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는 대박을 터트렸을까?

귀국한 안와르 지갑에 든 '로또'를 보며

등록 2005.08.12 19:18수정 2005.08.13 14: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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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난생 처음 경찰서에서 보내 온 소포를 받아 보았습니다. 보내는 사람이 아산경찰서 생활질서계라고 적힌 소포에는 습득물이라고 적혀 있었습니다. 얼마 전 아산경찰서에서 습득물 신고가 된 지갑에 전화번호가 적혀 있어서 연락을 했다는 기억이 떠올랐습니다. 소포 안에는 두 개의 가죽 지갑이 있었습니다.


지갑을 펼쳐 보니, 한 개의 지갑은 어느 정도 안면이 있었던 안와르(Anwar·36)의 것이었고, 다른 하나는 이름은 익숙했지만 지갑 안에 있던 외국인등록증 사본으로는 얼굴을 알아볼 수가 없었습니다. 다만 그 지갑에 있던 단체 사진 속에 낯이 익은 얼굴이 보였습니다.

두 사람에게 연락할 방법이 없을까 하고 지갑을 뒤져 보았습니다. 단서가 될 만한 전화번호가 딱히 없었습니다. 한참을 뒤지다가 우연하게 '소속'이라고 적힌 카드가 있어서 그곳에 적힌 전화번호로 연락을 하고, 외국인은 잘 모른다고 하였지만 전화번호를 남겼습니다.

그런데 얼마 안 있어 전화가 왔는데, "그 사람들 출국했어요. 지갑 잃어버렸다는 소린 벌써 한 달도 더 된 일이었는데… 돈은 만 삼천 원인가 밖에 없었는데 거기에 외국인등록증도 있고 해서 찾아보려고 버스회사에도 연락하고 애를 많이 썼었죠."

출국했다는 사람들에게 전해 줄 방법도 달리 없을 것 같고 해서, 지갑을 덮고 봉투에 넣다가 전화번호를 찾느라고 꺼내 놓았던 종이들에 눈길이 갔습니다. 대부분 오랫동안 지갑에 넣고 다닌 까닭인지 너덜너덜했습니다. 만 삼천 원이라던 현금은 삼천 원이 남아 있었고, 송금을 했던 영수증과 몇 개의 명함 외에 가장 많이 있는 것이 로또 영수증이었습니다.

a 안와르 지갑 내용물

안와르 지갑 내용물 ⓒ 고기복

로또 영수증은 다른 종이들과는 달리 곱게 접어서 잘 정리돼 있었고, 한 번만 샀던 것이 아니라, 상당한 횟수를 샀다는 것을 복권방에서 발급한 영수증을 통해 알 수 있었습니다. 그 중에는 아직 구입하지 않고 번호선택용지에 번호만 색칠한 것도 있었습니다.


'로또' 괜히 웃음이 나왔습니다. 로또가 처음 나왔던 해 추석엔가 온 나라가 로또를 산다고 하던 때가 있었습니다. 그때 교통사고로 수술을 받아 치료를 받던 베트남인 리(Lee)가 로또를 들이대며 "목사님, 나 로또 되면 10억 줄게요. 돈 때문에 걱정하지 마세요" 하던 기억이 새롭게 떠오르더니, 얼마 전에 쉼터를 이용하던 짜오가 로또를 구입해 놓고 당첨됐는지 확인해 달라고 했던 일도 떠올랐습니다. 그러고 보니 로또 대박을 터트린 외국인 이주노동자가 있다는 얘기도 들어본 적이 있는 것 같습니다.

그럼 안와르는 대박을 터트렸을까요? 그가 일하던 회사 사람이 언질을 주지 않는 것으로 봐서 분명 로또로는 돈을 벌지 못했을 것입니다.


하지만 지금쯤 지갑 속 외국인등록증 밑에 소중하게 넣어 뒀던 자신의 아내와 딸아이를 다시 만나 행복한 가정을 꾸려나가고 있을 그는 대박을 터트린 사내가 아닐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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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별과 편견 없는 세상, 상식과 논리적인 대화가 가능한 세상, 함께 더불어 잘 사는 세상을 꿈꿉니다. (사) '모두를 위한 이주인권문화센터'(부설 용인이주노동자쉼터) 이사장, 이주인권 저널리스트로 활동하고 있습니다. 저서 『내 생애 단 한 번, 가슴 뛰는 삶을 살아도 좋다』, 공저 『다르지만 평등한 이주민 인권 길라잡이, 다문화인권교육 기본교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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