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제 취재 갔다 일만 하고 온 사연

정동진독립영화제 이색 취재기

등록 2005.08.09 22:27수정 2007.08.06 10: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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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릉시 정동초등학교에서 열리는 정동진 영화제
강릉시 정동초등학교에서 열리는 정동진 영화제양중모
"사진은 왜 찍는 거야?"
"아, 예 제가 오마이뉴스 시민기자로 활동하고 있어서요."


지난 8월 5일부터 7일까지 강원도 강릉시 정동초등학교에서 정동진독립영화제가 열렸다. 개인적인 사정으로 6일 밤이 되어서야 내려가기는 했지만 본래 목적은 취재였다.

그런데 엉뚱하게도 취재하려 한다는 사실을 다음 날인 오후 5시가 되어서야 말한 셈이다. 만약 영화제 스태프로 일하고 있는 여자친구와 영화제 사무국장이 개인적인 친분이 없어, 사무국장이 내게 저런 질문을 편하게 던질 사이도 아니었다면 끝까지 아무 말도 하지 못했을지도 모른다.

<씨네21> 기자에서 선수를 뺏겼네

애당초 내 계획은 벌써 7회째를 맞이하고 있는 정동진독립영화제를 준비하는 박광수 프로그래머와 김동현 사무국장을 인터뷰하는 것이었다. 그러나 그 계획은 정동진으로 내려가는 버스에서 여자친구가 보낸 문자를 보게 되면서 고비를 맞이하였다.

'씨네21 기자가 와서 벌써 광수 오빠랑 동현 언니 다 인터뷰해 갔는데.'


내려가는 내내 기존 <오마이뉴스> 시민기자들이 올린 기사와 어떻게 차별화할까만을 고민했거늘, 난데없이 보다 강력한 경쟁자가 나타난 셈이다!

영화만을 전문으로 다루는 잡지사 기자. 그 기자가 영화제와 관련해 질문한 것들은 어떤 것이었을까? 어설프게 질문했다가 망신당하는 게 아닐까, 이런 여러 생각들이 결국 정동진에 도착한 첫 날, 스스로의 신분을 밝히지 못하고, 그저 스태프의 친구이자 그 때문에 자원활동가로 일하러 왔다는 인식을 심어주게 되었다.


사실, 6일 두번째 날 상영이 끝나고, 영화감독들, 독립영화계 인사들, 일부 관객들이 모인 술자리에서 술의 힘을 빌려 인터뷰를 해볼까도 생각했다. 그러나 단편영화나 독립영화에 대한 이해가 워낙 부족했고, 영화제 프로그래머와 사무국장을 제외하고는 누가 누구인지 몰랐기에 그마저도 여의치 않았다(나중에 안 사실이지만 독립영화계에서 꽤 유명한 인사들도 있었다. 그것도 바로 옆 자리에!).

기자 바로 뒤 안경쓴 사람이 조영각 서울독립영화제 위원장. 인터뷰기사도 많은데 정작 난 물놀이까지 하고서도 나중에야 알았다.
기자 바로 뒤 안경쓴 사람이 조영각 서울독립영화제 위원장. 인터뷰기사도 많은데 정작 난 물놀이까지 하고서도 나중에야 알았다.양중모
다소 부끄럽긴 하지만 좀 더 정확히 말하면 내 앞 두 자리 건너 앉았던 <씨네21> 기자가 명함을 꺼내들고서 이 사람 저 사람 하고 명함을 교환하는 것을 보면서, 더 위축된 면도 있었다.

지금껏 곧잘 명함 없이도 말로만도 인터뷰를 잘 해왔는데, 여기저기서 주는 명함들을 보면서 말로만 하는 것도 예의가 아닌 듯했고, 무엇보다도 <씨네21> 기자가 뿌리는 명함을 보면서 정체를 알 수 없는 열등감에 사로잡혀 한마디 말도 제대로 못 붙여본 셈이다(지금 생각해보면, 참 바보 같은 행동이었다).

취재를 하러 갔는데, 말 한마디 제대로 못해보다니.

정동진에 도착한 두 번째 날에는 반드시 영화제를 상징하는 대표적 상황을 취재해 봐야지라고 굳건히 마음을 먹었거늘 그마저도 쉽지 않았다. 휴양지에서, 야외에서, 무료로 볼 수 있는 것이 특징이라는 점이 이미 다른 기사들을 통해 많이 알려져 있었기 때문이다. 혼자서 취재를 하면서 난 오연호 오마이뉴스 대표가 인턴 교육 시간에 가르쳐준 것들을 많이 생각했다. 평범한 진리지만, 도움이 될 때가 많기 때문이다.

'상투적이고 뻔하다고 생각되는 것을 취재할 때는 그 사건을 단적으로 보여줄 수 있는 핵심적인 인물을 찾아내는 것이 중요하다.'

