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여름밤, 매미채 들고 바다로 가다

[섬이야기 ] 보령 원산도에서 생긴 일

등록 2005.08.21 14:30수정 2005.08.22 14: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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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준

지난주까지 원산도를 비롯해 효자도 등 보령시 인근 섬들을 찾는 피서객들은 미리 예약을 하지 않으면 차를 가지고 섬에 들어가기 어려웠다. 이번 여름나기에 유난히 섬과 바다를 많이 찾은 듯하다. 바다와 섬의 가치를 이제야 알기 시작한 것일까. 그렇지만 달갑지 않다. '니들이 여행의 맛을 알아'하고 비웃기라도 하듯 배낭을 메고 배에 탄 사람들이 있는가 하면, '이제 피서야?'하며 시커멓게 그을린 피부를 자랑하듯 배에서 내리는 연인들도 있다. 모두들 싱싱하고 건강한 모습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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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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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준

갈매기와 눈을 맞추다

원산도에 가는 길은 대천항이나 오천항을 이용한다. 거리로 보면 오천항이 훨씬 가깝지만 대전, 유성 등 도시와 가깝고 편리해 많은 사람이 찾는다. 원산도를 찾는 일 중 아이들을 사로잡는 하나의 즐거움이 '코앞에서 갈매기와 눈을 맞출 수 있다'는 점이다.

섬과 바다를 찾는 사람들이 많아지면서 나타난 현상이겠지만 아이 어른 할 것 없이 배 안 매점에서 새우깡을 구입해 뱃전에서 던지면 갈매기들이 날쌔가 받아먹는다. 마치 훈련된 개에게 먹이를 던져주면 받아먹듯이. 심지어 손에 새우깡을 들고 있으면 이놈들이 코앞까지 다가와 잽싸게 낚아채간다. 그러다가 효자도가 빼꼼히 고개를 내밀 쯤 갈매기들은 대천항으로 돌아간다.

그곳까지가 영역일까. 원산도에서 오는 배를 따라 관광객들이 던져주는 새우깡을 먹던 갈매기도 그 지점에서는 돌아가는 것 같다. 연안에 많은 갈매기가 있다는 것은 먹이가 많거나 산란과 서식에 적합하거나 둘 중에 하나가 충족되어야 하는데 이곳은 서식지보다는 먹이가 많기 때문인 것 같다. 대천항에는 개량안강망 배들이 많은 고기를 잡아 수시로 드나들어 고기를 쉽게 얻어 먹을 수 있고, 관광객들이 던져주는 새우깡 등 먹을 것이 많기 때문에 개체수가 급격하게 늘어난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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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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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준

여름밤에 원산도에서 생긴 일


"여기도 있다."
"발에 뭐가 부딪혔어."
"불 좀 잘 비춰봐."

오봉파크 박 사장은 마음이 급한지 고기잡는 뜰채를 한 손에 쥔 채 서치용 충전기를 등에 지고 불을 비추는 문광철 선생의 손을 끌어당긴다. 이에 질세라 옆에 후레쉬를 비추던 전종한 박사가 눈을 동그랗게 뜨고 뭘 잡았냐고 고개를 내민다. 박 사장의 뜰채가 물보라를 일으키더니 큼직한 '박하지'를 건져 올린다.


늦은 여름밤 원산도 오봉해수욕장 바닷가에 서너 개의 불빛이 깜박거린다. 멀리서 보면 야행성 물고기가 빛을 내는 것처럼 보이지만, 그것이 꼴뚜기나 박하지 등을 잡는 사람들의 불빛이다. 물이 빠졌다 들어오는 시간이 저녁시간과 잘 맞으면 야행성 어류들이 바닷가로 나오기 때문에 불을 들고 나가서 잡는 것이다. 서남해 갯벌에서 낙지를 잡는 방법 중 횃불낙지가 있는데 방법이 비슷하다.

