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하나님만 사랑하라고 하느냐구?

똑같은 사례, 딴판이었던 퇴직금 상담 이야기

등록 2005.08.20 17:20수정 2005.08.20 19: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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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7월말부터 지금까지 쌍둥이라 할 만치 판에 박은 듯 똑같은 상황의 상담을 진행하면서 저는 사람들이 참 묘하다는 사실을 경험하고 있습니다. 똑같은 일에 대해서 반응하는 방법도 다르고, 말하는 방법도 다른 두 회사 직원들을 보면서 사람이 참 묘하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 마치 아이들을 키우면서, '한 뱃속에서 나왔는데 어쩜 이리 다를까' 하는 생각을 할 때와 같은 느낌이라고나 할까요.


먼저 두 회사의 형편을 살펴보면, 중소기업이라 하지만 말만 하면 대한민국 사람 누구나 알 말한 그런 회사들입니다. 한 회사는 안성에 3개의 공장을 갖고 있는데 우리나라에서 처음으로 '딱풀'이란 걸 만든 학용품업체입니다. 한편 다른 회사는 용인시 에 위치한 기업으로 플라스틱 제조업체입니다.

안성에 위치한 회사는 성경에 나오는 선지자의 이름을 회사 이름으로 하고 있었고, 백암면에 위치한 회사는 업체 대표가 기독교 관련 단체 총무를 맡고 있을 만큼 두 회사 공히 기독교 기업을 표방하고 있었고, 대표이사들이 모두 장로로서 활발한 사회활동을 하는 있다는 점이 빼닮았습니다.

게다가 두 회사 모두 먼저 산업연수생으로 외국 인력을 고용하다가, 이들이 숙련되자 연수취업 전환, 불법체류, 합법화 조치로 고용허가 등의 과정을 거치면서 외국인들을 장기 고용 했다는 점도 닮아 있었습니다. 그런데 이들의 합법적인 체류기간이 만료되는 8월이 되면서 문제가 발생하기 시작했습니다. 퇴직금 문제였습니다.

퇴직금 문제로 안성에서는 인도네시아인 9명이 쉼터를 찾아 왔었고, 백암에서는 베트남인 9명이 상담을 신청해 왔습니다. 상담을 받은 우리는 두 회사에 똑같은 내용의 협조문을 팩스로 보냈습니다. 협조문은 우리 쉼터에서 퇴직금 관련한 상담을 받았는데, 외국 인력을 고용하면서 퇴직금 지급에 대해 고려를 하지 않았을 것으로 알지만, 어렵더라도 원칙적으로 해주면 좋겠다는 상투적인 안내문이었습니다.

협조문에 대해 먼저 반응을 보인 쪽은 안성에 있는 회사였습니다. 서울 본사에 있는 외국 인력 담당자가 안성 공장을 방문해 줄 것을 요청해 왔던 것입니다. 저는 처음 안성이 그리 가까운 거리도 아니고, 양측이 퇴직금 얘기를 하는데 원칙만 얘기할 사람이 껴봤자 좋을 것이 없지 않겠느냐면서 방문 요청을 거절했습니다.


그런데 업체 측에서는 "인도네시아 산업연수생 인력관리업체에 통역을 요청한다고 했더니, 이 친구들이 싫어합니다. 저희가 배우는 셈치고 오시라고 하는 거니까 힘들겠지만 와 주시면 고맙겠습니다"라면서 강권을 하는 통에 바쁜 일정을 취소하고 업체를 방문하였습니다.

안성공장은 깨끗한 현대식 건물에 냉방이 잘 되어 있었는데, 본사 직원과 1,2,3공장 각 공장장들과 인력담당자, 인도네시아인과 제가 휴게실에 자리를 같이 하는 동안 다른 직원들이 시원한 음료수와 차를 내 주는 등 화기애애한 분위기 속에서 대화가 진행되었습니다.


본사 직원은 처음 만난 자리에서 "우리가 외국 인력을 고용하면서 관련 제도에 대해 제대로 알지 못했던 점이 많은 것 같습니다. 부족한 점이 많을 줄 아니까, 잘 가르쳐 주십시오"하고 말을 꺼냈습니다. 결국 그 자리는 퇴직금 지급 문제는 논할 필요도 없이 정산해 주기로 하고, 출국을 앞둔 사람들이 다른 불편 사항이 없었는지를 듣는 시간이 되고 말았습니다.

한편 백암에 있는 회사는 '베트남 사람들로부터 쉼터에서 협조문을 발송했다는 얘기를 들었는데 받지 못했다'고 하여 서울 본사와 공장으로 다시 보내는 수고를 하고야 대화가 시작됐습니다.

