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태우, 대통령이라도 귀싸대기 맞는다"

[박철언 회고록 ②] '5공 청산'에 반발한 전두환의 막말

등록 2005.08.12 17:00수정 2005.08.16 11: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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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 전두환 전 대통령

전두환 전 대통령 ⓒ 권우성

12일 출간된 박철언 전 의원의 회고록 <바른역사를 위한 증언>에는 88년 노태우 정권의 '5공 청산' 움직임에 대해 전두환 전 대통령 내외가 크게 반발했다는 내용이 나온다.

당시 전 전 대통령은 노태우 대통령과 민정당이 자신을 보호해주지 않는다며 격분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박철언 회고록 중 '5공 청산과 전 전 대통령의 백담사행'에는 전 전 대통령이 노태우 대통령에게 불같이 화를 냈다는 기록이 나온다. 회고록에 따르면, '5공 청산' 논의가 한창 진행중인 1988년 11월 8일, 박철언 전 의원이 연희동을 찾았을 때 전 전 대통령은 "노태우가 그런 식으로 하면 대통령이라도 나한테 귀싸대기 맞는다"는 막말까지 퍼부었다.

이 자리에는 박 전 의원 외에도 최병렬 정무수석, 박준병 민정당 사무총장, 김윤환 원내총무가 동석한 것으로 알려졌다.

다음은 회고록의 해당 부분.

"이어서 나(박철언- 편집자)를 바라보고는 '형님이나 처남까지 또 잡아넣겠다는 것은…. 검찰에서 엄문, 고문까지 한다는데…. 전경환에 대한 특별면회를 허용치 않는다는데…. 박철언이 그럴 수 있나? 내가 없어지면 다음은 노태우가 목표다. 노태우가 나한테 말 한마디 없이 그런 식으로 하면 아무리 대통령이지만 나한테 귀싸대기 맞는다…. 대통령 이전에 친구요 사람이다. 둘 사이가 원수가 되지 않기를 바란다."

당시 전 전 대통령이 노태우 대통령에게 분노를 삭이지 못했다는 사실은 박철언 회고록 곳곳에서 나타나고 있다. 전 전 대통령은 '귀싸대기' 발언을 하기에 앞서 "차라리 암살범을 시켜 나를 죽이라"며 흥분을 감추지 못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내가 상당히 무리해서 노 대통령이 당선되는데 기여했는데, 이제 와서 나에게 사과하고, 변명하고, 재산 헌납하고, 낙향하라고 얘기하는 것은 나보고 죽어달라고 하는 것보다 더한 짓이다. 차라리 암살범을 시켜 후임자(노태우-편집자)가 선임자(전두환-편집자)를 죽이는 것이 깨끗하다."

회고록에는 또 전 전 대통령뿐만 아니라 이순자씨도 '5공 청산' 움직임에 반발, 노태우 대통령의 부인인 김옥숙씨와 언쟁을 벌인 것으로 나와 있다. 이는 박철언 전 의원이 전 전 대통령을 통해 '전두환-노태우' 사이에 오간 전화통화 내용을 간접적으로 전해들은 대목에서 나타난다.


전 전 대통령은 노 대통령에게 '영부인과 우리 집사람이 전화상으로 가족 문제로 언성을 높였다고 합디다. 대통령과 나 사이의 전화도 신문에 공개되고 있습니다. 청와대에서 언론 플레이를 더티하게 하고 있는 겁니다.…'라고 얘기했다고 통화 내용을 소개했다.

"이순자, '5공 청산' 하소연하며 눈물까지 글썽"

또 김옥숙씨가 박철언 전 의원을 불러 이순자씨와의 전화통화 내용을 말해준 대목에서도 당시 이순자씨가 얼마나 섭섭해 했는지가 잘 드러나 있다.

김옥숙 영부인을 만나니 그 전날 이순자 여사와의 통화 내용을 내게 알려주었다. '어제 연희동 이 여사와 오랫동안, 1시간 40분 동안 통화했다. 서운하고 격한 마음인 것 같더라. 이 여사가 우리를 더 이상 다치게 하면 가만있지 않겠다, 이 체제가 무너질지도 모른다, 5·6공 단절론은 말도 되지 않는다며 심지어 공갈에 가까운 이야기도 하더라'고 말했다.

박철언 회고록에는, 이전에도 이순자씨가 자신을 불러 2시간 45분 동안 하소연을 하며 눈물까지 글썽였다는 얘기도 나온다. 당시 이순자씨는 '새세대육영회' 회장을 맡고 있었고, 관련자들의 비리 혐의 때문에 수세에 몰려 있었다.

이 여사는 '나는 10월 14일에 새세대육영회 총회를 열어 회장직을 사퇴할 예정입니다.…(중략-편집자) 육영회에서 얼마나 많이 유아원을 지원했는데…. 그런데 감사를 나와서는 건물을 시교육위원회에 넘기라고 협박합니다. 노태우 정부에서 이렇게 할 수 있는 겁니까?'라며 눈물을 글썽거렸다.

박철언 회고록에는 이처럼 12·12와 5·18을 함께 거치며 제5공화국을 세운 '동지' 전두환 전 대통령과 노태우 전 대통령이 '5공 청산'을 둘러싸고 첨예하게 대립하게 된 과정이 상세히 설명돼 있다.

전두환 전 대통령 내외는 노태우 대통령에게 분노를 쏟아 부었지만 '5공 청산'이라는 대세를 막지 못했다. 그해 전두환 전 대통령의 동생인 전경환 새마을운동본부 본부장을 비롯해 큰형인 전기환씨, 이학봉 전 민정수석 등 형제와 친인척, 측근들이 줄줄이 비리 혐의로 구속됐다.

1988년 11월 23일, 결국 전두환 전 대통령 내외는 '대국민 사과'를 발표하고 설악산 백담사로 칩거에 들어갔다. 당시 전 전 대통령은 자신의 연희동 사저와 자산 23억원, 퇴임 후 가지고 있던 정치자금 139억원을 국고에 반납한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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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1년 오마이뉴스 입사 후 사회부, 정치부, 경제부, 편집부를 거쳐 정치팀장, 사회 2팀장으로 일했다. 지난 2006년 군 의료체계 문제점을 고발한 고 노충국 병장 사망 사건 연속 보도로 언론인권재단이 주는 언론인권상 본상, 인터넷기자협회 올해의 보도 대상 등을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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