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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인생 최악의 여행] 5시간 반 걸려 도착한 강화 석모도, 도로 사정 개선 시급할 듯

등록 2005.08.15 21:42수정 2005.08.16 10: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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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 한 대 없이 뻥 뚫린, 도로 옆 논길이 너무도 부러운 하루였다.
차 한 대 없이 뻥 뚫린, 도로 옆 논길이 너무도 부러운 하루였다.유영수
영화 <시월애>와 <취화선>의 촬영지이며, 서해 3대 낙조로도 유명한 석모도에 대한 칭찬이 끊이질 않는다. 뿐만 아니라, 낙가산 중턱에 자리잡은 우리 나라 4대 관음도량 중 하나인 보문사와 전국적으로 그 품질이 손꼽히는 천일염을 생산해 낸다는 삼량염전 그리고 민머루해수욕장의 드넓은 갯벌까지. 이곳에 대한 잡다한 정보를 접한 여행객은 부푼 가슴을 안고 집을 나서게 된다.

당일 코스로 다녀오기 좋다는 설명과 함께 석모도에 대한 각종 언론매체의 기사 그리고 인터넷 카페와 블로그에 오른 글과 멋들어진 사진 또한 여행을 충동질 하기에 충분하다. 그러나 정작 가장 중요한 교통편의 취약성에 대한 자세한 글은 눈을 씻고 찾아봐도 발견하기가 힘들다.


어제(14일) 아침, 여름휴가를 시골 처가에서 보낸 아쉬움을 달래고자 당일 코스로 석모도를 향해 차를 몰았다. 석모도에 가기 위해선 강화도의 외포리 선착장에서 배에 차를 싣고 바다를 건너가야 하기에, 평소 강화도 오가는 길이 교통 체증에 시달린다는 것을 익히 알고 있는 터라, 우리 일행은 오전 10시쯤 출발했다.

더 빨리 출발하려는 생각도 있었지만 낙조를 보고 오려면 저녁 늦게까지 있다 와야 하는데, 너무 일찍 도착할 경우 그리 크지 않다는 석모도에서 하루종일 시간을 보내기가 무료할지 모른다는 우려가 있었기 때문에 그 정도 시각을 택한 것이다.

하지만 우리의 생각은 보기 좋게 빗나갔다. 비교적 늦지 않은 시각에 출발한 덕에 김포를 거쳐 강화도까지 도로 사정은 순조로웠다. 영등포구 대림동인 집에서 외포리 선착장까지 2시간 정도를 예상했는데, 거의 비슷한 시간이 소요된 것이다.

그런데 문제는 외포리 선착장을 2km 남겨둔 지점에서부터 발생했다. 차량에 부착된 네비게이션에는 선착장이 아주 가까이 표시되었음에도, 그곳까지 가기 위한 힘든 여정은 계속되었다.

외포리 선착장 가까이에서 정체된 도로 주변의 풍경
외포리 선착장 가까이에서 정체된 도로 주변의 풍경유영수
처음에는 '여행을 다니다 보면 이런 일도 있는 거지' 하며 느긋하게 주변 풍경을 구경하며, 차 안에서 여유롭게 디카로 사진도 찍어가면서 지루함을 달랬다. 그러나 기다림은 끝이 없었다. 기다림에 지친 사람들은 하나씩 차를 돌려 온 길을 되돌아 가기도 했다. 결국 선착장까지 2km의 거리를 도로 위에서 보낸 시간이 무려 2시간.


아무리 좋은 쪽으로 생각해 보려 해도 정말 너무하다는 생각을 지울 수가 없었다. 결국 선착장에서 도착한 차 순서 대로 줄을 서 있다 10분간의 짧은 배편으로 석모도에 다다른 시각이 오후 3시 30분. 70km 밖에 안 되는 거리를 5시간 30분을 걸려 도착한 것이다.

