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를 꿈꾸는 책 <꿈꾸는 책들의 도시>

젊은 공룡 미텐메츠와 함께 다녀온 부흐하임의 지하세계

등록 2005.07.30 01:49수정 2005.07.30 12:23
0
원고료로 응원
책을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헌책방에 갈 때면 느끼게 되는 기묘한 느낌이 있다. 좁은 공간에 아래에서부터 천정까지 가득 쌓여져 있는 책들 속에서, 오래된 책이 으레 내뿜는 아늑한 향기 속에서, 꼭 나만을 기다려 온 보물과도 같은 책을 만날 것과 같은 기대에 젖는다.

학창 시절 항상 지나치던 부산 보수동 책방 거리에 대한 아련한 추억이나, 일본에서 찾아간 칸다 고서점 거리에서 제목을 제대로 읽기도 힘든 책들이 가득 쌓여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느낄 수 있는 기묘한 희열감.


책표지
책표지들녘
간단한 설명만 보고도 선뜻 이 책을 택하게 된 것도, 책 속에 등장하는 부흐하임이라는 도시 때문일 것이다. 도시 전체가 서점으로 가득하고, 각 서점마다 가득히 책이 쌓여 있는 곳, 시작을 알 수 없는 때부터 지하에 가득 메워져 있는 책들. 실제로 그런 곳이 있다면, 꼭 한번 찾아가보지 않을까? 책으로라도 찾아가 볼 수 있으니 무턱대고 따라나선다.

책의 첫 문장은 "여기서부터 이야기는 시작된다"로 시작된다. 단첼로트 숙부로부터 받은 원고의 가장 독창적인 문장 또한 "여기서부터 이야기는 시작된다"이며, 원고의 지은이를 찾기 위해 길을 나서는 미텐메츠의 모험 또한 "여기서부터 시작된다".

부흐하임의 고서점에 가득 쌓여져 있는 책의 방대한 양을 너무 힘껏 상상하여 그리지 말자. 부흐하임의 아래 지하통로에 숨어 있는 갖가지 위험한 책들과 지하의 책을 제대로 먹고 사는 괴물 부흐링의 창고에 가득한 책들, 한 단계 더 지하로 내려가면, 걸어 다니고 잉크로 된 피를 흘리며 죽을 수 있는 책들이 곧 등장할 것이기 때문에 상상력을 적당히 나누어서 써먹어야 할 필요가 있다.

만화가와 시나리오 작가로 활동했다는 지은이의 약력을 증명하듯, <꿈꾸는 책들의 도시> 책 전체에는 기발한 상상력과 만화적 구성이 넘친다. 일단 우리의 주인공 미텐메츠 역시 린트부름 요새에 사는 공룡족의 일흔 일곱의 젊디젊은(?) 청년이다. 공룡뿐만 아니라, 갖가지 동물을 연상시키는 등장인물들, 지하에 사는 여러 종류의 괴물, 그리고 사람은 없는 곳이야? 라고 생각하는 순간 결정적인 인물로 등장한 인간 등이 어우러져, 재미를 한층 돋운다.

책 중간 중간 삽입되어 있는 삽화는 귀엽지는 않지만, 독자의 상상력을 다채롭게 하는데 도움을 준다. 아무리 봐도 미텐메츠의 얼굴은 주인공 감은 아닌데 하면서도, 조금 모자란 듯한 그의 모습이 이번 모험에는 무척이나 잘 어울리는 듯하다.


주인공 미텐메츠
주인공 미텐메츠들녘
비록 글로 쓰여 있는 책임에도 불구하고 책이라기보다는 비주얼이 강한 영상 매체와 같은 느낌을 줄 정도로 시각적인 묘사가 많다. 특히나 미텐메츠가 책으로 독살될 때, 두 페이지 가득 깨알 같은 글씨로 쓰여 있는 '당신은 독살되었습니다'라는 문장은 읽는 독자마저 좀 섬뜩하게 만든다.

내심 아직 책이 한권도 넘게 남았으니 미텐메츠가 죽을리는 없는데 하면서도… 마치 롤러코스터를 타는 것처럼 책의 후반으로 갈수록 점점 더 박진감 넘치고 스피디한 전개가 이루어져 책의 남은 분량이 줄어들수록 빨리 모험을 따라가고 싶은 마음과 남은 분량을 줄이고 싶지 않음 마음 사이에 갈등하게 한다.


하지만 한바탕 지적 모험으로 가득 차 있다고 하는 책 뒤표지의 말은 좀 무색한 감이 있다. 굳이 비교를 하자면 움베르토 에코의 <푸코의 추>나 엘이에트 아베카시스의 <쿰란>과 같은 긴장을 늦출 수 없는 지적인 모험은 없다. 진정한 글을 쓸 수 있다는 이유만으로 지하세계에 유배당한 호문쿨루스의 존재가 출판문화의 현실을 거의 직접적으로 얘기해주고 있을 뿐이다. 또한 상상력의 범위는 넓지만, 아이작 아시모프의 <파운데이션>에서와 같이 끝을 알 수 없는 상상력까지는 아니라고 굳이 흠을 잡아 볼 수도 있겠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특히나 책을 좋아하는 사람들에게 이 책은 지금까지 보지 못했던 새로운 상상의 세계를 보여준다. 이 상상의 세계는 – 비록 상상력을 어느 정도 한정시키겠지만- 곧 영상 매체로 소개될 것 같다. 내년에 영화로 제작된다고 하니.

전체적으로 보면 이 책은 영화로 만들어지기 위해 태어난 책 같아 보인다. 지은이가 시나리오 작가였다는 점도 무시할 수 없겠지만, 책의 많은 부분에서 영화적 구성을 쉽게 눈치 채게 된다. 한바탕 시원하게 미텐메츠와 함께 여행을 다녀왔다. 이제 영화를 기다린다. 내가 책을 보며 눈앞에 그려낸 영상과 전문가들이 직접 그려내는 영상의 차이는 어떨까 기대해본다.

꿈꾸는 책들의 도시

발터 뫼르스 지음, 두행숙 옮김,
들녘, 2014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AD

AD

AD

인기기사

  1. 1 콩나물밥 이렇게 먹으면 정말 맛있습니다 콩나물밥 이렇게 먹으면 정말 맛있습니다
  2. 2 유인촌의 문체부, 청소년은 건드리지 말았어야 했다 유인촌의 문체부, 청소년은 건드리지 말았어야 했다
  3. 3 "손님 이렇게 없을 줄은 몰랐다"는 사장, 그럼에도 17년차 "손님 이렇게 없을 줄은 몰랐다"는 사장, 그럼에도 17년차
  4. 4 한강 노벨문학상 수상에 '조선일보' 왜 이럴까 한강 노벨문학상 수상에 '조선일보' 왜 이럴까
  5. 5 윤 대통령 측근에 이런 사람이... 대한민국의 불행입니다 윤 대통령 측근에 이런 사람이... 대한민국의 불행입니다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