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소설> 사금파리 부여잡고 2부 124

참혹한 결전

등록 2005.08.17 17:04수정 2005.08.17 17: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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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청마저 물러간 후 사람들은 서흔남에게 '씨도 없는 놈'이 무슨 뜻인지 물었지만 그는 끝내 답해 주지 않았다. 더욱 알 수 없는 건 사내가 한밤중에 성을 나간 후 다시는 돌아오지 않았다는 사실이었다. 어쩌면 곧이어 펼쳐질 처참한 전장을 보고 싶지 않기 때문일지도 모르는 일이었다.

"모두 일어나라! 오랑캐들이 몰려온다!"


동이 트기도 전에 땅이 흔들리는 말발굽 소리와 우렁찬 함성소리가 조선군의 진지를 뒤흔들어 놓았다. 치료를 받은 시루떡 옆에서 선잠이 들었던 장판수는 벌떡 일어서려다가 간밤의 대결에서 칼에 맞은 허벅지에 가벼운 통증을 느꼈다.

"장초관! 장초관!"

최효일이 급히 장막으로 뛰어 들어와 허둥거렸다. 최효일이 채 뭐라고 하기도 전에 장판수는 다리를 절룩이며 뛰쳐나갔다. 조선군은 당황하여 이리저리 몰려다니기만 할뿐 체계가 서 있지 않았다.

"모두 당황하지 말라우! 포수와 궁수는 어디있네! 앞으로 나서라우!"

장판수의 바람과는 달리 포수와 궁수는 모두 한곳에 뒤엉켜 어디에 자리를 잡아야 할지 갈피를 잡지 못하고 있었다. 그 순간 몽고병의 선두 기병이 조선군의 엉성한 목책진지를 무사히 통과 후 차충량이 지휘하는 진지로 밀고 들어왔다. 차충량은 도저히 당해낼 수 없음을 여기고 즉각 후퇴 명령을 내렸고 조선군은 더욱 극심한 혼란에 빠져 허둥댔다. 순식간에 오백여명의 조선군이 몽고기병에 포위되어 하나 둘씩 화살과 창칼에 맞아 죽어갔고 그 틈을 타 차충량은 남은 병력을 이끌고 겨우 후진으로 몸을 빼 낼 수 있었다.


"모두 열과 오를 맞추어라!"

몽고기병에 맞서기 위해 포수와 궁수를 정비하던 장판수와 최효일은 화약과 화살이 터무니없이 모자라다는 사실을 다시 한 번 절감했다. 요행수를 바란다면 몽고기병의 돌진이 두어 번에 그치고 몇 차례의 사격에 지리멸렬해서 패퇴해 주기를 바랄 뿐이었다.


"저거...... 그냥 두고 보고 있어야 합니까?"

미처 후퇴하지 못한 채 기병에게 둘러싸여 가족을 부르며 차례로 죽어가는 동료들의 비명소리가 울리자 병사들은 몸을 부르르 떨며 웅성거렸다. 그들로서는 애석한 일이었지만 당장은 누구도 달리 어찌할 방도는 없었다. 마침내 포위한 조선군을 궤멸 시킨 몽고기병이 말머리를 돌려 열을 맞춘 후 다음 진지를 노리고 돌진해 들어왔다.

"기다려라! 전처럼 함부로 총을 쏘는 자는 그 자리에서 목을 칠 것이다!"

포수들은 눈에 핏발이 선채 장전 후 미리 불을 댕겨 놓은 화승에 신경을 곤두세웠다.

"쏴라!"

커다란 폭음소리와 함께 몽고기병들이 총탄에 맞아 말위에서 떨어져 데구루루 굴렀고 뒤에 오던 기병들은 달려오던 속도에 밀려 연이어 앞으로 곤두박질쳐졌다. 일제 사격 이후 궁수들이 재빨리 그 틈을 메워 화살을 날렸다. 멀리서 이 광경을 지켜보던 보얀이 제 2대의 투입을 토올에게 지시했다.

"또 온다!"

앞서 동료들이 정면 돌파를 하다가 총탄에 모조리 희생되었음을 본 몽고기병들이었기에 이번의 돌격은 그 시작이 측면에서 이루어졌다. 하지만 조선병사들이 들어서 있는 곳은 호리병의 목과 같이 좁은 지형이었기에 그들의 운명도 별반 다르지 않았다. 쏟아지는 조선군의 총탄과 화살에 말과 사람은 핏덩어리가 되어 땅바닥에 쓰러졌고 미친 듯이 뛰어다니는 말은 때로 등자에 발이 걸린 채 덜렁거리는 병사의 시체를 뿌리치기 위해 여기저기 질질 끌고 다녔다.

"제 3대를 투입해라!"

수많은 병사의 희생에도 불구하고 보얀은 흔들림이 없었다. 그때 쯤 조선군은 화약부터 이미 떨어져 가고 있었다.

"저 미친 짐승들이 또 온다!"

결국 겁을 집어먹은 병사들의 절규에 장판수마저도 낯빛이 하얗게 질려 버릴 지경이었다. 좀 더 좁은 지역으로 몽고기병들을 유인해 창을 든 보병과 난전으로 만들어 나가는 수밖에 없었지만 그러한 일은 행동으로 옮겨지지 않고 장판수의 머릿속에서만 맴돌 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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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소설 '고주몽', '홍경래의 난' '처용'을 내 놓은 작가로서 현재도 꾸준한 집필활동을 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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