유영수
매년 식목일이면 시제를 지내기 위해 전북 고창으로 향하는데 서해안 고속도로 덕분이긴 하지만, 아침 일찍 출발하면 2시간 30분이면 족히 시골집 마당에 들어서곤 한다. 거기에 비하면 이건 정말 끔찍한 일이 아닐 수 없다.


석모도에서 다시 강화로 나오는 마지막 배편이 오후 8시 30분이라고 하니 식사시간을 제외하면 3시간 정도 밖에 남지 않은 것이다. 서둘러 계획을 수정하기로 했다. 마애삼존불이 있는 보문사와 삼량염전 그리고 어류정 저수지의 낚시터 등은 모두 포기한 채 민머루 해수욕장으로 향했다.

그 길고 긴 기다림을 견뎌내고 어렵게 당도한 석모도에서 유명한 곳들을 모두 둘러보지 못한다는 아쉬움은 컸지만, 당일코스로 출발한 여행이었기에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그래도 한 가닥 희망은 남아 있었다.

민머루 해수욕장의 갯벌. 천연머드팩 하나는 여느 서해안 해수욕장에 비해 뒤지지 않아 보였다.
민머루 해수욕장의 갯벌. 천연머드팩 하나는 여느 서해안 해수욕장에 비해 뒤지지 않아 보였다.유영수
바로 서해 3대 낙조의 하나인 석모도의 낙조에 대한 기대감이었다. 어찌 보면 석모도 여행의 진짜 목적은 거기에 있었는지도 모른다. 오랜동안 해오름과 해넘이에 대한 갈증에 목말라하던 나에게, 석모도는 해수욕장 한 번 못 가보고 여름을 지난다는 아쉬움을 달램과 동시에 낙조를 본다는 일석이조의 역할을 충분히 할 것으로 기대를 한 것이다.

하지만 기다림의 연속은 아직도 끝나지 않았다. 민머루 해수욕장 입구에서부터 또다시 차량행렬로 몸살을 앓고 있는 게 아닌가. 갑자기 밀려든 황금연휴의 피서인파로 인한 것이기도 하지만, 더 큰 문제는 충분히 확보되지 못한 진입로 때문이었다. 해수욕장에서 나오는 차량과 교행하기조차 힘든 좁은 도로는, 운전이 미숙한 사람의 차량을 자칫 논두렁으로 빠트리게 할 정도로 협소하기 그지 없었다.

드넓은 갯벌을 무한질주하는 아이를 순간포착해 보았다.
드넓은 갯벌을 무한질주하는 아이를 순간포착해 보았다.유영수
우여곡절 끝에 해수욕장 주차장에 차를 대고 해변가에 짐을 푼 후 갯벌로 향했다. 물이 얼마나 많이 빠져 있었던지 바닷물이 있는 곳까지 걸어가는 시간만 해도 10분은 족히 걸린 것 같다. 바닷물에 몸을 담그고 힘든 여정에 지친 마음을 달래주다 주린 배를 채우기 위해 다시 해변으로 나왔다.

사실 마지막 뱃시간에 맞추기 위해서 촉박한 시간을 아끼려고 바닷물에서 나왔다는 말이 더 맞을 것이다. 해수욕장 근처에 있는 횟집에서 간단하게 식사를 마치자 일몰시각이 다가온다. 성급히 카메라와 삼각대를 챙겨들고 낙조를 찍기 위해 자리를 잡는다.

온 몸에 머드팩을 하고 포즈를 취해 보았다. 사실은 볼록 나온 배를 감추기 위해서...
온 몸에 머드팩을 하고 포즈를 취해 보았다. 사실은 볼록 나온 배를 감추기 위해서...유영수
그런데 역시 재수없는 날은 엎어져도 코가 깨지는가 보다. 구름이 조금 많이 낀 흐린 날씨이긴 했어도 지는 해를 카메라에 담기 힘들 정도는 아니라고 생각했는데, 일몰시각이 가까울수록 구름의 모양은 예사롭지 않았다.

