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소설> 사금파리 부여잡고 2부 125

참혹한 결전

등록 2005.08.19 16:58수정 2005.08.19 17: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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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초관 뭘 하시오!"

최효일이 시뻘겋게 달아오른 얼굴로 어깨를 잡고 흔들자 장판수는 퍼뜩 제 정신이 돌아왔다.


"어서 뒤로 뛰어야 하오! 자칫하다가는 말발굽에 어육이 될 판이오!"

화약을 모조리 다 써버린 포수들은 명령이 없었는데도 이미 반 이상이 정신없이 뒤로 후퇴하고 있었고 멀리서는 몽고병의 말머리가 먼지와 함께 돌진해 오고 있는 것이 장판수의 눈에 보였다. 조선군이 마지막으로 달려가는 곳에는 나무를 뾰족이 깎아 세운 목책이 빽빽이 들어서 있었고 뒤에는 궁수와 창검수들이 마른 침을 삼키며 후퇴해 오는 동료들을 바라보고 있었다. 제일 후진에 있던 병마사 서우신도 장막 밖으로 모습을 드러내어 몽고병의 돌격을 바라보았고 계화역시 이를 지켜보고 있었다.

"어서 뒤로 물러서라 어서!"

후진의 병사들을 정돈하고 있던 차예량은 후퇴해 들어오는 병사들을 정돈하느라 여념이 없었다. 숨이 턱까지 와 목책뒤로 들어온 장판수와 최효일은 미처 후퇴하지 못한 조선병사들이 몽고 기병들의 칼에 베이고 창에 찔리며 궁시에 맞아 죽어가는 광경을 또 다시 지켜보아야만 했다.

"어디 이리로 달려오기만 해봐라!"


차예량은 잔뜩 벼르며 이를 갈아대었다. 한 바탕 살육이 끝난 후 전열을 정비한 몽고기병은 마지막 조선군 진지를 향해 돌격을 개시했다.

"활을 쏘아라!"


돌진해오는 몽고기병들에게 화살이 어지러이 날아들었다. 몽고병들도 앞에 목책이 들어서 있는 것을 보고서는 돌진을 멈추고 활을 꺼내어 말위에서 응사했다. 이로 인해 몽고병들의 위력적인 돌격은 잠시 멈추어지게 되었고 이는 차예량이 노리던 바였다.

"기를 들어 신호를 보내라!

몽고기병의 뒤쪽에서 함성소리와 함께 화살과 돌이 날아들었다. 처음에 후퇴했던 차충량의 부대가 몽고기병이 지나갈 때까지 매복해 있다가 뒤를 막고 기습을 걸어온 것이었다. 몽고기병이 순간적으로 당황해 하자 차예량은 목책을 열고 전 군에 돌격명령을 내렸다.

"한 놈도 남기지 말고 모두 죽여 버려라!"

앞서 동료들이 죽어가는 광경을 보아왔던 조선군들은 악에 받칠 대로 받혀 있던 터라 말 위에서 창과 칼을 휘두르는 몽고기병을 두려워하지 않고 달려들었다. 가뜩이나 수많은 기병이 자유자재로 움직일 공간이 터무니없이 부족한 지형인지라 몽고기병들은 제대로 힘도 쓰지 못한 채 하나 둘씩 말 아래로 끌어내려져 조선군의 칼과 창에 난도질을 당했다. 장판수도 다리를 절뚝이며 미친 듯이 칼을 휘둘렀고 말과 사람이 울부짖는 소리가 하늘을 뒤덮었다. 몽고군의 장수 토올은 이 광경을 지켜보며 당장 달려가겠노라 치를 떨었지만 보얀은 때가 아니라며 출격을 명하지 않았다.

"저러다 다 죽습니다!"

토올은 보얀에게 소리까지 질러대었다. 그럼에도 보얀은 평정심을 잃지 않았다.

"상대는 결사적이며 우리에게 적의가 충만해 있다. 어느 정도의 희생은 감내해야 한다. 저들이 우리 병사들을 쳐부순 후 적의를 숙이고 안도할 때를 기다려 총진격해 쓸어버릴 것이니라."

조선군에게 둘러싸인 몽고병들은 처음에는 저항을 멈추고 빌어보기도 했지만 곧 사정을 봐주지 않는다는 것을 깨닫고 결사적으로 저항해 왔다. 몽고군의 말발굽에 밟히고 창칼에 찔려 죽고 다치는 조선군도 만만치 않게 늘어갔다.

"저들에게 퇴로를 약간 열어줘야 하오! 우리 군사의 희생도 크오!"

피투성이가 되어 미친 듯이 칼을 휘두르는 장판수에게 차예량이 급히 달려가 소리쳤지만 살기 충만한 병사들을 통솔할 이는 이미 아무도 없었다. 치열한 싸움이 한참이나 더 계속 된 후에 마침내 조선군의 진지로 들어온 몽고병들은 전멸하고 말았다.

"우리가 이겼다!"

조선병사들이 창칼을 치며들며 승리의 환호성을 질렀을 때 보얀의 명령이 떨어졌다.

"전 군 진격하라! 남은 조선군을 쓸어버려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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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소설 '고주몽', '홍경래의 난' '처용'을 내 놓은 작가로서 현재도 꾸준한 집필활동을 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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