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니폼을 입으면 섹시하다?

우리 안의 '제복 판타지'를 진단한다

등록 2005.08.15 15:30수정 2005.08.16 09: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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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 대한항공 새 유니폼 광고

대한항공 새 유니폼 광고 ⓒ 대한항공

대한항공이 바뀌었다. 유니폼을 바꾸고, 새로운 도약을 위해 거듭나겠다고 선언했다. 광고도 몰라보게 달라졌다. TV 광고 '패션쇼' 편에서 늘씬한 미녀들이 달라진 제복을 입고 당당하게 워킹을 하는 모습이 눈길을 잡아끈다.

어찌 보면 제복으로선 엄청나게 파격적인 색인 푸른 빛깔의 강렬한 이미지도 마음에 든다. 세련되고 활동적인 화면을 칭찬하는 사람도 많다. 하지만 한편으로는 대한항공의 새로운 TV 광고가 어쩌면 은밀한 욕구를 감추고 있을지 모른다는 생각을 떨쳐버릴 수가 없다. 제복에 대한 '기묘한 시선'이 바로 그것이다.


공손하기 보다는 도발적인 광고

대한항공의 광고 '패션쇼' 편은 항공사들이 고수해왔던 기존의 광고들과는 사뭇 다르다. 지금까지 항공사 광고의 주된 이미지는 가지런한 이를 드러내고 조용히 웃는 승무원의 미소, 혹은 경치 좋은 관광지의 풍경, 크게 둘로 나누어볼 수 있었다.

이번 대한항공의 광고에서도 승무원들의 모습이 등장하기는 하지만, 그것은 승무원의 이미지라기보다는 차라리 모델의 그것으로 느껴진다. 부탁하면 뭐든지 다 해 줄 것 같은 공손함으로 무장한 기존 여성 모델의 이미지와는 확실히 다르다. 그 어느 때보다 '제복'을 앞세운 도발적인 광고라는 느낌이 지배적이다.

이 광고에 대한 누리꾼의 반응을 정리해 보면(출처: www.tvcf.co.kr) 이렇다.

-전체적으로 세련된 이미지다.
-워킹하는 외국 모델들이 예쁘다.
-제복이 마음에 든다.
-역시 유니폼을 입은 여자가 섹시하다.



주로 바뀐 제복에 관한 이야기와, 그 제복을 입은 승무원과 여성들에 대한 호감이 주를 이룬다. 기존 광고에서 잘 드러나지 않았던 제복에 관한 이야기가 유난히 많다(그동안의 광고에서 승무원들이 제복을 입고 나오긴 했지만, 제복에 초점을 맞추었다기보다 웃는 얼굴, 공손한 몸짓을 더 강조했던 것으로 생각된다).

이번 광고의 가장 중요한 키워드는 바로 '유니폼'과 '섹시함'이다. 적지 않은 이들이 제복에서 거부할 수 없는 매력을 느낀다고 고백한다. 가지각색의 매력이 있을 수 있겠지만, 보통사람이 제복에서 가장 크게 느끼는 부분은 바로 '섹슈얼한 긴장감'이 아닐까 싶다.


"제복은 성적 매력을 극대화"

'내 여자친구를 소개합니다'라는 영화는 PPL로 도배된, 전지현의 이미지를 완전히 벗겨 먹은 그저 그런 영화라는 혹평을 받았다. 하지만 그 영화도 나름의 미덕을 갖추긴 했으니 역시 그것은 전지현이라는 인물. 특히 경찰 제복과 총으로 무장한 전지현은 정말 볼만했다, 제복을 입으니까 더 섹시하고 예쁘더라는 의견에는 대부분 관객이 고객을 끄덕일 테다.

인터넷 커뮤니티 '제복사랑모임'의 운영자 임정훈씨는 "레이스로 장식된 원피스 자락을 나풀거리는 여성과는 또 다른 매력을 풍긴다"면서 제복예찬의 운을 띄웠다. "규율과 규칙에 따라 움직이는 사람들이 멋있어 보이는 것이 당연하지 않느냐"며 "자유로운 것을 좋아하면서도 법이나 질서에 순응하고 싶어 하는 심리가 사람 모두에게는 있는 것 같다"고 풀이했다.

뭇 여성들도 제복을 입은 사람에게 흠모의 눈길을 보내기는 마찬가지. 대학생 이진화(23·청주시)씨는 "학교 안에서 제복을 입고 다니는 ROTC의 인기는 상상을 초월한다"며 "남자답고 확실하게 자기 일 처리를 할 것 같은 이미지 때문인 것 같다"고 말한다. "이유를 알 수는 없지만, 왠지 모르게 멋있고 제복이 성적 매력을 극대화해주는 것 같은 느낌을 준다"고 덧붙이기도 했다.

이러한 사람들의 시선은 에로영화 시장을 움직이는 힘으로 작용하기도 한다. 교복을 입은 여고생, 간호사, 스튜어디스, 그리고 제복과 사촌지간이라 할 수 있는 정장 차림의 오피스걸은 에로영화의 단골 출연자다.

취업준비생 김재현(가명·27)씨는 "단정하고 정형화된 차림새를 한 사람을 보면 그 틀을 깨보고 싶은 충동이 생긴다"며 "일탈을 통해 카타르시스를 꿈꾸는 것은 보통 사람의 심정일 것"이라고 솔직히 털어놨다.

우리 안의 제복 판타지

소속감과 긴장감을 부여하는 단정한 제복이 일탈을 꿈꾸게 한다거나 성적 매력을 극대화하는 소도구가 될 수 있다는 사실은 지극히 역설적이다. <야심만만 심리학>이라는 책에서는 제복 숭배자는 권위적인 동시에 제복 안에 자유로움을 감추고 싶어 하는 마음을 함께 갖고 있다고 지적하고 있다.

알게 모르게 우리는 제복을 동경하는 마음을 의식 반 겹 아래 담아두고 있지는 않나 생각해보게 되는 대목이다. 누군가는 무한한 자유로움을 추구하는 것 같은 인간이 알고 보면 그 자유로부터 도피하고자 안간힘을 쓰고 있는 존재라고 말했다. 단정함 사이에서 흐트러짐을 찾고, 또다시 규율과 질서정연한 모습을 찾는 우리. 어쩌면 사복을 입지 못해 안달했던 고등학생이 대학에 진학하자마자 교복이라는 제복을 동경하게 되는 것은 당연한 일이 아닐는지.

제복이 갖고 있는 매력도 그것이 규율과 일탈의 경계에 서 있기 때문에 가능한 것이 아닐까 생각해 본다. 긴장감과 그 긴장감을 해제해보려는 앙큼한 욕심. 제복에 대한 기묘한 시선은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누구나 갖고 있다. 아니라고 말하는 당신, 좀 더 솔직해지시라. 승무원, 군인, 여고생. 제복 입은 그들을 보며 나도 모르게 침을 삼키는 자신을 어느 순간 발견할 테니.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자임(www.zime.co.kr)에서도 보실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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