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거리 떠도는 노숙자 '누렁이' 이야기

누렁이의 마음의 상처가 치유되길 바라며

등록 2005.08.07 13:55수정 2005.08.08 09: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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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가게에 매일 찾아오는 손님이 있습니다. 말은 전혀 안하고 소리 없이 찾아와 조용히 문 앞에 서 있기만 합니다. 그러면 나는 반갑게 뛰어나가 맞아줍니다.


지난 5월쯤 가게 나오는 길에 보니 사람들이 웅성웅성거리면서 서 있습니다. 웅성거리는 사람들 틈에 커다란 누렁이 한 마리가 시선을 받고 있었지만 그 당시에는 무심코 그 곁을 지나쳐왔습니다. 누렁이가 어디서 왔는지는 모르지만 목에 목줄이 있는 것을 보아 집에서 키웠던 개인 것 같은데 유기된 개가 아닐까 추정만 할 뿐이었습니다.

더운 여름이 시작이 되면서 일부 남자들의 군침어린 시선을 받기도 하지만 그 누구도 누렁이를 잡으려 하지 않았습니다. 누렁이는 절대 사람 곁에 가지도 않았고 사람들이 곁에 오면 저만치 피하고 있었습니다. 늘 사람들과 일정한 거리를 유지를 하면서 곁을 주지 않습니다.

목줄이 풀어진 것이 아니라 끊어진 것으로 보아 아마도 죽음 직전에서 필사적으로 도망쳐 나온 개가 아닐까, 그래서 저토록 사람들을 경계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모두들 그렇게 짐작을 하고 상처받은 누렁이를 애달프게 바라볼 뿐이었습니다.

심하게 겁먹은 눈빛이고 그 눈빛은 지금도 사라지지 않고 있습니다. 그런데 사람들한테 달려들지 않고 조용히 피하기만 할 뿐 의외로 온순한 누렁이입니다. 많이 굶었는지 뱃가죽과 등이 붙어 있어 누렁이를 볼 때마다 가엾다는 생각을 지울 수가 없었습니다.

어느 날, 딸이 밤에 학원에 다녀오는 길에 누렁이와 마주쳤는데 말을 시키니 피하지 않더랍니다. 배가 많이 고파 보여 잠깐만 기다리라고 하고는 얼른 슈퍼에 들어가 우유를 사가지고 나와서 굴러다니는 그릇에 따라주니 멀찍이 서 있다가 딸이 자리를 피해주자 그제야 우유를 마시더랍니다.


누렁이가 비록 말랐지만 체격도 크고 잘못 건드리면 혹시라도 물까봐 가까이 가지 못했는데 딸아이의 말을 듣고 보니 조금 용기가 생겼습니다. 그동안 혼자서 어슬렁거리면서 여기저기 다니는 모습을 안타깝게 보고만 있었는데...

그 후 어느 날 가게 마치고 집에 들어오는 길목에서 누렁이와 다시 마주치게 되었습니다. 여전히 등과 배는 붙어 있고 가여워서 '밥줄께! 잠깐만 기다려"하고는 얼른 슈퍼에 들어갔는데 그 사이에 누렁이가 가버렸습니다. 집에 들어와서도 영 맘이 편치 않았는데 개 짖는 소리가 밖에서 들립니다.


남편에게 노숙자 누렁이가 짖는 것 아닌지 모르겠다고 들어오는 길에 밥을 주려고 했는데 주지 못했다고 하면서 찾으러 나가자고 했습니다. 마침 복날이라서 삼계탕 끓여놓은 것에 밥을 말아서 들고 나갔습니다. 그런데 밖에 나갔지만 누렁이의 모습은 보이지 않고 멀리서 개 짖는 소리가 들려 소리가 나는 방향으로 가보니 그 소리는 집에서 키우는 개가 짖는 소리였습니다.

이왕 나온 김에 남편과 밥그릇을 들고 동네 한 바퀴를 돌았는데 누렁이를 볼 수가 없었습니다. 새벽 3시가 다 되어가는 시간이라 더 찾지 못하고 집으로 들어왔습니다. 그렇게 몇 날 며칠을 누렁이와 숨바꼭질하면서 지냈는데 며칠 전 가게 앞으로 누렁이가 지나가기에 얼른 뛰어나가 불렀습니다.

이름을 몰라서 내가 이름을 지어서 지나칠 때마다 누렁이라고 불렀는데 누렁이도 이젠 누렁이라 부르면 자기를 부른다고 생각을 하는가 봅니다.

누렁이가 멈칫 멈칫 하면서 가던 길을 멈춥니다. 가게에 먹을거리가 없기에 얼른 옆 가게 족발 집으로 뛰어 들어가 먹다 남은 족발 뼈라도 달라고 해서 누렁이에게 주었습니다. 누렁이가 다행히도 긴장을 풀고 족발 뼈를 뜯는데 힘이 없어 보입니다. 저 정도 체격이면 뼈다귀쯤이야 와작와작 뜯어먹어야 하는데 말입니다.

옆집 족발아줌마가 지켜보다가 다시 들어가 보쌈용 돼지를 삶던 고기국물을 가지고 나와서 따라주니 누렁이가 아주 잘 먹습니다. 다 먹고 난 뒤에 누렁이는 또 어디론가 가버렸습니다.

그리고 저녁때쯤에 무심코 가게 안에서 인기척이 느껴져 가게 문을 쳐다보았는데 누렁이가 가게 문 앞에서 가게 안을 쳐다보며 서 있습니다. 많이 반가워서 "누렁이 밥 먹으러 왔구나!"하고는 옆집으로 가서 누렁이가 왔다고 말했습니다. 옆집 아줌마가 고기 국물에 밥을 말아서 가게 앞에다 놓아두니 멀찍이 서 있다가 우리가 자리를 피해주면 와서 맛나게 먹습니다.

a 사람이 가까이 있으면 경계하는 누렁이

사람이 가까이 있으면 경계하는 누렁이 ⓒ 이은화

옆집 아줌마가 아예 가게 앞에 매일 밥그릇을 놓아두고 족발 찌꺼기와 고기 국물에 밥을 말아둡니다. 그러면 누렁이가 아침, 점심, 저녁때가 되면 찾아와 먹습니다. 벌써 일주일 정도 계속되는 일인데 이제 누렁이가 밥을 굶고 다니지 않을 것 같아서 마음도 편안해졌고 등과 뱃가죽이 붙어 있던 누렁이의 배가 약간은 묵직해 보여 흐뭇해집니다.

a 사람이 근처에 없어야 밥을 먹는 누렁이

사람이 근처에 없어야 밥을 먹는 누렁이 ⓒ 이은화


누렁이가 밥을 먹으러 찾아올 때 아직까지도 누렁이를 쓰다듬어 주질 못했습니다. 워낙 사람을 경계하기 때문에 늘 멀찍이 서 있다가 자리를 피해주면 와서 먹기 때문입니다. 그냥 누렁이가 올 때마다 멀찍이 서서 누렁이를 불러주고 따뜻한 눈빛 보내주고 말 시켜주는 것이 고작입니다.

이제야 조금은 손을 뻗으면 쓰다듬어줄 수 있을 정도로 서로의 거리가 가까워졌지만 손을 뻗으면 아직도 누렁이가 뒤로 물러납니다. 조급하게 생각 안하고 아주 천천히 누렁이가 상처받은 마음의 문을 열고 다가와 줄 날을 기다려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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