저는 기본적으로 베트남 상담은 직접 하지 않기 때문에 옆에서 지켜만 보고 있었는데, 이 회사 역시 업체를 직접 방문해 달라는 요청을 해 왔습니다. 같은 관내이긴 했지만, 거리를 따져보니 40분이 족히 걸리는 위치라 쉽게 시간을 내기가 어려웠습니다. 하지만 외국인력 담담 본사 직원이 '쉼터에서 함께 하지 않으면 대화가 되지 않는다'고 하는 통에, 결국 어제(20일) 저녁 업체를 방문하였습니다.

여기까지는 안성공장과 다를 바 없이 똑같이 진행되었습니다. 그런데 얼굴을 대면하여 만나면서 다른 반응들이 나타나기 시작했습니다.

먼저 본사 부장이라는 사람이 "우리가 퇴직금 계산을 다 끝내고 출국할 때 주기로 합의를 봤는데, 이제 와서 말을 바꾸고 배신하니 난처하다"면서 말을 꺼내기 시작했습니다. 그의 투덜거림을 한참 듣고 나서 통역이 베트남인들에게 "이러 저러하다고 하는데 사실이냐?"고 물자, 베트남인들은 "한 번도 합의해 본 적이 없다. 회사에서 이렇게 주겠다는 전달이 있었을 뿐이다. 그게 부당하다고 생각해서 쉼터를 찾아갔던 것이다"하고 답했습니다.

결국 양측이 물러서지 않는 똑같은 의견을 반복하다가 급기야 부장이라는 사람의 입에서 순간적으로 욕이 나오기 시작했습니다. "야, 이 개새끼들아" 이 일로 옆에서 지켜보던 제가 끼어들었습니다. "보십시오. 저희 같은 사람들이 있는 자리에서도 '개새끼'라는 욕이 나오는데 평소 잘해 줬더니, 끝나는 마당에 배신한다고 하는 말이 믿기겠습니까?"

욕설을 했던 부장은 금방 그 자리에서 "개새끼라고 하지 않았고, 개새끼 같은 이라고 했습니다"하고 변명을 하다가, 결국 자신이 더 큰 실수를 하고 있음을 알았는지 욕을 한 부분에 대해 사과를 하면서 "사장님의 결재를 받아야 하니 아홉 사람 모두 정산 금액에서 백만 원씩 깎는 게 어떠냐"는 제안을 내놓았습니다.

결국 그 제안에 대해 베트남인들이 받아들이겠다고 하여 전 대화가 잘 마무리 될 것으로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우리가 나온 후 업체 부장은 베트남인들을 붙잡고 밤 11시까지 다시 앞서 한 이야기를 반복했다고 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신의 뜻대로 되지 않자, 분이 가시지 않았는지 부장이라는 사람은 저에게 아침부터 전화를 걸어 왔습니다.

"목사님이 애들보고 이렇게 하라 하면 할 텐데, 아무런 말씀도 안 해 주시고, 저희가 도움 얻으려다 오히려 피해를 입었습니다."

말도 되지 않는 억지에 화가 날 대로 난 저는 어제 저녁 회사를 방문하고 오면서 느꼈던 점과 똑같은 경우였던 안성 공장 사례를 이야기했습니다.

"공장 문에 큼직한 글자로, '하나님은 당신을 사랑하십니다'라고 써 있는 걸 봤습니다. '하나님은 당신을 사랑하신다'는 말은 할 줄 아는데, '나는 너를 사랑한다, 나는 우리 회사에 일하는 외국인들을 사랑한다'고 말할 수 없나 보죠? 왜 하나님만 사랑하시라고 하세요? 부장님은 장로님이시라면서 사랑하면 안 되나요? 제가 인터넷 검색을 해 봤습니다. 사장님이 기독교 정신으로 좋은 일 많이 하시더군요. 그렇게 밖으로는 좋은 일 많이 하시는데 왜 직원으로 있는 외국인들에겐 아무렇게나 하는지 모르겠습니다. 제가 외국인만 편든다고 하는데, 공평하게 원칙대로 하라는 게 편드는 겁니까? 안성에 있는 ***라는 회사는 똑같은 경우인데 모르는 거 가르쳐 줘서 고맙다고 하던데 거긴 돈이 남아도는 회사인가요?"

사실 부장이라는 사람에게 한 말은 제가 평소 교회에 하고 싶었던 말이기도 했습니다.

"왜 하나님만 사랑한다, 하나님만 사랑하라고 하느냐구요? 당신은 사랑하면 어디가 덧납니까? 공평해질 수 없나요?"

a 업체방문을 마치고 나오던 길에

업체방문을 마치고 나오던 길에 ⓒ 고기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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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별과 편견 없는 세상, 상식과 논리적인 대화가 가능한 세상, 함께 더불어 잘 사는 세상을 꿈꿉니다. (사) '모두를 위한 이주인권문화센터'(부설 용인이주노동자쉼터) 이사장, 이주인권 저널리스트로 활동하고 있습니다. 저서 『내 생애 단 한 번, 가슴 뛰는 삶을 살아도 좋다』, 공저 『다르지만 평등한 이주민 인권 길라잡이, 다문화인권교육 기본교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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