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률보다 중요한 기준은 '실질적 평등'

성차별 성희롱 특집 3

등록 2005.08.17 11:49수정 2005.08.17 12: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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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차별과 성희롱 업무가 국가인권위로 일원화되었다. 사실 아직까지 성차별과 성희롱 업무의 국가인권위 일원화에 대해서는 기대와 우려가 뒤섞여 있는 상태다. 기대를 갖고 있는 이유는 그동안 국가인권위가 정부로부터 독립적인 자세에서 인권의식에 기반을 둔 선진적인 결정들을 내려왔다는 점을 인정하기 때문이다.

특히 노동인권에 기반을 두어 ‘비정규직 사유제한’과 ‘동일노동 동일임금’ 원칙의 명시를 표명한 것은 당시 비정규직에 대한 정부 방침에 사회적인 제동을 거는 큰 효과를 거둔 바 있다. 앞으로도 국가인권위가 ‘인권’이라는 개념으로 성차별과 성희롱 업무에 접근한다면, 적어도 여성 노동자의 비정규직화나 암묵적으로 존재하고 있는 여성에 대한 고용상의 차별과 같은 문제에 대해서 정부 정책과는 독립적인, 더욱 적극적인 결정이 나올 수 있지 않을까하는 기대다.

그러나 동시에 우려가 존재하는 이유는 현재 국가인권위가 갖고 있는 ‘인권’이라는 개념에 ‘성평등의 감수성’이 얼마나 녹아들어 있는가를 확신할 수 없기 때문이다. 성차별 문제는 지구상에 존재하는 모든 차별에 ‘성’에 의한 차별이 하나 더 덧씌워져 있는 것이다. 그리고 ‘성’에 의한 차별은 수천년 동안 우리 의식을 지배해 온, 일상의 내면화된 차별이다.

결국 성차별은 여성에게 함께 덧씌워진 다른 모든 차별을 자연스럽게 보이도록 하고 정당화하며 차별을 더욱 강화한다. 그래서 성차별 문제를 제대로 파악하기 위해서는 일반 차별 문제보다 몇 배는 두꺼운 돋보기로, 몇 배는 더 조사하고 되물어봐야 한다. 가장 중요한 것은 차별당하는 ‘여성의 관점’에서 차별 문제를 보라는 것이다.

이를 위해서는 국가인권위 업무 담당자들이 성평등 문제에 대한 감수성을 가질 수 있도록 교육하고 심도 있게 토론할 수 있는 프로그램을 체계화하는 것이 필요하다. 또한 현장에서 성평등 운동을 진행하고 있는 여성단체들과의 긴밀한 협력을 통해서 현장 여성들의 관점을 계속적으로 공유해가는 것이 필요하다. 여성들, 현장 운동과의 소통이 막힘없이 이루어진다면 국가인권위가 미처 파악하지 못하는 차별양상과 문제점 등을 훨씬 더 구체적으로 알게 될 것이고, 성평등의 감수성 또한 더 섬세해질 수 있을 것이다.

국가인권위는 간접차별 등 점차 교묘한 양상으로 진행되는 차별을 적극적으로 시정하는 활동을 펼치기를 바란다. 최근의 여성차별은 명시적으로 법을 어기는 형태는 점차 줄어들고, 법의 규제를 교묘하게 빠져나가는 차별이 크게 늘고 있는 추세다. 특히 성차별과 고용형태 차별이 얽혀 있는 차별양상이 가장 만연해 있다. 회사에서 채용시 비정규직 직종은 대부분 여성만을 채용하고, 비정규직이라는 이유로 저임금을 주고 임신·출산 과정에서 불이익을 주는 것은 당연하다는 식의 차별이 이미 만연해 있다.

국내의 대형할인마트에서 계산업무 및 판매 업무를 하는 노동자들의 90%이상은 파견직이며, 이들의 대부분은 여성이다. 얼마 전 노동조합을 결성한 여성들을 해고한 모 마트에 대한 보도에서 드러나듯이, 하루 종일 제대로 앉지도 못하고 꼬박 일하는 이 여성들의 임금은 70여 만원에 불과하다. 물론 이들에겐 임신·출산으로 인한 휴가 등은 꿈도 못 꿀 일이다. 대표적인 여성 직종인 학습지 교사, 보험 설계사, 방문 판매원으로 종사하는 많은 여성들은 노동법상 노동자로도 인정받지 못하고 정년규제, 임신·출산으로 인한 해고 등 각종 차별에 그대로 노출되어 있다.


얼마 전, 회사 측의 용역 화에 맞서 노조활동을 벌이다 해고되고, 재산을 손배가압류 당한 모 골프장의 여성 경기보조원이 자살을 시도한 일이 있었다. 지금 일터 곳곳에서 여성노동자들은 예전보다 더 체계적으로, 지능적으로 차별당하고 있다. 산업화 시기 국가를 위해서 저임금의 산업역군이 되었던 여성노동자들은 또다시 기업의 경쟁력을 높이기 위해서라는 국가적 과제 앞에 비정규노동자로 이용당하고 착취당하고 있다.

국가인권위에 바라는 것은 경제성장이라는 목적을 위해서 노동인권, 여성인권은 침해될 수 있다는 현재 기업의 생각, 그리고 이에 대한 정부의 암묵적인 동의에 균열을 내는 작업을 용감하게 시작해 달라는 것이다. 기존의 법률 해석에 저촉되는가 아닌가 정도의 판단을 말하는 것이 아니다. 법률에 의한 형식적인 결정이 아니라, 실질적인 평등 개념에 입각한 결정을 내려 달라는 것이다.


즉 “실질적인 평등의 관점, ‘인권’의 관점에서 보면 비정규노동자라는 이유로 저임금으로 혹사당하고, 법적으로 노동자로 분류될 수 없다는 이유만으로 모든 차별이 정당화되는 것은 분명히 잘못된 일이다. 여성 노동자들의 대부분이 비정규노동자, 특수고용 형태 노동자인 상황은 명백한 차별이며 국가가 적극적으로 해결해야 하는 과제” 라고, 분명하고 적극적인 메시지를 외쳐 달라는 것이다. 정말 국가인권위의 관점은 다르다는 차별성을 여성에게 보여 주길 바란다.

많은 여성이 이제 국가인권위를 주시할 것이다. 그리고 차별당한 많은 여성이 절실한 심정으로 국가인권위의 문을 두드릴 것이다. 앞으로 국가인권위가 그들에게 문을 활짝 열어 주고, 희망의 메시지를 불어넣어 주기를 기대한다. 지금 여성에게는 희망의 메시지가 필요하다!

덧붙이는 글 | 이 글은 국가인권위원회가 발간하는 월간 <인권>에 실려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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