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 대통령 "권역별-독일식 비례대표제 있다"

기자간담회에서 선거구제 개편 방향 제시... 2003년 12월 국회의원에게 보낸 E-메일에서 예고

등록 2005.07.29 17:47수정 2005.07.31 10: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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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무현 대통령이 29일 긴급 기자간담회에서 선거구제 개편을 통한 대연정 제안 배경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노무현 대통령이 29일 긴급 기자간담회에서 선거구제 개편을 통한 대연정 제안 배경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오마이뉴스 김당

노무현 대통령은 29일 긴급 기자간담회에서 지역구도 해소를 위한 선거제도 개편의 구체적 방향과 관련 권역별 비례대표, 독일식 비례대표제 등을 거론해 주목을 끌었다.

아울러 청와대는 노 대통령 발언 직후 독일의 대연정(大聯政) 사례 등을 담은 '세계 각국의 대연정 사례'를 참고자료로 배포했다. 노 대통령과 청와대가 갖고 있는 '관심'의 지점을 짐작하게 하는 대목이다(아래 상자기사 참조).

노 대통령은 이날 기자간담회에서 "지역구도 해소를 위해서 가장 최선의 방안이라고 생각하는 선거제도가 무엇인지 말해 달라"는 기자의 질문에 "내가 이것을 너무 틀에 박아서 얘기해 버리면 오히려 정치권 상호간에 대화나 토론에 어려움이 생긴다"고 말하면서도 이렇게 답했다.

"대개 지금 나와 있는 얘기들이 권역별 비례대표제, 독일식 비례대표제 이런 것들이 있다. 저는 또 그것을 위해서 필요하면 전체 국회의원 정원수를 늘리자는 말을 옛날에 이미 한 일이 있다. (국회의원 정수를) 늘리더라도 이 구조적인 문제를 해결하는 것이 좋다, 그렇게 말씀드렸다."

노 대통령은 이에 앞서 28일 열린우리당 당원들에게 보내는 서신에서는 "굳이 중대선거구제가 아니라도 좋다"며 "어떤 선거제도이든 지역구도를 해소할 수만 있다면 합의가 가능할 것"이라고 말했다.

또 지난 7일 편집·보도국장 오찬 간담회에서는 "(정치권이) 마음만 비운다면 2∼3가지 선거구제의 조합이 가능하다"고 말했다.

이처럼 지난달 24일 '당·정·청 11인 회의'(현재는 12인 회의)에서 노 대통령이 지역구도 해소를 위한 연정의 필요성을 언급한 이후 최근 선거구제 관련 발언들을 종합하면, 노 대통령의 구상은 '중대선거구제로의 개정이 이상적이지만, 현실적으로 어렵다면 소선구제를 유지하면서 지역주의 폐단을 해소하는 방안도 가능하다'는 것으로 추론할 수 있다.


즉, 대표성과 민의의 왜곡을 시정하기 위해 정당 득표율에 따라 의석을 배분하는 독일식 1인2표 정당명부제나, 특정 정당에 대한 쏠림현상을 완화하자는 취지에서 전국을 몇 개 단위로 나눠 비례대표를 선출하는 권역별 비례대표제를 도입하자는 것이다.

노 대통령의 이러한 뜻은 총선 전인 지난 2003년 12월 17일 선거구제 협상을 앞두고 공개된 적이 있다.


노 대통령은 12월 17일 국회에 서한을 보내 "17대 총선이 현재와 같은 지역구도로 치뤄진다면 정치개혁을 바라는 국민 열망은 물거품이 될 것"이라며 지역구도 혁파를 위한 중대선거구제, 도·농복합선거구제로의 선거구제 개편 논의를 요청했다.

또 노 대통령은 소선거구제 유지시 권역별 비례대표제를 도입해 비례대표를 현 지역구의 50% 수준으로 확대할 것을 요청하고 지구당 폐지에 대해서는 반대 의사를 밝혔다. 노 대통령은 이 같은 내용의 서한을 당시 전체 의원에게 E-메일로 발송하고 유인태 정무수석(현 열린우리당 의원)을 통해 박관용 국회의장, 각 당 원내 총무, 총무단, 정치개혁특위 위원들에게 전달했다.

노 대통령은 당시 서신에서 "지역구도 해소를 위해서는 한 지역구에서 2~5명의 국회의원을 선출하는 중대선거구제 도입이 최선의 방안"이라며 "대도시는 중대선거구제로, 농촌은 소선거구제를 유지하는 도·농복합선거구제도 지역구도해소의 취지를 살릴 수 있는 합리적 방안이 될 것"이라고 밝혔다.

노 대통령은 이어 "만약 소선거구제를 고수해야 한다면 최소한 권역별 비례대표제를 도입해야 한다"며 "그럴 경우 지역구를 줄이기 보다는 현 지역구의 50% 수준으로 권역별 비례대표 의석수를 확대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노 대통령은 또 의원수 확대에 대한 국민적 반감과 관련해서도 "현재의 의원정수는 우리나라 인구수와 비교할 때 많은 수가 아니다"며 "국회가 더 생산적일 수 있다면 그 비용은 기꺼이 지불할 가치가 있다고 본다"고 덧붙였다.

특히 노 대통령은 "내년 총선에서 지역구도가 해소된다면 내게 비판적인 정당이 과반수를 차지해도 상관이 없고 이미 약속한 책임총리제를 비롯해 모든 노력을 다할 것"이라며 이번처럼 구체적 '반대급부'(책임총리제)를 제시하며 야당측의 호응을 요청했다.