지금 철에는 '꼴뚜기'와 '박하지' 그리고 간혹 '낙지'도 올라온다는 것이 박 사장의 이야기이다. 오봉해수욕장 인근에서 민박과 식당(오봉파크)을 하고 있는 박기선 사장은 가을철이며 멸치도 잡는다고 귀띔해 준다. 여름철에 또 오라는 이야기인지. 인근에서 붙임성 좋고 이벤트 잘 만들기로 소문난 박 사장은 필자가 포함된 충남대마을조사연구단(단장, 김필동 교수)이 원산도 마을연구를 위해 찾은 첫날 특별 이벤트를 마련해 주었다.

박하지는 바다 속 모래 위를 기어다니고, 꼴뚜기는 수면상층부에 떠서 헤엄을 치며 다니기 때문에 고기를 건지는 뜰채나 아쉬운 대로 매미채라도 있으면 좋다. 한 시간여 바다에 들어가 작업을 한 결과 꼴뚜기 30여 마리에 박하지 50여 마리를 잡았다. 저녁을 먹으면서 우럭 회에 소주를 한잔 했지만 그냥 자기는 서운하던 차에 주인의 제안으로 마련한 자리였다. 소주 안주 거리도 만들고 고기잡이 체험도 하는 일석이조, 여기에 이후 먹는 소주는 주인이 내겠다고 나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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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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꼴뚜기에 얽힌 이야기들

다른 해양생물에 비해서 '꼴뚜기'를 빗댄 속담들이 많다. 가장 많이 사용하는 속담이 '어물전 망신 꼴뚜기가 시킨다'는 말이다. 이 속담은 못난 것이 언제나 동료나 자기 집단에 불명예를 끼친다는 의미로 사용한다. 모두 한 번쯤은 사용했을 것이다. 또 많이 사용하는 속담이 '망둥이가 뛰니까 꼴뚜기도 뛴다'는 말로, 남의 행동에 덩달아 설치는 것을 말하는 것이다. 이 외에도 '생선 망신은 꼴뚜기가 시킨다', '어물전 털어 먹고 꼴뚜기 장사한다'는 말도 있다. 모두 '꼴뚜기'를 보잘 것 없는 고기로 평가하는 속담들이다.

속담 중 꼴뚜기를 제법 평가한 속담으로는 '장마다 꼴뚜기 날까'라는 말이다. 하찮고 보잘 것 없기 때문에 장에 가면 언제나 나올 것 같지만 사실은 철이 되어야 하고 때가 있다는 말이다. 특히 해양생물은 먹고 싶다고 아무 때나 사다 먹을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철이 지나면 다음 철을 기다려야 한다. 육지에서 나는 것들이야 비닐하우스 등 조건을 만들어 재배를 해서 제철음식이 없어진 지 오래지만 바다음식들은 양식의 한계가 있기 때문에 아직도 '철'과 '때'가 중요하다. 바다에서 나는 것이 몸에 좋은 것은 제철을 지키기 때문일 것이다.

꼴뚜기로 담은 젓을 꼴뚜기젓이라고 하지만 전라도에서는 '꼬록젓'이라고도 한다. 꼴뚜기는 지역에 따라 꼴띠기, 꼴뜨기, 고록, 꼬록지 등 다양한 이름으로 불리고 있다. <자산어보>에는 꼴뚜기를 '고록어(高祿魚)'라고 했다. 오징어를 닮았지만 뼈가 없고, 월나라 사람들이 귀하게 여긴다고 붙인 이름이라고 한다.

이 책에서 고록어 즉 꼴뚜기는 '오징어'를 말하며, 오징어는 '갑오징어'를 말한다. 지금의 오징어는 다른 이름으로 '피둥어꼴뚜기'라고도 했다. 이러한 이름은 1930년대 일제강점기 고기잡이 기술들이 근대화되는 과정에서 일본식 용어로 통일되어 '갑오징어', '오징어' 등으로 불리기 시작했다. 대신에 오징어를 칭하던 꼴뚜기 즉 고록어는 지금의 꼴뚜기에게 이름을 넘겨주어 사용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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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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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준

'꼴뚜기회', 민어회 부럽지 않다

꼴뚜기를 하찮은 것에 비유하지만 막 잡은 꼴뚜기 회 맛을 본 사람들은 생각이 다를 것이다. 저녁을 먹으며 먹었던 술기운이 한 시간 이상을 바닷물 속에서 꼴뚜기 잡이로 헤맨 탓에 모두 사라졌다. 잡아 온 박하지는 삶고 꼴뚜기는 물에 씻어 소주와 함께 즉석에서 소주파티가 벌어졌다. 저녁 먹고 소주 한잔 하느라 꼴뚜기 잡이에 늦게 나선 탓에 많이 잡지 못했다는 것이 오천파크 주인의 이야기이다.

