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국 관광 대신 금강산에 오길 참 잘했다'

[금강산 여행기 첫 번째 이야기]

등록 2005.08.16 23:47수정 2005.08.17 09: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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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 2박3일 동안 금강산 여행을 함께 했던 우리 일행

2박3일 동안 금강산 여행을 함께 했던 우리 일행 ⓒ 허선행

'오는 사람의 성품에 따라 금강산의 날씨는 변한다'는 가이드의 말이 사실이라면 우리 모두 기분 좋은 일이었다. 잡아 놓은 여행 날짜의 출발시간에 억수 같이 쏟아지던 비가 고성에 도착할 즈음 멎었기 때문이다.

우리가 타고 간 관광버스에서 내려 출입국사무소에서 짐 검색까지 하니 다른 나라 여행을 가는 절차처럼 느껴졌다. 외국 여행과 다른 점이 있다면 카메라와 비디오의 성능까지도 본다는 점이었다. 까다로운 검색대를 지나 금강산 관광버스에 오르니 마침내 가게 되는구나 하는 안도의 마음이 든다.


비무장지대는 고요하고 평화로워 보였다. 언뜻언뜻 차창 밖으로 보이는 철조망만 아니라면 바깥풍경은 평범한 여행지일 뿐이다. 갑자기 낯선 군복이 눈에 들어오니 그제야 '내가 북한 땅에 들어섰구나' 실감이 났다.

열일곱 살이나 되어 보일까 말까한 앳된 얼굴의 북한 군인의 보초서는 모습이 보인다. 뜨거운 햇살에 부동자세로 서 있는 모습이 안쓰럽기 조차하다.

우리는 다시 버스에서 짐을 들고 내려 북측 출입국사무소로 들어섰다. 이곳에 올 때처럼 검색대를 지나기는 마찬가지인데 낯선 복장의 군인들 때문인지 아니면 내가 있는 곳이 북한이라서인지 잔뜩 긴장이 되었다.

관광증을 내미는데 바로 내 앞의 여자선생님을 다시 불러 세운다. 유심히 모니터 사진과 얼굴을 살펴보더니 다시 가라고 한다. 일행이라 찰나였지만 공연히 걱정이 되었다.

안내하는 분이 이곳에서는 가이드라는 영어 표현보다 '조장'이라고 불러 달란다. 우리의 안내를 맡았던 분이 우리 일행 중에서 한 분을 대표로 뽑아 그 분은 '줄반장'이 되었다. 체격이 워낙 좋아 줄반장이라는 칭호가 잘 어울린다며 시시때때로 우리는 줄반장을 외쳐댔다.


각자의 짐을 다시 버스에 싣고 출발했다. 멀리 농촌풍경이 눈에 들어온다. 보안상의 문제로 버스 안에서 바깥풍경 사진을 찍지 말라는 이야기를 여러 차례 들어 온 터라 아예 카메라는 꺼내지도 않은 상태다.

일을 하는데 지키고 서 있는 듯 보이는 군인의 모습이 영 낯선 풍경이다. 관광로를 둘러싼 철망 사이로 동네가 보인다. 사람들은 보이지 않고 고즈넉한 시골 마을의 한적함이 보였다. 옛날 기와를 얹은 지붕에도 정이 간다. 어릴 적 교과서 그림을 보는듯한 착각도 잠시 금방 숙소에 도착했다.


우리 일행이 묵을 숙소는 해금강 호텔이다. 일곱 집의 숙소가 5층에 나란히 자리 잡았다. 버스를 타고 오는 시간은 30분도 채 안 되는데 수속 밟고 기다리는 시간이 있어서 저녁시간이 되었다.

'온정각'이라는 이름의 센터 역할을 하는 만남의 광장 같은 곳에서 돈을 내고 카드 충전을 했다. 이곳에서 3일 동안 우리 일행이 쓸 돈을 충전하니 현금을 가지고 다니는 불편함이 없어 편리하긴 했다. 우리 민족끼리 달러니 카드로 환전하여 사용한다는 사실에 한쪽 가슴이 시리긴 했지만 말이다.

저녁 식사는 우리 입맛에 맞는 뷔페식으로 먹고 금강산온천을 하기 위해 셔틀버스를 타고 갔다. 차를 타고 가며 보니 저녁 먹은 후라 운동 삼아 걸어가는 사람들의 행렬도 보였다.

다른 나라를 비롯해 우리 나라의 여러 곳의 온천을 다녀 보았지만 유독 금강산 온천수의 질이 좋게 느껴졌다. 노천탕에서 만난 관광객들의 평도 매끈매끈하니 좋다고 했다. 온천욕을 서둘러 하고 나왔건만 이미 우리 일행의 남자 분들이 기다리고 있었다.

기다리고 있는 것은 남편뿐만 아니라 우리를 태워줄 꽃마차도 함께 기다리고 있었다. 낮에는 원색의 꽃마차가 촌스럽게 보이더니 밤이 되어 불이 들어 온 마차는 분위기가 달라 보였다.

기념으로 사진도 찍고 우리 일행의 남자 분들은 셔틀버스로 가고 여자들은 마차를 탔다. 더운 곳에서 나온 탓인지 밤공기를 가르며 소나무 오솔길을 달리는 기분이 상쾌했다. 우리를 태우고 달리는 말에게는 조금 미안했지만 먼 거리를 한없이 달리고 싶은 충동이 들었다.

마차를 모는 분의 구수한 입담도 한 몫 했는데, 우리가 지금은 겪어 보지 못하는 순수한 마음을 그대로 이야기했기 때문일 것이다. 온정각에 다다르자 마차가 한 바퀴 삥 돌아 멈춰서니 마치 영화를 찍는 듯했다.

숙소 로비에서 각자의 방으로 들어가기가 서운해 보였다. 여행 첫 날이라 푹 쉬어야 한다고 했지만, 자연스럽게 로비로 모이게 되었고 맥주잔을 기울이며 이곳에 오며 느낀 점을 이야기 했다.

필리핀 아가씨의 서툰 한국 가사로 부르는 노래를 들으며 잔을 들어 '위하여'를 외쳤다. 다른 사람들은 무엇을 위하여 잔을 들었는지 모르겠지만 나는 쓸데없이 목이 메이고 눈물이 그렁그렁 맺혔다.

"우리의 조국을 위하여!"
"우리 민족의 통일을 위하여!"

나라 떠나면 모두 애국자가 된다고 했던가? 우리 나라를 생각하며 눈물짓는 내 자신을 보게 되었다. 금강산을 가는 경비면 해외로 가는 것이 더 좋지 않겠느냐는 의견을 쫒지 않고 이곳에 오길 얼마나 잘했는지 모르겠다. 나라를 생각하는 마음으로 잠시라도 간절하게 기도하게 되었으니 말이다. 숙소로 돌아와 밖을 내다보니 시커먼 바다뿐이다. 낮에 얼핏 저 멀리 고층 아파트도 보였든 것 같은데 불빛은 전혀 보이지 않았다.

덧붙이는 글 | 금강산 여행기는 총 3회에 걸쳐 이어집니다.

덧붙이는 글 금강산 여행기는 총 3회에 걸쳐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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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 일찍부터 시작되는 일상생활의 소소한 이야기로부터, 현직 유치원 원장으로서 아이들과 함께 생활하며 벌어지는 이야기들을 쓰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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