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시대 희생 당한 여성, 새롭게 조명하고파"

[인터뷰] 신작 <영영 이별 영이별> 발표한 작가 김별아

등록 2005.08.21 13:29수정 2005.08.21 16: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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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신문
[박윤수 기자] 2005년 2월 신라 '화랑세기'를 다룬 소설 <미실>로 제1회 세계문학상을 수상했던 작가 김별아(36)씨가 신작 <영영 이별 영이별>을 출간했다. 강인한 여성 <미실>의 이야기인 전작과 달리 <영영 이별 영이별>은 조선시대 비운의 왕, 단종의 비 정순왕후의 가혹한 삶을 그리고 있다.

강원도 강릉 출생인 그는 연세대 국어국문학과 졸업 후 1993년 실천문학에 <닫힌 문밖의 바람소리>를 발표하며 등단했다. 작품으로는 소설집 <꿈의 부족>, 장편소설 <내 마음의 포르노그라피> <개인적 체험> <축구전쟁>, 산문집 <톨스토이처럼 죽고 싶다> <식구-우리가 사랑하는 이상한 사람들> 등이 있다.


그는 이번 소설 이후 당분간 집필 활동을 중단하고 재충전의 시간을 위해 22일 직장인인 남편을 한국에 두고 초등학교 3학년인 아들과 단둘이 캐나다에서 2년 정도 생활할 예정이다. 출국준비에 한창인 작가와 이메일로 만났다.

- 주인공인 정순왕후는 어떤 인물인가
"신라의 '미실'과 조선의 '정순왕후'는 둘 다 정치적인 인물이지만 정치에 적극 관여하여 자기 욕망을 실현시킨 미실과 달리 정순왕후는 시대의 제물, 정치의 희생양이다. 한 번도 자신의 삶을 스스로 선택하지 못했던, 죽지 않고 모진 시간을 살아가는 것으로 자신의 존재를 웅변한 인물이다."

- 이번 작품에서 특히 염두에 두었던 부분은
"역사는 희생자들, 혹은 패배자들을 기록하지 않기에 여성들의 역사는 철저히 물밑에 가라앉은 채 외면당해 왔다. 하지만 여성 수난사, 여성 잔혹사나 다름없는 조선시대의 여성들도 비주체적인 삶을 살았다고는 보지 않는다. 주체적인 여성상에 대한 재조명도 필요하겠지만 이처럼 오직 자신의 운명을 감당하는 것으로 시간을 견뎌온 여성들의 끈기도 새롭게 조명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힘도 이름도 없지만 우리 역사의 근간을 이루었던 용기 있는 여성들의 대표자로 정순왕후를 새롭게 조명해보고 싶었다."

- 정순왕후에 대한 자료를 찾기가 힘들었을텐데 생애를 복구하는데 어려움은 없었는지
"정순왕후에 대한 공식적인 기록은 단종의 죽음과 함께 끝났고 단종에 대한 기록 역시 예종 대에 '노산군일기'로 편찬되면서 많은 왜곡을 겪었다. 정순왕후의 이후 삶에 대한 부족한 기록과 자료는 그가 단종∼중종대에 이르는 여섯 왕의 시절을 살아냈다는 데서 착안해, 조선 전기 여인들의 삶과의 연관성 속에서 복구하고자 했다."

- 정순왕후가 죽음을 맞은 직후 영혼의 모습으로 단종에게 보내는 서간체 형식을 사용했는데
"베일에 싸여진 그의 삶을 82세까지 다시 살려내기 위해서는 그녀 자신의 목소리를 빌어 말하는 수밖에 없다고 생각했다. 가장 주목한 대목 역시 단종이 죽은 후 65년간 자식도 없이 홀로 살며 질기게 버텨낸 그의 '시간'이었다. 49장으로 나뉘어져 영혼의 목소리로 삶을 복원하는 형식 역시 영혼이 이승을 떠나 저승으로 가기까지 중음에 머무르는 49일간(49재로 흔히 표현되는)을 빗댄 것이다."