그러나 야당은 물론 여당에서도 그 이후 아무런 호응이 없었다. 따라서 노 대통령이 28일 청와대 홈페이지에 올린 '당원동지 여러분께 드리는 글 : 지역구도 등 정치구조 개혁을 위한 제안'이라는 서신의 형식은 열린우리당의 '당원동지 여러분께 드리는 글'이지만 그 내용은 한나라당에게 제안한 것도 같은 연유이다.

이와 관련 조기숙 홍보수석도 29일 "학계와 시민사회는 이미 김대중 정부 5년 동안 선거구제 개편에 대한 공감대가 형성돼 있으나 당시에도 정치권의 반대와 소극적인 태도로 못한 것"이라며 "선거가 없는 올해가 정치권에서 공론화할 수 있는 적기라고 판단해 대통령께서 대연정 제안을 내놓은 것"이라고 밝혔다.

조 수석은 또 "독일의 1인2표 비례대표제는 민의를 가장 정확하게 반영하는 선거구제다"면서 "잘 들여다보면 반드시 한나라당에 불리한 선거구제만은 아니다"고 밝혔다. 조 수석은 이어 "우리나라 국회의원 정수는 인구 비례에 비추어도 적고 세계에서 8번째로 규모가 작은 편이다"면서 "과학적 데이터를 제시하고 공론화하면 의원 정수를 늘리는 데는 큰 문제점이 없을 것으로 본다"고 밝혔다.

결국 28, 29일 연달아 노 대통령이 밝힌 선거구제 개편을 통한 대연정 제안의 핵심은 '권역별·독일식 비례대표제 도입을 통한 의석수 확대'에 있는 셈이다. 따라서 앞으로 현재 299명인 의원정수를 크게 늘리되 그 증가분을 정당득표율 등에 따라 특정지역에 불리한 정당(예를 들어 호남지역에서의 한나라당)에 우선 배분하는 방안도 거론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독일, 66년에 '3년 한시적 대연정'으로 국가위기 극복
기민-기사련 연합과 사민당의 대연정 구성

노무현 대통령은 29일 기자간담화에서 연정에 성공한 역사적 사례로 독일과 오스트리아의 대연정을 들었다.

청와대가 '세계 각국의 대연정(大聯政) 사례' 자료에 따르면 독일은 66년부터 69년까지 3년간 대정당인 기민-기사련 연합과 사민당(제2당)의 대연정을 구성했다.

독일의 경우 정치적으로 전후에 일명 '라인강의 기적'이라고 부르는 재건시기에 20년을 장기집권한 보수정당인 기민당은 소수 야당과의 '아슬아슬한 연정'이 아닌 거대 야당과의 대연정을 추진했다.

나치 전력이 있는 기민당 당수 '키징어'는 정통성의 부담을 느껴 사민당과의 대연정을 통해 해소하고자 하였으며 "레지스탕스 출신 브란트(사민당 당수), 전 공산주의자 배너(사민당 원내총무)와 함께 정부를 구성하는 것은 화해에 기여할 것"이라고 화해론을 제기했다.

대연정 제안 초기 사민당은 대연정 제안에 부정적이었으나 사민당의 원내총무이자 대표적 전략가인 배너는 이른바 '배너 구상'이라는 집권전략 차원에서 보수정당인 기민-기사련과의 대연정을 수용했다.

이를테면 당시 베를린 시장이자 사민당 당수인 브란트는 부정적 입장이었으나 공산주의자 출신인 배너는 집권을 위한 전략임을 강조하며 당을 설득해 25일에 걸친 협상을 진행해 연정의 기간을 차기 총선(3년)까지 하고 소규모 정당의 의회 진출을 어렵게 하는 '다수 대표제' 법안 도입에 합의하고, 브란트 당수의 입각 등 권력배분을 골자로 한 대연정 공동강령을 작성했다.

이후 대연정 수립 직후인 66년 12월 13일 키징어 총리는 대국민 담화를 발표해 "권력남용 가능성에 대한 우려를 불식시키는 가장 확실한 보장책으로 대연정을 한시적으로 다음 총선까지만 유지하겠다는 확고한 의지를 천명했다.

대연정의 결과로 독일은 정치권에 대한 국민 신뢰를 회복하고 이를 토대로 국력을 결집시켜 실업자 수를 3년만에 67만명에서 18만명으로 감소시키는 등 국가 위기를 극복하고 진보적인 민주정치의 기반을 마련했다.

이를테면 외무장관, 경제장관 등 사민당 출신 인사들의 성공적 업무 수행으로 '레드 콤플렉스'를 극복하고 브란트의 신동방정책 등 독일 통일의 기반을 마련했다.

그리하여 69년 총선 결과, 사민당은 캐스팅 보트를 쥔 자민당과의 연정으로 창당 100년 역사에서 처음이자 2차세계대전 이후 처음으로 정권교체를 이뤄냈다.

노 대통령은 기민-기사련 연합과 사민당(제2당)의 대연정 구성 사례를 벤치마킹해 열린우리당과 한나라당의 대연정 구상을 현실정치에서 실험하려고 하는 것이다. 물론 그 목표는 지역구도를 해소해 한국 정치의 수준을 한 단계 업 그레이드하는 새로운 정치문화를 재건축하자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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