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집의 슬픈 전설이 된 모과나무

담장 공사 때문에 무참히 베어지다

등록 2005.08.14 23:36수정 2005.08.15 19: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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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 쓰러진 모과나무

쓰러진 모과나무 ⓒ 정수권

"아빠, 시골 큰집에 무슨 일이 있는 모양인데요."
"무슨 일?"
"잘은 모르겠는데 뒤뜰에 있는 모과나무 때문에 큰아버지께서 엄청 화가 나셨다는데요."


나는 퍼뜩 집히는 데가 있어 얼른 전화를 걸었다.

작년 이맘때쯤 돌아가신 아버님 기일이라 고향 영양을 다녀왔다. 제사를 지내고 새벽에 출발, 부산에 도착하여 회사로 바로 출근하였다. 퇴근 후 저녁식사를 마치고 거실에서 TV를 보고 있는데, 올해 고등학교 1학년인 아들 문호가 저희 종반끼리 인터넷으로 안부를 주고받다가 느닷없이 물어왔다.

마음이 급해서일까? 전화기 신호음이 한참 울린 후 당시 고등학교 2학년인 장조카가 전화를 받았다. 내가 무슨 일이냐고 묻자,

"뒤뜰의 모과나무가 흔적도 없이 사라졌어요. 저도 자세한 내용은 모르지만 아마 담을 쌓는 아저씨들이 나무를 포크레인으로 베어버렸나 봐요."

나는 그대로 주저앉았다. 갑자기 피가 거꾸로 솟는 듯 했다.


"아버지 좀 바꿔봐라."
"아버지는 화가 나서 그 사람을 찾아 나가시고 안 계세요."
"알았다."

나 역시 화가 나서 안절부절하다가 대구에 있는 동생한테 전화를 했다. 아우 역시 금시초문이라며 내 얘기를 듣고 어이가 없다며 울분을 토했다.


a 미끈하게 잘생긴 모과나무

미끈하게 잘생긴 모과나무 ⓒ 정수권

우리 집 모과나무. 가만히 헤아려보니 마을에서 세 번째로 오래된 거목이다. 우리나라 3대정원의 하나인 서석지(瑞石池)의 은행나무가 약 400년 가까이 되었고 동네입구의 당산나무 다음으로 큰 나무다. 아버지 살아계실 때, 내가 언젠가 여쭈어보니 정확한 햇수는 모르시고 당신이 어렸을 적에도 지금처럼 크기가 비슷했다고 하셨으니 내가 추정컨대 수령은 약 150년 정도일 것이다.

그 옛날 할머니, 어머니께서 정화수를 떠놓고 소원 비시던 뒤뜰에 늘 말없이 서있는 순 토종 모과나무로, 한해도 거르지 않고 해마다 우리에게 한 아름 모과를 선물했다. 비료나 거름 한번 준일 없고 벌레도 먹지 않아 약은 더더욱 쳐준 일 없어도 늘 그 자리에 있으면서 우리 집 역사를 꿰고 있었다.

매년 가을이 오면 노란 모과를 따서 갈무리하여 유용하게 썼으며, 이웃집에 나누어 주기도해 그 시절 병원도 약방도 없는 시골이라 몸이라도 아프면 모과를 달여 그 뜨거운 물을 마시고 이불을 뒤집어쓰고 땀을 푹 내면 웬만한 고뿔감기는 씻은 듯 나아 동네 의원 노릇(?)도 톡톡히 했으며 가끔 장사꾼들이 들러 약재로 사가기도 했다. 또한 모과를 얇게 썰어 술을 담그면 그 짙은 향은 담장 밖에서도 맡을 수 있어 가끔 사람들이 찾아와 나누어 마셔서 나는 아주 어려서부터 그 맛을 보았다.

이런 일이 일어나기 전에는 내가 추석에 들러 가장 먼저 하는 일은 잘생겨도 모개인 잘 익은 놈 여남은 개를 가져와 아파트 방안이며 거실에 두었고, 승용차 안에도 넣어 두면 다른 과일과는 달리 썩어 새카맣고 딱딱해 질 때 까지 향이 남아 버리지 못한다.

우리 마을은 유교문화권 개발 사업차 민속마을로 지정되어 영양군에서 마을의 오래된 담장을 전부 새로 쌓았다. 담장을 헐고 잘못 쌓으면서 우리 집 감나무 한그루가 이웃집으로 넘어가버린 웃지 못 할 일을 내가 <오마이뉴스> 시민기자가 되어 첫 번째 글로 올렸고, 의외로 반응이 좋아 조회 수 약 600회에 이르렀다.

그런데 그 담장 때문에 또 하나의 나무가 수난을 당했다. 밤늦게 돌아온 형님과 통화를 했다. 아직도 분이 안 풀린 모양이다.

"잡히면 가만두지 않으려했는데…."

그날도 늦게까지 들에서 일하다가 집에 돌아 왔을 때 나무가 보이지 않아 뒤뜰로 가보니 나무는 산산조각이 나고 뿌리마저 캐내어 가루를 만들어 놓아 억장이 무너졌다고 했다.

담장을 쌓기 위해 기초공사로 굴삭기로 바닥을 파는데 담에 바짝 붙은 나무뿌리가 걸렸던 모양이었다. 나무가 있는 사이를 띄어두고 담을 쌓으면 될 것을, 무식하면 용감하다던가. 조자룡 헌 칼 쓰듯 하고 왜군이 동래성 함락하듯이, 그야말로 작살을 낸 것이다.

나무가 우람하고 건강하여 과수목의 미스터코리아요, 모과나무의 장동건인, 그 잘생긴 나무를 술 한 잔 따르지 못하고 무참히 베어져 못내 안타까웠다.

내가 억울하다며, 고소라도 하여 그 한을 풀어주라고 말씀드렸더니, 그러마하고 전화를 끊었다.

그 전날 오후 내가 시골집에 도착했을 때 뒷담을 새로 쌓기 위해 헐어두었다. 요즘은 담을 허무는 것도 굴삭기로 하다 보니 작업과정에서 가지가 부러지고 나무에 생채기가 나있었다. 가까이 가서 저녁어스름에 올려다본 나무가 그날따라 무척 애처로웠고 꼭 무슨 일이 일어날 것만 같아 사진을 찍어두었었다. 그러나 그것이 마지막 사진이 될 줄이야, 아직도 가슴이 아프다.

a 저 푸르고 푸른 나무도 이제 더 이상 볼 수 없다

저 푸르고 푸른 나무도 이제 더 이상 볼 수 없다 ⓒ 정수권

그로부터 얼마 후, 형님께 전화를 했더니

"어쩌겠노? 내가 참아야제" 하시면서, 굴삭기 기사는 쫓기다시피 가버리고 영양군에서 중재를 하고 공사현장 소장의 간곡한 사과를 형님이 받아들여 일단락 지었다고 했다.

시골에서 살면서 모나게 살지 못하는 형님 성격을 아는지라 나도 더 이상 얘기하지 않았다.

올해도 여름이 왔다. 해마다 여름이 오면 그 푸른 모과나무가 생각날 것이다. 그러나 이제는 우리 집의 가장 슬픈 전설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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