리도 그런 일들을 겪는다. 그러나 그럴 때 모두들 바쁘거나 문을 닫고 있어 말조차 할 수 없을 때도 있는데, JJ 상황이 꼭 그랬다.

집에 도착한 JJ에겐 악어가 도리어 친구처럼 느껴졌고, 블라인드를 내린 후에 남은 약을 모두 먹고 잠이 든다. 눈을 떴을 때도 상황은 변함없었지만, 그때 엘레나가 집에 오고, JJ는 처음부터 끝까지 이야기를 털어놓고, 엘레나는 자신에게도 그런 악어가 살고 있는데, 시계를 먹는다고 한다.

따뜻하고 편안한 결말이 무엇보다도 마음에 든다. 이 책은 스페인 청소년 문학상 수상작이라고 한다. 지은이가 철학을 전공해선지, 삶의 철학을 어렵지 않고도 재미있게, 시끄럽거나 튀지 않으면서 나직하게 들려준다. 누구나 외롭다고, 원하지는 않지만 누구나 악어를 키우고 있다고…. 그때 문을 닫지 말고 자신만의 엘레나에게 문을 열어주라고.

글쎄, 우리 나라 청소년들도 이 책을 읽고 나서 그런 위로를 받을지 나는 꽤 늙은 아줌마처럼 좀 걱정이 되긴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청소년과 특히 이십대의 청춘들에게 꼭 권하고 싶다. 우리 모두에게는 누구나 악어가 있으니 그까이꺼 껴안고 살아가면 그 뿐이라고. 대신에 엘레나는 꼭 만들라고.

덧붙이는 글 | 책 제목: 침대 밑 악어
출판사:책씨
지은이:마리아순 란다
옮긴이:유혜경
책 값:7500원

덧붙이는 글 책 제목: 침대 밑 악어
출판사:책씨
지은이:마리아순 란다
옮긴이:유혜경
책 값:7500원

침대 밑 악어

마리아순 란다 지음, 아르날 바예스테르 그림, 유혜경 옮김,
책씨, 2004

이 책의 다른 기사

악어와 동거하는 남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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