결국 금산 보리암에서 보았던 일출 때의 형상과 같이 구름 사이로 조금 삐져나온, 붉은 기운을 보는 것만으로 만족해야 했다. 온몸에서 기운이 빠진다. 그 고생을 해가며 어렵게 석모도에 와서 다른 곳도 다 포기하고, 그나마 낙조의 장관만이라도 담아가려 했건만….

부끄러워 하는 새색시처럼 숨어버린, 아쉽기만 한 낙조의 순간
부끄러워 하는 새색시처럼 숨어버린, 아쉽기만 한 낙조의 순간유영수
아쉬운 마음을 애써 참아가며 짐을 정리해 서둘러 다시 석포리 선착장으로 향한다. 그런데 고난은 다시금 이어진다. 해수욕장을 벗어나서 조금 시원하게 달리나 싶더니 배를 타고 강화도로 나가기 위한 행렬이 또다시 끝없이 이어져 있는 것이었다.

그나마 외포리 선착장에는 아쉬우나마 주차장이 마련돼 있어 도로에 이어진 차량행렬의 꼬리가 좀 덜했지만, 석포리 선착장에는 그마저 없었기에 꼬리에 꼬리를 문 차량의 행렬은 짐작하기 힘들 정도로 길게 이어져 있었던 것이다.

편도 1차선의 꼬불꼬불한 도로에 차량들이 길게 서 있으니, 선착장이 아닌 다른 곳으로 향하는 차들은 불가피하게 역주행을 하며 곡예를 할 수밖에 없었다. 한참을 기다리며 조금씩 아주 조금씩 진행하다 도로 한복판에 세워진 안내표지판의 문귀가 얄궂게 느껴진다.

'도로가 협소하여, 사정이 좋지 않을 때는 진입을 금하오니 협조하여 주시기 바랍니다. 삼산파출소장' 참 편리한 발상이라는 생각이 들 뿐이었다. 또 다시 배를 타기 위해 기다린 지옥 같은 두 시간. 선착장에 힘겹게 도착해 차량을 인도하는 사람에게 차창을 열고 물어본다.

'여기는 주말엔 항상 이런가요?'
'겨울을 제외하곤 연휴 때는 늘 이 정도입니다.'

강화도로 나온 후 서울로 돌아오는 차 안에서 피로에 지쳐 잠든 집사람을 보니 미안함에 몸둘 바를 모르겠다. 북한산 아래 일영의 계곡으로 물놀이 가자는 사람을 설득해서 멋있는 곳으로 데려가겠다고 했겄만, 결국 열악한 도로사정과 선착장의 여건 때문에 무려 10시간을 차 안에서 보내게 하고 만 것이다.

집에 도착한 시각이 밤 11시 30분. 앞으로 누가 강화도나 석모도에 대해 나에게 물어본다면 웬만하면 다른 곳으로 가라고 권할 것 같다. 그래도 정 가고 싶다면 연휴는 꼭 피하되, 새벽 같이 출발해서 다음 날 아침 첫 배로 석모도를 빠져 나오라고 할 것이다.

인천시는 석모도와 인근 황산도 일대를 어촌체험 관광단지로 조성하고, 석모도에 100만 평 규모의 온천을 개발하는 계획을 발표한 바 있다. 하지만 그에 앞서 도로와 선착장에 대한 시급하고도 충분한 보완대책이 마련되어야 할 듯하다. 그렇지 않으면 석모도는, 한 번이라도 가본 사람들에게 '주위 사람에게 극구 만류하고 싶은 여행지 1위'로 뽑히는 불상사를 초래하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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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을 사랑하고 대자연을 누리며 행복하고 기쁘게 살아가는 사람입니다. 서울에서 평생 살다 제주에서 1년 반,포항에서 3년 반 동안 자연과 더불어 지내며 대자연 속에서 깊은 치유의 경험을 했습니다. 인생 후반부에 소명으로 받은 '상담'을 통해 많은 사람들이 더 행복한 가정생활을 할 수 있도록 돕는 것을 꿈꾸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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