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끔씩 혼자서 산길을 걸어보면

[노태영의 Photos & Thoughts 1] 비온 후의 골짜기에서 온 갖 생물의 속삭임을 들을 수 있어

등록 2005.08.10 16:51수정 2005.08.11 19: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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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과 들을 거닐다 보면 인생이 보입니다. 작은 것이 아름답다는 생각이 문득 문득 들 때마다 섬뜩 섬뜩 놀라기도 합니다. 작은 꽃들의 오묘한 조화를 보면서 세상에서 주목받지 못하는 인생 인생들을 생각하게 됩니다. 그러면 따스한 기운이 온 몸에 퍼지는 희열을 느낍니다. 바로 자연이 주는 포근함이고 생명을 가진 말없는 것들이 주는 행복입니다.


이 작은 생명들의 소중한 삶을 자각하는 사람들은 절대 생명을 경시할 수 없습니다. 그리고 인간성이 중요한 만큼 자연의 생명력도 중요하다는 것을 깨닫게 됩니다. 사진기 하나 들고, 나무 지팡이 하나 들고 혼자서 산길을 걷다 보면 나를 되돌아볼 수도 있고 좁은 길 양쪽에 있는 것들을 자세히 들여다볼 수 있습니다.

바로 작은 우주들입니다. 부처님은 말씀하셨습니다. 하나의 티끌 속에도 우주가 깃들어 있다고(一微塵中含十方). 정말 맞는 말입니다. 바로 우주가 우리들의 발아래 있습니다.

고소한 추억을 만들어 주었던 깨금나무
고소한 추억을 만들어 주었던 깨금나무노태영
깨금을 아세요? 깨금나무를 아세요? 깨금나무는 개암나무라고도 합니다. 자작나무과에 속하는 이 깨금나무는 늦여름과 초가을에 깨소금처럼 고소한 열매를 손톱 만하게 주렁주렁 매달아 놓고 아이들을 산으로 불러들입니다. 먹을 것이 부족했던 시절에 땔나무를 하면서 도라지 캐면서 허기를 채웠던 기억이 아직도 눈에 선합니다. 아직은 덜 익은 깨금을 보면서 잠시 어린 시절로 돌아갑니다.

산속에는 산수국이 풀숲에는 금낭화가
냇가에는 고마리가 여기저기 피어나니
내마음은 고향으로 쉴새없이 달려가네

나의친구 소꿉친구 한양으로 일본으로
고향떠나 타향으로 멀리멀리 떠났건만
우리들과 함께 놀던 소나무는 그대롤세



우리는 이렇게 또 고향을 그리워하고 결국 고향에 의지하면서 살아갈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슬픈 추억을 가진한 청개구리
슬픈 추억을 가진한 청개구리노태영
청개구리 한 마리가 비온 후에 수줍은 외출을 하였습니다. 가냘픈 모습으로 울어대는 청개구리 소리가 참 처량하게 들립니다. 그러나 부모 잃은 슬픔을 떠올리는 것은 동화 때문만은 아닐 것입니다. 청개구리 소리는 정말 처연합니다. 비온 후에 우는 울음은 더욱 그렇습니다.


청개구리 한마리가 늦여름비 내린후에
잃어버린 슬픈추억 마음속에 주워담고

부모님의 질긴사랑 빗속에서 떠돌다가
메아리로 되살아나 우리마음 구슬프네

개구리야 개구리야 비온다고 슬퍼말고
다소곳한 여름추억 서리서리 만들으렴


인생은 후회의 연속입니다. 어제의 일을 오늘 후회하고 오늘 일은 내일 후회하게 됩니다. 어찌 청개구리만 슬프고 애처롭겠습니까. 우리 인간들은 더 슬픕니다. 한 줌의 짬도 내기 어려운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들이 얼마나 불쌍합니까. 여유있게 사는 것과 느리게 사는 것이 우리의 지혜임이 틀림이 없는데. 그리고 우리는 다 알고 있는데. 우리는 그렇게 살지 못합니다.

시간의 노예가 되어 살아가는 우리들의 삶이 무슨 의미가 있습니까. 우리 후손들이 우리들의 삶에 대해 어떻게 생각할지 참 걱정입니다. 물론 미래의 일까지 걱정할 필요는 없지요. 그러나 우리의 선조들의 삶의 지혜와 생활의 여유 속에서 오늘날의 문명과 진리가 만들어졌다는 것을 생각하면 그렇게 쉽게 생각할 수만은 없는 것도 사실입니다.

우유빛 그리움을 머금은 사위질빵 꽃
우유빛 그리움을 머금은 사위질빵 꽃노태영
하얗게 하얗게 피어오르는
당신의 소망을 가슴에 담았습니다.

남몰래 훔쳐보던 그리움이
살며시 당신의 미소 속에 숨어듭니다.

지천으로 널려있는
당신의 우유빛 애절함

여름의 끄트머리에서
매미소리는 너무도 처량합니다.


그러나 당신이 있기에 이 여름은 더욱 맑아집니다. 당신이 있기에 이 세상은 더욱 살맛납니다. 그렇게 외롭게 넝쿨 속을 헤매더니 이제야 하얀 꿈들을 함박눈처럼 소복하게 세상에 쌓아 놓았습니다.

이렇게 순수한 울림을 들어 보셨습니까? 이렇게 거짓 없는 수채화를 보셨습니까? 아마 불가능할 것입니다. 사위질빵 꽃을 보고 있으면 때가 묻은 마음도 금세 깨끗해질 것입니다. 우윳빛이 나는 꽃을 보면 마음이 느긋해지고 편해집니다. 이유미 산림청 국립수목원 임업사의 사위질빵에 대한 설명입니다.