정동진 영화제는 가족 단위 관람객이 많다.
정동진 영화제는 가족 단위 관람객이 많다.양중모
그리고 난 정동진영화제를 핵심적으로 보여주는 것이 바로 가족 단위의 관람객들이라고 생각했다. 이는 분명 다른 단편영화제나 독립영화제에 비해 분명 다른 특징이라고 할 수 있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6일 밤 만났던 관객이 '씨네21에서 우리 가족이 아기랑 다 같이 오니까 이것저것 되게 많이 물어보더라고요'라는 말에 그마저도 발목을 잡히고 말았다. 비슷한 기사를 쓰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다.

자원활동가 체험을 기사로?

그렇게 고민을 하던 중 내게 한 인물이 특이하게 다가왔다. 그의 이름은 박중언(26, 인제대 언론정치학부)이라고 했다. 그는 무려 4년째 정동진영화제에 자원활동가로 참여하고 있다고 했다. 그것도 별다른 특별한 이유 없이 '부산국제영화제 한 부스에서 무료로 나누어주는 버튼을 본 것이 계기가 되어, 관객으로 놀러왔다가 자원활동가로 일하게 되었다'고 한다. 그는 '사람이 좋아서 4년째 이 곳을 찾고 있다'고 했지만, '스스로도 다큐를 찍는다'는 그를 끌어들이는 무언가 특별한 것이 있었던 것은 아닐까.

그 순간 그 특별함을 찾기 위해 자원활동가로 열심히 일해 보면 어떨까 하는 생각이 들었던 것이다. 더 재미있었던 사실은 사무국장이 내게 '왜 사진을 찍느냐'고 물어 '취재를 위해'라고 대답했던 시점부터 그런 생각이 강렬해진 것이다.

짧은 시간이었지만 그 동안 중언씨 등 몇몇 사람들을 만나면서 정동진독립영화제가 단순히 평소에는 보기 힘든 독립영화를 보는 기회만이 아니라, 어떤 이에게는 삶이었고 어떤 이에게는 꿈이라는 사실을 어렴풋이나마 느낄 수 있었다. 때문에 보다 다르게 영화제를 체험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정동진영화제는 관객으로 참여했을 때 매우 낭만적인 영화제임이 틀림없다. 정동진이라는 해변가를 배경으로 야외에서 상영이 될 뿐 아니라, 다들 편안한 복장으로 가족 단위 관객들도 많이 보이기에 휴식을 온 듯 편안하게 영화를 즐길 수 있다.

정동진은 휴양지라 그런지 영화도 피서온 기분으로 보는 이들이 많다.
정동진은 휴양지라 그런지 영화도 피서온 기분으로 보는 이들이 많다.양중모
게다가 무료로 영화를 관람할 수 있기에 경제적 부담감도 없어, 이 시기에 맞추어 휴가를 보내는 것도 괜찮은 방법이다.

실제로 예전에 작성된 기사를 보면 휴양지와 연계해 쓴 기사들도 있었다(나 역시 생각했던 기사 방법이다). 그러나 그런 낭만 뒤에는 분명 적지 않은 노력이 있었으리라. 나는 그 노력들이 보고 싶었고, 그 노력들을 하고 싶었고, 또한 그 노력들을 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에어스크린을 만들기까지는 여러 사람의 노력이 필요하다.
에어스크린을 만들기까지는 여러 사람의 노력이 필요하다.양중모

영화제 끝난 뒤 시작한 취재

그랬기에 엉뚱하게도 내가 진정으로 시도한 정동진독립영화제 취재는 3일간의 영화 상영이 모두 끝난 7일 밤부터였다. 모든 상영 일정이 끝난 후 영상자료원에서 야외에 설치해준 대형 에어 스크린을 해체해 다시 넣는 작업은 아주 어렵지는 않았지만 아주 쉽지도 않았다. 그러나 그건 적정 인원이 달려들어 해체 작업을 같이 할 때 이야기였고, 적은 인원으로만 한다면 무척이나 힘든 작업이 되었을 것이다.

신기하게도 에어 스크린에는 물이 들어 있었다. 대형 스크린인지라 물도 많이 들어 있었고, 그 많은 물을 빼내다 보니 흙도 금방 진흙탕이 되어 티셔츠도 금세 더러워지고 말았다. 그러나 에어 스크린을 해체하는 과정을 보고, 해본 것은 상당히 특별한 경험이 되었다.

영상자료원에서 세워준 에어스크린. 멋있지만 만들거나 해체할 때 꽤 많은 노력이 필요하다.
영상자료원에서 세워준 에어스크린. 멋있지만 만들거나 해체할 때 꽤 많은 노력이 필요하다.양중모
그러나 그래도 그리 많지는 않았지만, 어느 정도 인원이 있었기에 이 날 밤 작업은 그래도 할만했다. 정말, 내가 경험하고자 했던 영화제의 진정한 시작은 영화제가 모두 끝난 월요일(8월 8일)이었다. 이 때부터는 영화제에 사용되었던 모든 집기들을 정동진독립 영화제를 주최한 강릉 시네마떼끄 사무실로 옮기는 작업이 시작되었다.

전날에 비해 남자들의 수는 줄긴 했지만, 정동초등학교에서 트럭에 집기를 올리는 과정까지는 그래도 버틸 만했다. 하지만 그도 잠시 강릉으로 이동하는 길에 일명 미남 청년이라고 불리는 스태프가 내게 날린 말은 납량특집 급이었다.

