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연을 담은 황토빛 사랑, 그 안에 담겨진 문화의 힘

천연염색·규방공예 '등경'과 주인장 정원일씨

등록 2005.08.13 02:49수정 2005.08.13 13: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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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 등경의 처마 긑에 달린 풍경. 바람부는대로 제 몸을 맡기기만 해도 풍경은 신선한 소리를 낸다. 주변도 덩달아 신선해 보인다.

등경의 처마 긑에 달린 풍경. 바람부는대로 제 몸을 맡기기만 해도 풍경은 신선한 소리를 낸다. 주변도 덩달아 신선해 보인다. ⓒ 도성희

a 천연염색 공간인 '등경’의 정원일씨는 자연을 닮고 싶어 ‘자연스럽게’ 살고 있는 사람이다

천연염색 공간인 '등경’의 정원일씨는 자연을 닮고 싶어 ‘자연스럽게’ 살고 있는 사람이다 ⓒ 도성희

흔히 쉽게 구할 수 있는 것을 우린 '지천에 깔렸다'라고 표현한다. 주로 풀과 나무, 들꽃 등을 말할 때 쓰이는데 요즘은 그것도 옛말이 된 지 오래인 듯하다. 노루귀니 초롱꽃이니 담낭화니 처녀치마니 매발톱이니 하는 꽃들은 귀한 야생화로 분류되어 화분 속에서 곱게 길러지고 있으니 말이다.

그래도 아직까지는 많은 잡초와 들풀, 들꽃들이 사람들의 발끝에 제 몸을 채여도 굳건히 그 뿌리를 내리고 산다. 자연은 그런 것이다. 강인함과 당당함 거기에 의연함까지 보여준다. '등경'의 정원일(46)씨는 그런 자연을 닮고 싶어 '자연스럽게' 살고 있는 사람 중의 하나다.


경주시 강동면 왕신리 산 아래에 '등경'이라는 작은 간판을 달고 사는 사람이 있다. 천연염색과 규방공예를 업으로 한다지만 사는 눈치를 보면 물질만능의 경제개념과는 좀 거리가 있는 듯하다. 멀리서 보기에는 저택(?) 같은 분위기의 집인데 가까이에서 보면 뭔가 다르다.

a 천연염색은 운명처럼 그에게 왔고 그는 온전히 받아들여 평생 업으로 삼았다. 등경의 뒷마당에는 항상 황토빛 천이 나풀거린다.

천연염색은 운명처럼 그에게 왔고 그는 온전히 받아들여 평생 업으로 삼았다. 등경의 뒷마당에는 항상 황토빛 천이 나풀거린다. ⓒ 도성희

그 궁금증은 정씨의 말을 통해 금방 풀렸는데 집 전체를 폐자재로 만들었단다. 나무는 주로 건설현장에서 버린 폐 판지를 이용했고 창문은 아파트 모델하우스에서 뜯겨져 나온 새시(sash, 일명 샷시)를 이용했다.

집을 짓는 것도 물론 자신의 손으로 하나씩 만들어갔으니 대단하다. 1년 3개월 만에 완성된 집은 평당 기백만 원 한다는 집들보다 훨씬 좋아 보였다. 구조도 주인 맘대로 해놔서 편리하게 보였겠지만 무엇보다도 못 하나 하나에 정성 들인 맘까지 합하니 집이 사람들과 어울리는 일부분 같다.

정씨가 천연염색을 한 것은 5년 정도. 그다지 많은 세월은 아니지만 운명처럼 경주에 정착하고 황토옷에 반해 시작했다. 부인 박미영(43)씨와 함께 경주 내남면에서 작은 찻집을 운영하며 시작한 것이 이제는 업이 된 것이다.

그가 굳이 황토와 감옷을 선택한 또 다른 이유는 매염제 때문이다. 천연염색이 각광을 받으면서 매염제도 자꾸만 화공약품을 쓰게 되는데 알루미늄, 동, 철, 나트륨 등 매염제 원료들은 지하수를 오염시키는 원인이 된다. 그래서 그는 매염제를 쓰지 않는 황토염색을 고집한다.

a 그의 염색천으로 만든 우리옷들. 등경에서는 염색의 마지막 손질인 다림질일을 마을 할머니들께 드린다. 할머니들은 다듬이로 옷을 손질하며 소일거리를 얻고 그는 어떤 최신 다리미로 다린 것보다도 더 잘 다듬어진 천과 인심을 얻는다.

