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주 남산에서 신라천년의 옷을 깨운다

천연염색과 한복을 연구하고 있는 김경자 씨

등록 2005.08.12 12:38수정 2005.08.12 18:52
0
원고료로 응원
a 모시를 이용한 개량한복

모시를 이용한 개량한복 ⓒ 윤형권

“옷이 날개라고 하지요? 외출할 때 당당하게 입을 수 있는 멋진 옷을 말하는 겁니다. 그런 한복을 만들고 싶습니다.”

신라천년의 세월을 품은 후덕한 경주남산자락에서 개량한복을 연구하고 있는 김경자(62세)씨. 김씨는 경주에서 고등학교를 졸업하자마자 부산의 양장점에 취업해 옷 만들기에 나섰다. 어릴 때부터 옷을 만드는 끼가 다분했던 김씨는 양장점에서 뛰어난 솜씨를 발휘해 주위사람들을 깜짝 놀라게 했다.


당시 숙련된 재봉사가 교복 한 벌 만들려면 하루나 이틀 걸렸는데 김씨는 20~30분 만에 아주 말쑥한 교복 한 벌을 만들어 낼 정도였다. 김씨는 또 일류재봉사인 양장점 선배가 만든 옷을 밤중에 몰래 뜯었다가 다시 맞춰놓았는데, 주인도 이런 사실을 모를 정도로 솜씨도 좋았지만 멋진 옷을 만들려는 욕심이 대단했다.

김씨는 부산 양장점에서 5년 정도 일을 배운 후 경주에서 ‘노블’이라는 상호로 양장점을 개업했다. 이때 김씨의 나이는 22살. 주위에서는 어린 나이에, 그것도 처녀가 사업을 시작하는 것을 불안하게 여겼다. 그러나 김씨는 천부적인 솜씨를 마음껏 발휘했다. 김씨의 손이 닿은 옷은 모두가 흡족했다. 특히 박정희 정권 때 경주지역에는 일본인 관광객을 상대로 한 기생집이 많았는데 이 지역의 기생들 옷은 거의 김씨가 만들었다.

김씨가 옷을 잘 만드는 비결 중의 하나는 똑같은 옷을 절대로 만들지 않는다는 것과 손님이 문을 열고 들어서면 성격과 체형, 색깔, 취향까지 파악하는 눈썰미가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김씨는 이런 천부적인 소질보다도 ‘누구나 입고 싶어 하는 멋진 옷을 만드는 것’을 추구하는 열정이 강했기 때문이라고 한다.

김씨는 90년대 중반에 서울로 올라가 남편과 함께 개량한복 사업을 시작했다가 도중에 그만두었다. 옷 한 벌 한 벌에 혼신의 열정을 쏟았던 맞춤옷을 만들던 사람이 대량으로 똑같은 옷을 만들어내는 체인점 사업과는 운이 맞지 않았다고 한다.

김씨는 서울에서 사업을 정리하고 고향인 경주로 낙향해서 경주시 내남면 용장리 남산자락에 터를 잡고 ‘솜 우리옷’이라는 한복연구실을 운영하고 있다. “남산에서 자생하는 각종 풀과 나무들이 벗입니다” 김씨는 어떤 한복이든지 손수 천연염색을 들여서 옷을 만든다. 재봉하는 실도 모두 천연염색을 한다. 쪽, 벚나무 열매, 감, 황토, 포도 등 남산에 있는 나무와 풀이 김씨의 손에 닿기만 하면 모두 염색재료로 쓰인다.


a 경주 남산에 있는 풀, 나뭇잎, 열매로 염색한 실.

경주 남산에 있는 풀, 나뭇잎, 열매로 염색한 실. ⓒ 윤형권

김씨는 눈만 뜨면 염색과 한복연구에 여념이 없다. 그런데 김씨에게 최근 한 가지 목표가 생겼다. 신라천년의 옷을 고증해서 생활 속에서 입을 수 있도록 하는 것과 후계자를 기르고 싶다는 것. 요즘은 대부분 기성복이기 때문에 맞춤옷 사업을 하려는 사람이 없다보니 후계자를 구하기가 쉽지 않다. 또 신라천년의 옷을 고증해서 현대인의 취향에 맞도록 하는 일도 개인이 하기에는 벅차다고 한다. 김씨는 경주시나 전통문화 고증과 관련한 기관, 단체의 관심과 지원을 기대하고 있다.

여름과 가을이 교차하는 때다. 경주 남산자락에서는 김경자 씨의 손끝에서 신라인들의 옷이 조용하게 만들어지고 있다.


a 한복의 아름다움(사진 왼쪽이 김경자 씨).

한복의 아름다움(사진 왼쪽이 김경자 씨). ⓒ 윤형권

a 천연염색의 아름다운 색상

천연염색의 아름다운 색상 ⓒ 윤형권

a 한복의 멋을 살려주는 옷고름들

한복의 멋을 살려주는 옷고름들 ⓒ 윤형권

a 봉황과 하늘, 달과 태양 등을 자수로 새긴 한복조끼.

봉황과 하늘, 달과 태양 등을 자수로 새긴 한복조끼. ⓒ 윤형권

덧붙이는 글 | 김경자씨로부터 한복을 배우고 싶은 분은 다솜 우리옷 (054-775-8526)으로 연락하면 됩니다.

덧붙이는 글 김경자씨로부터 한복을 배우고 싶은 분은 다솜 우리옷 (054-775-8526)으로 연락하면 됩니다.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나무를 깎는다는 것은 마음을 다듬는 것"이라는 화두에 천칙하여 새로운 일을 모색하고 있습니다.


AD

AD

AD

인기기사

  1. 1 한전 '몰래 전봇대 150개', 드디어 뽑혔다 한전 '몰래 전봇대 150개', 드디어 뽑혔다
  2. 2 "전세 대출 원금, 집주인이 은행에 돌려주게 하자" "전세 대출 원금, 집주인이 은행에 돌려주게 하자"
  3. 3 단풍철 아닌데 붉게 변한 산... 전국서 벌어지는 소름돋는 일 단풍철 아닌데 붉게 변한 산... 전국서 벌어지는 소름돋는 일
  4. 4 국무총리도 감히 이름을 못 부르는 윤 정권의 2인자 국무총리도 감히 이름을 못 부르는 윤 정권의 2인자
  5. 5 결혼-육아로 경력단절, 배우 김금순의 시간은 이제 시작이다 결혼-육아로 경력단절, 배우 김금순의 시간은 이제 시작이다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