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남에서 폭동날지 모른다? 가서 봤더니

[현장] 강남 학부모에 묻다 "광역학군제, 어떻게 생각하세요?"

등록 2005.08.24 14:37수정 2005.08.24 16:47
0
원고료로 응원
a 교육열이 가장 높다는 대치동.

교육열이 가장 높다는 대치동. ⓒ 강이종행


"학부모들이 거세게 반발할 것으로 보인다. 광역학군제가 되면 강남 거주 학생이 추첨에 밀려 집에서 가까운 학교를 놔두고 다른 구에 있는 먼 학교로 배정받는 게 불가피하다. … 서울시 교육청의 한 관계자는 '잘못했다간 강남에서 폭동이 일어날지도 모르는 사안'이라고 말했다."

강남에서 폭동이 일어날지 모른다? 부자동네인 강남에 주요 독자층을 갖고 있는 <조선일보>가 8월 24일자에서 전한 광역학군제 발상에 대한 강남 민심 예상도다.

김진표 교육부총리가 23일 밝힌 소위 광역학군제에 대해 강남 학부모들은 실제로 어떻게 생각하고 있을까.

<오마이뉴스>는 24일 오전 20여명의 강남 엄마들을 만나 광역학군제에 대한 의견을 들어봤다. 강남 엄마들은 대체적으로 광역학군제 실시에 부정적이었지만 일단 지켜보겠다는 입장이었다.

중학교 3학년 자녀를 둔 대치동의 문아무개씨는 "어제 뉴스를 보고 '정부에서 미친 놀음하는구나'라고 생각했다"며 "생각 없이 발표하는 정부나 흥분하는 언론이나 모두 무시하고 싶다"고 말했다.

대치동에 사는 또다른 학부모 나아무개씨는 아직 '폭동 기미는 없다'고 말한다.

"엄마들은 '또 누가 나와서 말도 안되는 소리를 하는구나' 생각한다. 감정적으로 좋다, 싫다, 즉각 반응하는 엄마들은 아직 없다. 구체적인 안이 나온 것도 아니지 않는가?"


나씨는 "다만 자녀들의 내신성적에 유리할지 아닐지 여부를 따져보고 판단하게 될 것"이라고 밝혔다.

학군이 재편성돼 강북 학생들이 강남으로 와도 내신성적에 유리하다면 긍정적으로 평가할 것이라는 얘기다. 반대로 공부 잘 하는 학생들이 넘어와 내신에 피해를 준다면 절대 안된다는 것.


3호선 대치역 앞에서 만난 이아무개(우성아파트·중3 부모)씨는 "정부안에 부정적"이라고 밝힌 뒤 "강남이든 강북이든 멀리 학교를 다녀야 하는 아이들이 늘어날 것"이라고 비판했다.

그러나 중3 아들을 둔 김아무개씨는 "사실 구체적인 안이 나오지 않은 상황에서 뭐라고 말하기는 힘들다"면서도 "광역학군제가 실시된다면 받아들이려고 한다, 그동안 이 지역이 누려왔던 게 크질 않나"라고 말했다.

초등학교 6학년 자녀를 둬 아직 깊이 고민을 하지 않았다는 최아무개씨 역시 "우리 아이가 조금 멀리 학교를 가야 한다고 해도 받아들일 것"이라며 "제대로 준비를 하지 않은 채 발표한 것에 대해서는 솔직히 경솔하다는 생각이 든다"고 밝혔다. 그는 "앞으로 어떻게 구체화할 지 두고볼 것"이라고 덧붙였다.

사뭇 다른 압구정동 "일단 기분이 나쁘다"

a 광역학군제가 시행되면 가장 먼저 변화가 예상되는 압구정동.

광역학군제가 시행되면 가장 먼저 변화가 예상되는 압구정동. ⓒ 강이종행

광역화되면 바로 강북지역과 학군통합이 가능한 압구정동 학부모들의 반응은 위의 대치동 엄마들과는 사뭇 달랐다.

고1과 중1 자녀를 둔 양아무개(한양아파트)씨는 "왜 굳이 그렇게 해야 하는가, 일단 기분이 나쁘다"며 "아이가 거리가 먼 학교에 배정될 수도 있는데 어떤 엄마가 그런 것을 원하겠느냐"고 불쾌함을 표시했다. 그는 "그러나 아이 아버지는 '오히려 내신에 유리할 수도 있다'고 긍정적으로 평가하더라"고 전했다.

압구정 현대아파트 앞에서 만난 김아무개씨는 "어제 뉴스를 봤는데 그냥 무시했다"며 "땅값으로 봤을 때나 교육적으로 봤을 때나 이해할 수 없는 생각"이라고 잘라 말했다.

