악어와 동거하는 남자

고독에 대한 즐거운 상상, <침대 밑 악어>

등록 2004.12.25 12:26수정 2004.12.25 19: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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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 침대 밑에 고독한 악어가 살고 있다면?

a <침대 밑 악어> 마리아순 란다 지음, 유혜경 옮김, 책씨, 115쪽, 7500원

<침대 밑 악어> 마리아순 란다 지음, 유혜경 옮김, 책씨, 115쪽, 7500원 ⓒ 심은식

어느 날 아침 구두를 찾기 위해 침대 밑을 들여다보던 주인공 'JJ'는 깜짝 놀라고 만다. 침대 밑에 악어가 있다니! 급히 정육점 주인인 친구를 불러 악어를 처치하려 하지만 친구의 눈에는 아무 것도 보이지 않는다.


'마리아순 란다’의 소설 <침대 밑 악어>는 그렇게 시작된다. 주인공인 JJ는 침대 밑에 살면서 자신의 신발을 먹어치우는 악어를 위해 매일 값싼 구두를 사러 돌아다닌다. 그의 눈에만 보이는 악어의 정체는 바로 '고독'.

저자는 이러한 고독의 원인을 자신에 대한 불성실함으로 묘사한다. 타인의 시선과 가치관에 길들여져 자신을 내던지는 현대인들에 대한 풍자인 것이다.

본문의 '악어 한 마리의 삶을 인정하는 것은 결코 쉽지 않다'라는 구절처럼 저자는 주인공 JJ가 자신의 악어를 이해하고 그것을 극복해나가는 과정을 소설을 통해 보여준다.

그러나 역자가 후기에서 언급한 카프카의 '변신'처럼 일찍이 우울과 고독을 주제로 한 여느 작품들과는 다른 방법으로 주제에 접근하다. 저자는 이 근원적이고 처치곤란인 자의식의 결과물을 경쾌하고 희극적인 분위기로 풀어나간다.

a 본문 삽화. 아르날 바예스테르의 간결하고 재치있는 삽화는 읽는 즐거움을 더해준다.

본문 삽화. 아르날 바예스테르의 간결하고 재치있는 삽화는 읽는 즐거움을 더해준다. ⓒ 아르날 바예스테르


경쾌하되 가볍지 않고 진지하되 무겁지 않아


2003년 스페인 청소년 문학상을 수상하기도 한 이 작품의 특징은 앞서 말했듯 주제를 다루는 방식의 신선함이다. 고독 자체를 악어로 형상화한 점도 기발하지만 의사가 일명 '악어병'을 진단하고 처방한 약에 대한 설명서 등, 작가는 고독을 주제로 즐거운 상상력을 이어간다.

또한 간결하고 재치 있는 일러스트와 쉽고 담백한 문체, 짧은 분량은 평소에 책을 접하지 않던 사람들에게도 책읽기의 부담을 덜어준다. 그러면서도 집중적인 스타일을 선택함으로써 작품의 긴장감을 잃지 않는다.


저자 소개
마리아순 란다 (Mariasun Landa)

▲ 마리아순 란다
ⓒ책씨
1949년 스페인 렌테리아에서 태어났으며, 현재는 산세바스티안에서 살고 있다.

대학에서는 철학을 전공했고, 현재는 파이스 바스코대학교 교육대학의 교수로 재직하고 있다. 신문과 잡지에 많은 글을 기고했지만 현재는 작품 활동에 전념하고 있다.

1982년<탄판타스마>로 하비에르 리카르디 아동 문학상을 수상했다. 1991년 <알렉스>로 바스코 정부로부터 에우스카디 청소년 문학상을 수상했으며, 2003년에는 <침대 밑 악어>로 스페인 청소년 문학상을 수상했다.
책 소개를 위해 다시 한번 본문을 읽자 새로운 재미가 쏠쏠하다. 상징의 세계가 그렇듯 다양한 읽기도 가능하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왜 하필 악어인가? 왜 하필 신발인가? 등을 유추하며 읽어보는 적극적인 독서도 시도해 볼 만하다.

경쾌하되 가볍지 않고 진지하되 무겁지 않다라는 덕목을 가진 책이다.

침대 밑 악어

마리아순 란다 지음, 아르날 바예스테르 그림, 유혜경 옮김,
책씨, 20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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