평소 같으면 상당히 잡았을 것이라는 이야기이다. 충남대마을사연구단의 식구들 열댓 명이 소주 한 잔에 꼴뚜기 한 마리씩 먹었다. 몇 순배 돌고 나니 바닥이 났다. 입안에 짭짤한 바다 내음과 부드럽게 씹히는 꼴뚜기 맛이 그만이다. 이어서 박하지 삶은 것이 나왔다. 딱딱한 뚜껑만 벗겨내고 통째로 씹어 먹는데 전혀 딱딱하지 않고 아삭아삭한 맛이 매우 독특했다. 인심 좋다는 소문을 입증하듯 잠자러 가기 전에 남은 안주에 먹을 술을 몇 병 내오며, 게를 삶은 물로 라면을 끊여 먹으면 맛이 끝내 준다며 기어코 라면도 2개를 내놓고 사라졌다.

원산도는 땅값이 급격하게 올랐다. 2003년 겨울 처음 면사무소 출장소에 갔을 때 직원이 하는 말이 '땅 보러 왔냐'고 물었다. 원산도 출장소를 찾는 사람들은 두 부류라고 한다. 이미 산 땅을 보기 위해서 온 사람들과 살 만한 땅의 지적도를 보기 위한 사람들이다. 외지 사람들이 어떻게 땅을 사는지 진고지에 사는 마을 주민이 직접 겪은 이야기가 인상적이다.

외지 사람이 도면만 가지고 와서 자기가 산 땅이 바닷가에 있다면 확인해 달라고 해서 보니까 바닷가는 맞는데 절벽에 가까운 곳에 위치한 땅이었다는 것이다. 도면을 잘 읽어도 현지 사정을 모르면 생길 수 있는 일이다. 현장에 확인 없이 지번만 보고 구입한 땅들로 인해 발생한 문제들이다. 순천만에서는 폐염전지로 만조시 바닷물에 잠기는 땅을 산 외지인이 마침 물이 들어왔다 자기 땅이 물 속에 잠겨 있는 것을 보고 울고불고 난리가 났다는 이야기도 들었다.

a 원산도마을조사를 위해 방문한 충남대 마을조사연구단 일행

원산도마을조사를 위해 방문한 충남대 마을조사연구단 일행 ⓒ 김준

섬을 지자체들은 앞다투어 연륙을 계획하고 있다. 그리고 이런 곳은 예외 없이 땅값이 치솟지만 현지주민들은 집과 농지를 제외하고 지가 상승 초기에 처분해 돈을 버는 사람들은 대부분 외지의 투기꾼들이다. 원산도도 머지않아 다리가 놓일 것이라고 한다. 다리가 놓이면 이들 자본들이 현대식으로 콘도를 비롯한 각종 유흥시설을 지을 것이다.

관광객들이 지금보다 많이 들어오겠지만 교통이 좋아져 원산도에서 놀고 인근 도시에 숙박하는 일이 발생할 것이다. 뿐만 아니라 원주민들은 자신의 삶의 터전들, 갯벌, 논과 밭, 그리고 심지어는 집까지 투기자본에 넘겨주고 떠나야 할지 모른다. 벌써 원산도 곳곳에 별장과 현대식 콘도들이 들어서고 있다. 주민들이 개발의 주체가 되고 자신들의 생활문화를 지키며 섬에 지속적으로 섬을 지키며 살 수 있는 방안은 없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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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여 년 동안 섬과 갯벌을 기웃거리다 바다의 시간에 빠졌다. 그는 매일 바다로 가는 꿈을 꾼다. 해양문화 전문가이자 그들의 삶을 기록하는 사진작가이기도 한 그는 갯사람들의 삶을 통해 ‘오래된 미래’와 대안을 찾고 있다. 현재 전남발전연구원 해양관광팀 연구위원으로 근무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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