영화제 마지막 정리를 위해. 맨 왼쪽끝이 기자, 그 옆이 박광수 프로그래머
영화제 마지막 정리를 위해. 맨 왼쪽끝이 기자, 그 옆이 박광수 프로그래머양중모
"이제부터 진짜 일의 시작입니다."

강릉 시네마떼끄는 '3층에 있긴 하지만, 계단이 가파르고, 엘리베이터가 없어 짐을 옮기기가 힘들 것'이라는 이야기였다. 나름대로 선배들 이삿짐을 많이 옮겨주었다고 자부하기는 했지만 3~4차례 정도 올라갔다 내려가기를 반복하자 힘이 서서히 떨어지기 시작했다. 올라갔다 내려오는 것만으로도 적지 않은 체력적인 소모가 있었던 까닭이다.

영화제 만드는 이들의 꿈을 보다

마침내 모든 짐을 다 올려놓고, 정리까지 끝낸 순간 난 무엇 때문에 이 경험을 중심으로 해 취재를 하고 싶었을까라는 생각이 그제서야 떠올랐다. 그리고 때마침 들려온 정동진독립 영화제 사무국장의 말에 난 그 이유를 곧 생각해냈다.

"내년에는 주차장쪽에도 부스를 설치하는 게 좋지 않을까."

이제 막 올해 행사가 끝난 시점에 바로 내년을 그려보는 사람들. 첫날 가졌던 술자리에서 내 앞에 앉았던 일반 관객은 1회 때 스태프로 참여했다고 한다. 중앙대학교에서 영화학을 부전공했다는 그녀는 내게 이런 말을 해주었다.

"학교 수업 시간 때 본 사람들이 그 때는 처음이니까 그랬는지 모르겠지만, 몇몇 안 되어서 힘들 텐데도 다 와서 이것 저것 나르고 그러는 거야. 너무 신기했지."

그 이야기를 듣던 당시에 나는 별 의미 없이 흘려들었던 말이지만, 직접 그 경험을 해보고선 이제는 정동진독립영화제를 단순히 피서도 즐기고, 영화도 즐기는 그런 영화제로 부르기를 거부하게 만드는 직접적인 계기가 된 말이 되었다.

때로 육체적인 고통은 사람을 쉽게 지치고 피곤하게 만든다. 그럼에도 그걸 이기게 해주는 건, 바로 그 고통을 이길 수 있게 해주는 꿈이 있기 때문이다.

다른 자원활동가에 비하면 짧고 약한 육체적 고통이었겠지만, 그 꿈을 보았다. 영화제를 직접적으로 주도하는 사람들이 꾸는 꿈도 보았고, 주목받지는 못하지만 영화제에 참여하여 영화를 꿈꾸는 이들의 꿈을 보았다. 나는 그들에게 잠시나마 동화되어 있었다.

땡그랑 동전상 시상식. 동전으로 관객들이 좋았던 영화에 투표하는 방식. 많은 액수는 아니지만, 그들의 꿈과 열정이 느껴지는 방법이다.
땡그랑 동전상 시상식. 동전으로 관객들이 좋았던 영화에 투표하는 방식. 많은 액수는 아니지만, 그들의 꿈과 열정이 느껴지는 방법이다.양중모
사람들은 누구나 다 주목받는 자리에 있고 싶어 한다. 아주 사소한 것일지라도 말이다. 그러나 그 주목받는 자리까지 가는 과정이 힘들다는 사실에는 종종 외면하곤 한다. 그리고 그 과정을 외면하지 않은 이들은 꿈을 보고 힘차게 앞을 향해 달려 나간다. 그래서 나는 감히 정동진독립영화제를 '피서도 즐기고, 영화도 보는 일석이조의 영화'가 아닌 '알려지지 않은 많은 젊은이들의 꿈의 결정체'라고 말하고 싶다.

이제 서서히 자리를 잡아가는 정동진독립영화제의 꿈이 내년에도 이어지는지, 그 때는 보다 많은 공부를 해 가자마자 오마이뉴스 시민기자라는 사실을 당당히 밝히고 또 다른 시각으로 취재해보고 싶다. 26살의 내게 꿈이 담겨진 공간을 찾아가는 것은 언제나 행복하기에 벌써부터 내년 8월 5일이 기다려진다.

그 곳에는 젊은이들의 미래를 향한 꿈이 있기에.

덧붙이는 글 | 내년에는 박광수 프로그래머와 김동현 사무국장을 인터뷰해 볼 생각입니다. 그리고 좀 더 공부해 영화 감독들과 독립영화계 인사들에 대한 인터뷰도 해볼 생각이고요.^^

덧붙이는 글 내년에는 박광수 프로그래머와 김동현 사무국장을 인터뷰해 볼 생각입니다. 그리고 좀 더 공부해 영화 감독들과 독립영화계 인사들에 대한 인터뷰도 해볼 생각이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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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을 넓게 보고 싶어 시민기자 활동 하고 있습니다. 영화와 여행 책 등에 많은 관심을 갖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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