고1 아들을 둔 윤아무개(한양아파트)씨는 "우리 애가 고등학교 올라갈 때 공동학군제에 해당하는 강북 K고에 보낼 생각도 했지만 너무 먼 곳으로 보내면 아이가 고생할 것 같아 포기했다"며 "학군이 바뀐다고 큰 문제는 없을 것"이라고 판단을 유보했다. 현행 학군제에서도 위장전입 등을 통해 강북, 송파, 동작구 등에서 강남쪽으로 올 사람들은 오고 있다는 것.

"비평준화되면 좋은 학교 위해 이사하겠다"

하지만 이런 이야기들은 고교입시제도가 '평준화'된 상황에서라는 전제가 붙는다. 이날 만난 학부모들은 하나같이 '비평준화'로 바뀐다면 '맹모삼천'하듯 좋은 학교를 위해 이사할 용의가 있다고 말했다.

다만 한 엄마는 "현재도 강남 엄마들이 자식들을 강북에 있는 외국어고등학교나 예술고 등 특목고로 통학시키지 않는가"라며 "비평준화가 된 상태에서 광역학군제를 시행한다면 고민이 많아질 것 같다"고 밝혔다.

또 학부모들은 부동산 대책으로써 광역학군제는 전혀 실효성을 거두지 못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한 학부모는 "이번 광역학군제가 효과를 거둘 수 없다, 같은 이유로 시행하고 있는 2008년 내신성적 등급제 변화 이후 땅값이 내려야 하지 않았겠나"라고 정부를 비판했다.

대치동 학원가 "강남 교육특구는 무너지지 않는다"

▲ 대치동의 한 건물에 유명한 학원들이 밀집해 있는 모습.
ⓒ강이종행

"정부가 사교육과 공교육 실정을 너무 모른다. 광역학군제가 시행된다고 해도 강남 엄마들은 자리를 지키고 있을 것이다. 교육특구는 무너지지 않는다."

23일 김진표 교육부총리의 '광역학군제' 발언 뒤, 큰 요동이 없기는 대치동 학원가 역시 마찬가지였다. 한 유명학원 고위 관계자는 "이 동네 학부모들은 가장 합리적인 사람들"이라며 "학군제가 바뀌어도 별다른 변화는 없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그는 이어 "이론적으로는 '강남교육특구' 희석용으로 안을 내놓은 것 같은데, 지금도 동작에서 서초로, 성동에서 강남으로 위장전입 등을 통해 움직이는 사람들은 움직인다"며 "학군이 바뀌어도 마찬가지일 것"이라고 덧붙였다. 그러나 "자기 자식이 멀리있는 학교를 다녀야 한다면 분통터질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학원가에 미칠 영향에 대해 "전혀 문제가 없을 것"이라며 "대치동 어머니들은 이 곳을 떠나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라고 이유를 설명했다.

한 중학생 상담전문 학원 관계자는 "어제 뉴스 말미에 비평준화 가능성을 시사하는 대목이 있었다"며 "학부모들은 광역화 여부와 상관없이 평준화냐 비평준화냐를 먼저 보게 될 것"이라고 지적했다.

강남과 강북 학교의 차이는 시설도, 교육의 질도 아닌, '공부할 수 있는 분위기'라는 것. 따라서 평준화된 상황에서는 구역에 상관없이 강남 학부모들은 자리를 지키려 할 것이라는 해석이다.

그러나 비평준화가 되면 명문고를 찾아다니게 될 수밖에 없다고. 그는 마지막으로 "집값을 내리기 위한 광역학군제는 절대 효과가 없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11년 동안 한국과 미국서 기자생활을 한 뒤 지금은 제주에서 새 삶을 펼치고 있습니다. 어두움이 아닌 밝음이 세상을 살리는 유일한 길임을 실천하고 나누기 위해 하루 하루를 지내고 있답니다.


AD

AD

AD

인기기사

  1. 1 "아버지 금목걸이 실수로 버렸는데..." 청소업체 직원들이 한 일 "아버지 금목걸이 실수로 버렸는데..." 청소업체 직원들이 한 일
  2. 2 "부영, 통 큰 기부로 이미지 마케팅... 뒤에선 서민 등쳐먹나" "부영, 통 큰 기부로 이미지 마케팅... 뒤에선 서민 등쳐먹나"
  3. 3 깜짝 등장한 김성태 측근, '대북송금' 위증 논란 깜짝 등장한 김성태 측근, '대북송금' 위증 논란
  4. 4 탐욕스러운 기업이 만든 비극... 괴물을 낳은 엄마 탐욕스러운 기업이 만든 비극... 괴물을 낳은 엄마
  5. 5 윤석열 정부에 저항하는 공직자들 윤석열 정부에 저항하는 공직자들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