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도 좀 찍어주면 안 돼?"

[바위나리와 떠난 여행 11] 원주 치악산 보문사 계곡에 사는 생명체들

등록 2005.08.22 21:05수정 2005.08.23 15: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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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 그쳤다. 등산 가자.”
“어디로?”
“보문사 쪽으로 가볼까?”


준수는 개학해서 학교 가고 광수는 일주일 후에나 개학이라 컴퓨터 게임을 하고 있습니다. 방학이라지만 대부분을 보충수업에 매달렸던 내게도 사흘이란 휴가가 주어졌습니다. 그마저도 비가 내려 등산 한 번 못하고 개학을 맞나 싶었는데 다행히 비가 그쳤습니다.

“광수도 갈래?”
“아니요.”

하던 게임을 멈추고 따라나서기 싫은 겁니다. 그럼 집 잘 보고 있으라고 하니 녀석이 배시시 웃습니다. 제 생각을 감추기엔 아직 어린 녀석입니다. 엄마, 아빠 눈치 보지 않고 컴퓨터를 할 수 있어 신난다는 표정입니다.

이기원
매표소를 지나 보문사 계곡으로 들어섰습니다. 계곡 물 흐르는 소리에 꽤나 힘이 들어 있습니다. 사흘이 멀다 하고 내린 비로 계곡 물이 불어 있기 때문입니다. 바위 틈새를 넘나들며 쏟아지는 하얀 물줄기가 그렇게 깨끗할 수 없었습니다.

이기원
길가에 뿌리를 내린 강아지풀도 몸단장 끝내고 카메라 앞에서 폼을 잡고 서 있습니다. 제 딴에는 꼿꼿한 모습 보이려 애쓰지만 살랑대는 바람 앞에서 중심 잡고 서 있기 쉽지 않습니다. 둘이서 하나 되어 흔들리는 몸 기대어 서서 괜찮은 포즈로 사진 한 장 박았습니다.


이기원
비에 젖은 몸 말리며 풀잎에 앉아 쉬고 있는 잠자리도 있습니다. 날개 접고 앉은 폼이 가까이 다가가 사진 찍어도 눈치 채고 도망가지 않을 거 같습니다. 위험을 느낀 잠자리는 날개부터 움직이는데 이 녀석은 카메라를 가까이 들이대도 전혀 아랑곳하지 않습니다.

이기원
솜털 보송보송한 풀에 한 녀석이 배를 보이며 앉아 있습니다. 사진 찍을 테니 등 좀 돌려보라고 해도 막무가내로 그냥 앉아 있습니다. 반대편이 계곡이라 녀석을 등 쪽에서 찍을 수 없습니다. 건드리면 도망갈 거 같아 그냥 찍었습니다. 노린재란 녀석입니다.


이기원
칡잎에 메뚜기가 앉아 있습니다. 논두렁과 벼 포기 사이에서 뛰노는 메뚜기는 가을이 코 앞에 왔다고 날개도 달았는데 이 녀석은 아직도 날개가 없습니다. 때가 되면 나도 날개를 달 수 있으니 쓸데없는 걱정 말라며 앉아 있습니다. 남들보다 한두 걸음만 떨어져도 큰일 난 것처럼 부산떠는 인간들보다 훨씬 의젓한 모습입니다.

이기원

이기원
꽃을 찾아 꿀을 모으는 나비와 벌도 있습니다. 카메라를 전혀 의식하지 않습니다. 꽃이 있는 곳이면 어디든지 날아갑니다. 꽃잎 다 떨어지기 전에 부지런히 꿀을 모아야 합니다. 한눈 팔지 않고 최선을 다해 사는 모습이 정겹습니다.

이기원
풀잎 뒷면에 매미 껍질이 매달려 있습니다. 숲 속 여기저기에서 매미가 울고 있습니다. 저 껍질 남겨놓고 떠난 매미는 어디에서 울고 있을까 궁금해집니다. 나뭇잎 사이로 스치는 서늘한 바람이 매미가 살아서 울 날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 걸 알려주고 있습니다.

“내 사진 좀 찍어주면 안 돼?”

나란히 걸으며 얘기도 하고 사진도 찍어주면 좋으련만 무슨 남자가 온통 곤충에 빠져 헤어날 줄 모른다며 아내가 투정을 부렸습니다. 아내의 투정을 받고서야 겨우 정신이 들었습니다.

“미안해, 어디에서 찍어줄까?”
“안 찍어.”
“아, 저기 폭포 옆에서 찍으면 되겠다.”

두서너 번 도리질을 하던 아내가 눈을 살짝 흘기며 폭포 곁으로 갔습니다. 카메라에 폭포와 아내의 모습을 담아 셔터를 눌렀습니다.

덧붙이는 글 | 보문사 계곡은 원주 치악산 계곡입니다. 

 제 홈페이지 http://www.giweon.com 에도 실었습니다.

덧붙이는 글 보문사 계곡은 원주 치악산 계곡입니다. 

 제 홈페이지 http://www.giweon.com 에도 실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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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서 있는 모든 곳이 역사의 현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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