그의 염색천으로 만든 우리옷들. 등경에서는 염색의 마지막 손질인 다림질일을 마을 할머니들께 드린다. 할머니들은 다듬이로 옷을 손질하며 소일거리를 얻고 그는 어떤 최신 다리미로 다린 것보다도 더 잘 다듬어진 천과 인심을 얻는다. ⓒ 도성희

a 그의 집에는 온통 재활용품이다. 하지만 그 폼새는 명품보다도 훨씬 값져 보인다. 그가 만든 만파식적 스피커와 보인다.

그의 집에는 온통 재활용품이다. 하지만 그 폼새는 명품보다도 훨씬 값져 보인다. 그가 만든 만파식적 스피커와 보인다. ⓒ 도성희

황토염색과 함께 바느질도 누이에게 한 시간 정도 수업 받은 것을 제외하곤 모두 독학으로 익혔다는 그는 무엇이든 무조건 해보는 것이 최선의 방법이라고 한다. 이제는 하루에 딱 네 시간만 염색 작업을 하고 나머지는 야생화도 기르고 텃밭도 가꾸고 다양한 물건들도 만들고 음악도 들으며 그야말로 자신만의 사람살이를 한다.

물론 거기에서 생산의 기쁨을 누리는 것은 당연하다. 지난 해 공예대전에 출품했던 대나무를 이용한 만파식적 오디오도 그 기쁨 중 일부다. 야생화도 황토옷 디자인에 접목시키기 위한 것이라 하니 결국 하루 전체를 생산을 위해 투자하는 셈이다.


'등경'은 올해 동국대학교 관광산업연구소에서 처음 실시한 경주문화체험인증제 업체로 선정됐다. 염색공예와 규방공예를 체험할 수 있는 '등경'은 주로 가족단위 체험단이 많이 찾는데 이불 한 채를 염색하는데 재료비까지 합쳐 3만 원 정도의 비용이 들고, 재료를 가져올 경우는 무료다.

a 정원일씨는 하루에 4시간만 염색작업을 한다.  야생화도 기르고 텃밭도 가꾸고 다양한 물건들도 만들고 음악도 들으며 그야말로 자신만의 사람살이를 한다.

정원일씨는 하루에 4시간만 염색작업을 한다. 야생화도 기르고 텃밭도 가꾸고 다양한 물건들도 만들고 음악도 들으며 그야말로 자신만의 사람살이를 한다. ⓒ 도성희

단체의 경우 10명 이상이면 받지 않는데 이유는 인원이 많으면 깊이 있는 체험이 되지 않기 때문이란다. 그래서인지 '등경'을 한 번 다녀간 사람들은 주인 정씨와 꾸준하게 친분관계를 유지한다. 그만큼 가족적인 분위기 속에서 체험을 할 수 있는 곳이 '등경'이다.


경주의 첫 정착지인 내남면에 있을 때, 지역에서 공방을 하는 사람들과 함께 '찾아가는 갤러리'를 기획했던 정씨는 한 달에 한 번씩 전시회를 갖는다. 집 전체를 전시공간으로 활용하는 것이다. 염색은 생활의 한 부분일 뿐 가장 자연적으로 살아가는 것이 삶의 목표라고 말하는 그는 냉장고와 에어컨을 없애고 화장실도 친환경 재래식 화장실로 만들었다.

물론 체험객을 위한 화장실은 따로 있지만 말이다.

"황토야말로 우리 민족의 정서인 흙과 짚 문화를 느낄 수 있는 자연이지요."

만지면 만질수록 재미있는 것이 흙이고 황토라는 정씨는 '등경'이 그저 천연염색만을 하는 공간이 아니라 자연과의 교류를 통해 그 안에 담겨진 문화의 힘을 느껴볼 수 있는 공간이 되기를 소망한다. 자연스러움의 어울림이 주는 기쁨을 알기 때문이리라.

a '등경’은 올해 동국대학교 관광산업연구소에서 처음 실시한 경주문화체험인증제 업체로 선정됐다. 염색공예와 규방공예를 체험할 수 있으며 주로 가족단위 체험단이 많이 찾는데 이불 한 채를 염색하는데 재료비까지 합쳐 3만 원 정도의 비용이 들고, 재료를 가져올 경우는 무료다.

'등경’은 올해 동국대학교 관광산업연구소에서 처음 실시한 경주문화체험인증제 업체로 선정됐다. 염색공예와 규방공예를 체험할 수 있으며 주로 가족단위 체험단이 많이 찾는데 이불 한 채를 염색하는데 재료비까지 합쳐 3만 원 정도의 비용이 들고, 재료를 가져올 경우는 무료다. ⓒ 도성희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경주세계문화엑스포 소식지 'EXPO 문화사랑 8월호에도 게재됐음을 밝혀둡니다.

덧붙이는 글 이 기사는 경주세계문화엑스포 소식지 'EXPO 문화사랑 8월호에도 게재됐음을 밝혀둡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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