요즈음 산에 가면 덤불을, 또는 다른 나무를 타고 올라가며 피어나는 흰 꽃송이들을 볼 수 있는데 바로 사위질빵의 꽃이다. 멀리서 봐도 우윳빛 꽃송이들이 가득 모여 풍성하게 느껴질 뿐더러 자세히 들여다보아도 여간 예쁜 것이 아니어서 누구나 이름이 궁금해지기 마련인 그런 꽃이다.

덩굴성이지만 물론 나무이다. 본래 덩굴이 지는 나무 예를 들면 칡이나 댕댕이덩굴 등 대부분의 것들은 줄기가 아주 질겨 각종 기구를 만드는 데 유용하게 쓰였다. 하지만 사위질빵의 줄기는 약해서 별 필요가 없었다. 이 때문에 사위질빵이라는 조금은 특별한 이름이 붙은 사연이 생겼다.

옛날 남쪽의 일부 지방에선 추수 때 사위가 처가에 가서 가을걷이를 돕는 풍속이 있었다고 한다. 귀한 사위가 와서 힘든 일을 하는 것이 마음에 걸린 장모는 다른 사람들보다 유난히 조금씩 짐을 실어 지게질을 하게 했다. 함께 일하던 사람들이 약한 이 나무의 줄기로 지게 질빵을 만들어도 끊어지지 않겠다며 놀렸다.

그 후로 이 덩굴 나무의 이름이 사위질빵이 되었다는 것이다. 사위사랑과 이를 보는 이웃들의 따뜻한 유머가 느껴지는 이야기이다. 북한에서 쓰는 이름은 질빵풀이고 서양에서는 버진즈 보우어(Virgin's Bower), 즉 처녀의 은신처란 뜻인데 순결한 꽃색이며 풍성한 덤불이 이름에 꼭 들어맞다.


참 아름다운 이름입니다. 우리나라 꽃들은 저마다 아름다운 이름을 갖고 있습니다. 산길을 거닐다 보면 이런 꽃보다 아름다운 꽃에 대한 사연들을 엿듣기도 하고 이들과 대화도 나눌 수가 있습니다. 이런 앎이나 대화는 돈을 벌거나 삶을 살아가는 지혜는 분명 아닙니다.

그러나 마음에 진짜 필요한 양식입니다. 영혼의 양식은 하느님 말씀이나 부처님 말씀으로 채울 수 있지만, 마음의 양식은 자연 속에서만 얻을 수 있습니다. 땅 냄새를 맡으면서, 거친 가시넝쿨에 찔려 피 흘려가면서 얻은 자연의 양식이 진짜 마음의 양식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주말이면 등산을 합니다. 무작정 산에 오르고 또 오르고 그리고 올라갈 곳이 없으면 내려옵니다. 건강을 위해서라고 합니다. 단지 몸의 건강을 위해서 산에 오를 뿐입니다. 마음의 양식에는 관심도 없는가 봅니다. 그러나 산길이나 들길을 걷다 보면 지천으로 널려 있는 것이 바로 마음의 양식입니다.

은사시나무에서 공생하는 으름 넝쿨
은사시나무에서 공생하는 으름 넝쿨노태영
당신과 나는
이렇게 우리가 되고
그렇게 하나가 되어
이 세상을 살아갑니다.


내 것만 챙기면서 살 수 없는 것이 삶입니다. 손해도 보고 도움도 주면서 사는 것이 삶입니다. 내 것을 위해 서로 싸우면서 살 수만은 없습니다. 은사시나무에 얹혀서 사는 울음나무 넝쿨은 은사시나무의 고마움을 왜 모르겠습니까? 모든 살아 있는 것들은 더불어 살아갑니다.

내 손을 다른 사람에게 빌려주고, 때론 내 몸도 다른 사람에게 빌려주는 것이 바로 삶입니다. 이렇게 살다보면 나의 생명까지도 내어주어야 할 때도 있습니다. 사실 그런 사람도 많이 있습니다. 희생적인 삶을 산 사람들입니다.

나의 명예나 꿈을 위해서가 아니라 다른 사람의 꿈과 삶을 위해 나의 몸을 내어 주는 것입니다. 산길을 가다보면 이런 생각과 마음을 건질 수가 있습니다. 자연 속에서는 모두가 선해지기 때문입니다. 모두가 하나의 소나무가 되고 청개구리가 되고 은사시나무가 되고 참나리꽃이 되기 때문입니다.

바로 공생이자 상생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내가 살기 위해서 내 주위의 모든 것이 살아야 하는 것입니다. 골짜기를 들여다보면 수 만 가지의 생명들이 서로 아옹다옹 살아가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모두 다 소중한 생명입니다.

가끔씩 시간이 나면 산길을 혼자 걸어봅시다. 걷다보면 생각이 떠오르고 이 생각은 또 다른 생각을 데려오고 이런 생각들이 모여 풍요로운 사색의 시간과 공간을 만들어 줍니다. 높은 산이 아니라 낮은 골짜기를 걷다보면 내 마음도 낮은 곳을 향하여 낮은 세상에 고운 시선을 줄 수가 있습니다.

덧붙이는 글 | 노태영 기자는 남성고 교사이고, 이 글은 www.cyworld.com/nty1004에도 올립니다.

덧붙이는 글 노태영 기자는 남성고 교사이고, 이 글은 www.cyworld.com/nty1004에도 올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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