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소설> 사금파리 부여잡고 2부 120

참혹한 결전

등록 2005.08.09 17:03수정 2005.08.09 19: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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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조왕의 사당으로 치달려가던 장판수, 차예량을 비롯한 50명의 사내들은 가는 곳이 횃불로 환하게 밝혀져 있다는 것을 먼발치에서도 알 수 있었다.

“저 놈들이래 눈치를 챈 모양이구만.”


장판수는 코웃음을 쳤지만 차예량은 이만 돌아가자는 말이 목구멍까지 치밀어 오를 지경이었다. 그것은 두려움 탓이 아니라 몽고병들과 대치하고 있는 긴박한 상황에서 괜한 충돌로 뜻하지 않은 일이 생길 것에 대한 염려 때문이었다. 온조왕의 사당에는 장판수 일행과 비슷한 숫자의 사람들이 무기를 들고서는 기다리고 있었다.

“결국 여기 온 것인가.”

온조왕의 사당에 버티고 서있는 자는 두청이었다. 그의 옆에는 서흔남과 성벽위에 모습을 드러내었던 군관이 버티고 서 있었다. 양측이 팽팽하게 대치한 상태에서 장판수는 다짜고짜 소리를 질렀다.

“내 놈들이 왜 이런 짓을 하는 지 이유나 알자우!”

두청은 능청스럽게 장판수의 말을 받았다.


“그보다 먼저 자네들은 왜 이러는가? 이제 싸움은 끝났네. 편안히 고향으로 돌아가면 될 일이 아닌가?”
“편안히라고 했나?”

장판수가 채 입도 열기 전에 차예량이 앞으로 나서 떨리는 말투로 소리쳤다.


“오랑캐들이 백성들을 자기네 땅으로 끌고 가는 것도 모자라서 남은 백성들마저 개돼지 마냥 잡아 죽이고 있는 게 네놈의 눈에는 보이지도 않는가?”
“그래도 이렇게 해서 뭐가 달라진 단 말인가? 여기서 서로 피를 보고 싶지 않으니 이만 돌아들 가게나. 우리도 더 이상은 자네들의 일에 관여 않을 것인즉......”
“천만에! 이 땡중놈아! 우리는 너희 역적놈들에게 관여해야갔어! 옥에 갇힌 병사들을 풀어 주라우!”

장판수가 칼을 치켜들고 당장이라도 덤벼들 태세로 나서자 두청은 손을 내어 들고선 천천히 말했다.

“여기서 모든 이들이 피를 보며 부딪칠 거 없이 양쪽에서 세 명씩만 나와 겨루어 보는 것이 어떤가? 병장기의 우열이 갈리는 길게 상대를 찌르는 창이나, 편곤, 궁시는 쓰지 말고 짧은 창이나, 칼, 도끼로서 겨루세. 여기 있는 누가 나서도 좋으며 두 명이 먼저 이기는 쪽이 물러나는 것으로 하지. 단, 우리가 이기면 너희들은 성을 나가야 하고 너희들이 이기면 우리가 성을 나가겠다.”

뜻밖의 제안이었지만 장판수가 소리를 치며 성급히 앞으로 나서려 하자 차예량이 이를 막고선 귓가에 바싹 붙어 소곤거렸다.

“성급히 결정할 일은 아니나, 저 중의 말대로 여기서 맞붙어 양쪽 모두 피를 보게 되면 일이 어찌 될지 알 수 없소이다.”

“그럼 어쩌란 말이네?”

“일단 저자의 말을 따르되, 저놈들을 보아하니 뭔가 믿는 구석이 있는 것 같소이다. 장형은 제일 나중에 나서시오. 마침 여기에도 칼을 제법 쓸 줄 아는 자가 있으니 일단 그를 먼저 내어 보내야겠소. 두 번째는 내가 나설 것이외다.”

“저 놈들이래 약속을 지킬까?”

장판수의 마지막말은 너무나 컸기에 두청의 귀에도 또렷이 들려왔다. 두청은 대뜸 앞으로 나서 온조왕의 사당 쪽으로 넙죽 절을 두 번 올린 뒤 소리쳤다.

“만약 내가 약속을 지키지 않는다면 하늘이 벌할 것이오! 자, 이쪽은 포수 서흔남이 먼저 나설 것인데 그쪽은 누가 나설 것이오?”

서흔남이 팔 길이 정도의 짧은 창 두 자루를 양손에 잡고 빙빙 돌리며 장판수를 노려보았지만 먼저 나선 이는 쌍도를 든 십장 (什長 : 병사 10인중의 우두머리)김돌석이었다.

“내가 상대해주지!”

양쪽 병사들은 우르르 뒤로 물러서 넓게 공간을 틔워주었다. 달빛과 횃불만이 어둠을 밝혀주는 온조왕의 사당 옆에서 사람들은 마른 침을 삼키며 이제 막 시작될 긴박한 대결을 지켜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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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소설 '고주몽', '홍경래의 난' '처용'을 내 놓은 작가로서 현재도 꾸준한 집필활동을 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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