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가 팔고 있는 음반, 그가 쓴 시를 하덕규씨가 노래로 불러주었다고 한다.양중모
그 소리에 '정말 대단한 사람이구나'라는 생각을 또 다시 해야만 했다. 내가 찾아간 그 사람은 뛰어난 음악성을 지녔거나 유명한 그런 사람이 아니라, 몸을 편하게 거동하기 힘든 중증 장애인이었기 때문이다. 사회적 인식이 많이 변하기는 했으나 여전히 중증 장애인을 꺼려하거나 심지어 가게 앞에서 있으면 쫓아내는 경우도 있다는 것을 생각해보면, 오히려 팬을 가진 그는 분명 무언가 다른 것이 있는 듯했다.
그를 처음 만난 건, 지난 7월 12일 인턴 과제로 아시아나 노조 집회를 취재하러 가는 길이었다. 첫 과제에 대한 부담감으로 시달리는 와중에도, 무엇에 끌린 듯 그에게 다가가 말을 걸어보게 되었다.
어쩌면 건방지게도 사지 멀쩡한 몸으로 태어났다는 사실에 알 수 없는 우월감을 느끼며 '열심히 사세요'라는 격려를 하고 싶었던 것인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 날 그 만남에서 격려를 받은 것은 그가 아니라 나였다. 뿐만 아니라 그와의 만남은 내게 또 하나의 고정된 생각을 깨는 계기를 마련해 주었다.
그가 시간날 때마다 썼다는 노트. 그 노트 가운데는 퇴근하는 사람들 행렬을 보면서 '태근(퇴근)하는 사람들을 보면서, 저들은 얼마나 힘들었을까. 나는 모른다'라는 내용이 쓰여진 것을 보았다. 광화문에서 출퇴근하는 이들이 그를 '힘들겠구나'라고만 느낄 뿐 정작 그가 그들을 향해 같은 생각을 할 수도 있다는 사실이 놀라웠다. 아니, 보다 정확히 말하면 그가 그렇게 생각할 수도 있다는 것을 놀라워한 내 자신이 무척이나 당황스럽게 느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