- 정순왕후의 개인적인 인생보다는 그가 묘사하는 역사적 사실들로 이야기를 구성했는데
"정순왕후에 대해 남아 있는 기록이 부족해 그를 65년간의 고독한 여생 속에서 눈을 부릅뜨고 그 시대를 바라보는 목격자로 설정했다. 그와 마찬가지로 조선의 여성으로 살며 고통을 겪었던 여성들의 삶으로 채우고자 했다. 정순왕후보다 훨씬 가난하고 힘없는 여성들이 함께 동정곡을 하고 주변에 야채시장을 열어 반찬거리를 제공하는 등의 이야기는 전설로 남아 있는 것이지만 충분히 그 시대 여성들의 정서를 반영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 전작 <미실>의 큰 성공으로 인한 후속작의 부담감은 없었는지
"등단 후 지금껏 누가 읽어주든 말든 나만의 길 찾기에 몰두했던 탓인지, '성공'이라는 것도 판매 부수보다는 내가 작품 속에서 얼마나 하고픈 이야기를 효과적으로 전달했는지에 기준을 둔다. 내 자신의 재능을 한 번도 믿어본 적이 없어 <미실>도 나에게는 과정이자 또 하나의 실험이었다. 문학이라는 것이 본래 완성되지 않는, 궁극적으로 패배할 수밖에 없는 예술이라고 생각한다. 전작이 '베스트셀러'였다는 데 대한 부담이 아주 없진 않겠지만 작업의 시작은 언제나 새롭게 어렵고, 새롭게 고통스러울 뿐이다."


- 소설가가 된 계기는
"타고난 기질이 우울한 편이라 친구가 많지 않았고 책이 가장 좋은 친구였다. 많이 읽다 보니 저절로 쓰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고 본격적으로 소설가가 되겠다고 결심한 것은 사춘기인 열일곱 살, 고등학교 2학년 때부터이다. 사실 다른 재능이 전혀 없기 때문에 다른 꿈을 꾸어본 적이 없다. 낯을 많이 가리고 비관적인 편이라, 소설을 쓰면서 생을 견디고 그럭저럭 살아갈 만하다고 위로하며 살고 있다."

- 앞으로의 활동 계획은
"아무 계획 없이 캐나다로 떠날 예정이다. 누군가 문제에 직면하여 대처하는 방식은 정면 돌파와 도피의 두 가지가 있다고 말했다. 지금껏 정면 돌파만이 정당하다고 생각해왔는데, 나이를 먹으면서 가끔은 도망치는 것이 현명할 수도 있지 않을까 생각하게 됐다. 낯선 곳이라도 걷다 보면 길이 나오고, 길이 나오면 또 걷게 될 것이다. 그 길 끝에서 새로운 대답, 새로운 작품을 만날 수 있었으면 좋겠다."

'영영 이별 영이별'은 어떤 작품?
정치적 희생물이 된 정순왕후의 모진 삶

"세조에게 왕위를 빼앗기고 영월로 귀양길을 떠나던 단종과 부인 정순왕후가 영도교위에서 눈물로 이별을 했다"는 '조선왕조실록'의 기록에서 착안해 단종비 정순왕후의 삶을 재구성한 소설.

조선 500년 역사상 가장 비운의 왕으로 꼽히는 단종은 12살 어린 나이에 즉위, 불과 3년만에 숙부인 세조에게 왕위를 뺏기고 다시 강원도 영월로 유배된 뒤 쓸쓸한 죽음을 맞이해야 했던 임금. 단종의 비 정순왕후는 조선시대 정치적 격변의 소용돌이의 중심에서 실낱같은 목숨을 부지하기 위해 한편생을 숨죽여 살아야만 했다.

왕비라는 권력의 정점에서 서인으로, 걸인, 날품팔이꾼을 거쳐 뒷방 늙은이로 한평생을 마감하기까지 남편을 떠나보낸 후에도 65년의 고독한 삶을 생존해낸 한 여인의 모진 운명이 펼쳐진다.

소설은 82살 나이에 죽음을 맞이한 정순왕후가 혼백의 모습으로 자신의 시신을 바라보며 먼저 세상을 뜬 단종에게 말을 건네는 것으로 시작된다. 이제 곧 당신 곁으로 가겠노라고. 그러면서 그 동안 살아온 65년간의 삶 동안의 이야기를 담담하게 풀어놓는다.

세조가 왕위 찬탈을 위해 벌였던 계유정난과 세조의 조력자인 정희왕후, 연산군 시절의 폭정과 그의 여인 장녹수, 연산군을 내몰았던 중종반정과 하루아침에 죄인의 딸이 된 중종의 첫 왕비 신씨까지. 유난히 권력 다툼이 심했던 세조에서 중종에 이르는 6명의 왕의 시대를 살아온 관찰자로서 당시의 역사적 사실과 조선시대 여성들의 삶을 정순왕후의 시선으로 새롭게 해석했다. / 박윤수 기자

덧붙이는 글 | 여성신문 841호 게재

덧붙이는 글 여성신문 841호 게재

영영 이별 영이별

김별아 지음,
해냄, 2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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