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자들의 항의 "세금 때문에 못 살겠다"

[해외리포트] 오스트리아, 저소득층 위주 세금정책 변화 조짐

등록 2005.08.30 07:14수정 2005.08.30 12: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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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스트리아 비엔나에서 다국적 물류기업에 근무하고 있는 볼프강(38)씨는 8만 유로를 받는 고소득자임에도 불구하고 극히 평범한 삶을 살고 있다. 왜 그럴까?
오스트리아 비엔나에서 다국적 물류기업에 근무하고 있는 볼프강(38)씨는 8만 유로를 받는 고소득자임에도 불구하고 극히 평범한 삶을 살고 있다. 왜 그럴까?오마이뉴스 조경국

볼프강과 마찬가지로 대부분의 오스트리아 사람들은 집에서 잔디를 깎거나 정원과 집등을 직접 손질하면서 주말을 보낸다.
볼프강과 마찬가지로 대부분의 오스트리아 사람들은 집에서 잔디를 깎거나 정원과 집등을 직접 손질하면서 주말을 보낸다.배을선
오스트리아 비엔나에서 다국적 물류기업에 근무하고 있는 볼프강(38)씨는 한화로 계산하면 근 연봉 1억원(8만 유로)을 받는 고소득자임에도 불구하고 극히 평범한 삶을 살고 있다. 그가 운전하는 차는 메르세데스(Mercedes)도 베엠베(BMW)도 아닌 폭스바겐(Volks Wagen : 해석하면 '서민들의 차')이다. 골프는 엄두도 못 낼뿐더러 휘트니스 센터에 갈 시간도 없다.

새벽 5시에 일어나 아침은 커피 한잔으로, 점심은 마라톤미팅으로 건너뛸 때가 흔하며 시간이 있다고 해도 먹게되는 것은 간단한 샌드위치나 테이크아웃 도시락이다. 그나마 일찍 퇴근해 아내가 해주는 따뜻한 저녁 한 끼를 집에서 배부르게 먹을 수 있다면 편안한 하루를 마감하는 셈이다.

토요일 아침마다 일찍 일어나 아내와 함께 가장 저렴한 슈퍼마켓인 호퍼(Hofer)에서 장을 본 후, 매주 '1+1=1'이나 균일가 기획상품을 판매하고 있는 다른 슈퍼마켓 한 두 곳을 더 돌면 다음 한주를 위한 장보기가 완전히 끝난다.

외식은 주로 주말에 한두 번씩 한다. 저렴한 점심메뉴를 제공하는 중국레스토랑이나 비엔나 근교에 있는 호이리거에서 오스트리아의 전통음식을 먹는데, 두 사람이 한번 외식하는데 쓰는 돈은 평균 25유로(한화 3만원)를 넘지 않도록 한다.

볼프강의 아내 도리스(34)는 수학교사로 일하다 건강이 좋지 않아 학교를 그만두고 전업주부로 지내고 있다. 그가 남편에게서 받는 돈은 한달에 500유로(약 60만원). 200유로는 보통 식비로 지출하고 300유로 정도를 용돈으로 사용한다. 300유로 중 50유로는 휘트니스 센터에 매달 지불하고 나머지 돈으로 친구들을 만나거나 옷이나 화장품을 산다.

친구들을 만나더라도 보통은 커피 정도를 마실 뿐 식사는 웬만하면 하지 않는다. 비싸기 때문이다. 루이뷔통이나 샤넬 같은 명품구입은 전혀 꿈도 꾸지 않으며 6월 여름세일과 12월 크리스마스 세일을 통해 싼 값에 물건을 사는 게 쇼핑의 전부다.

연봉 1억원. 결코 적은 금액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볼프강과 도리스가 아끼며 살아가는 이유는 바로 오스트리아의 살벌한 세금제도 때문이다.


연봉 1억 고소득자의 '이상한' 생활

저소득자층에는 터키인이나 동유럽인들같은 이민자들도 섞여 있다.
저소득자층에는 터키인이나 동유럽인들같은 이민자들도 섞여 있다.배을선
오스트리아는 EU 가입국 중 GDP(국내총생산)가 4번째로 높은 부자나라(2003년기준)로 스웨덴, 핀란드, 덴마크, 네덜란드에 이어 다섯번째로 세금을 많이 거둔다. 오스트리아에서는 연봉이 5만1000유로 이상 되는 고소득자의 경우 정확히 반인 50%를 세금으로 내야 한다.


따라서 볼프강이 실제로 수령하는 돈은 한화로 약 5천만 원 정도다. 물론 5천만 원도 적은 돈은 아니지만, 휴가비, 집세, 연금 등 미래를 위한 투자금액을 빼고 나면 아끼고 살 수밖에 없는 형편이다.

오스트리아의 전체인구는 서울인구보다 적은 8백만 명인데 이중 225만 명이 저소득자로 세금을 전혀 내지 않는다. 그 위로 225만 명이 연봉의 38.33%를 세금으로 내며 약 90만 명의 중산층이 연봉의 43.60%를 세금으로 내고 있다. 볼프강이 포함되어 있는 그룹은 최고 고소득자 그룹(약 20만 명)으로 버는 돈의 반을 세금으로 내야 한다.

때문에 오스트리아에서는 저소득층의 불만이 적다. 세금을 전혀 내지 않아도 병원에서의 일반진료나 고등학교까지의 전 교육과정이 무료다. 심지어 저소득자나 돈을 벌지 않는 젊은 사람들은 도서관의 책 대여도 무료로 가능하다. 부모로부터 독립해 사는 중저소득자들의 대학생 자녀들은 정부로부터 받는 '킨더 겔드'(Kinder Geld) 등의 자녀양육비(보통은 부모가 정부로부터 받지만 자녀가 독립해 살면 그 돈을 고스란히 자녀들에게 준다)와 대학등록금까지 환급받아 아르바이트를 하지 않아도 그럭저럭 혼자 살아갈 수 있는 생활비를 마련할 수 있을 정도다.

저소득자는 세금 0원, 고소득자는 수입의 50%

오스트리아의 '사회와 기업을 위한 은행'간판.
오스트리아의 '사회와 기업을 위한 은행'간판.배을선
오히려 오스트리아에서 불만이 많은 층은 고소득 중산층들이다. 상류층처럼 어마어마하게 돈을 버는 것도 아니요, 부모로부터 물려받을 것도 별로 없는 견실한 월급쟁이들임에도 세금부담이 너무 크다는 것.

"많이 버는 만큼 세금을 많이 내야 하는 것은 이해하지만, 고소득층에도 등급을 두어 좀 덜 버는 고소득 중산층과 정말 많이 버는 고소득 상류층의 세금율을 차별적으로 시행해야 한다"는 게 볼프강의 세금론이다.

오스트리아 비엔나에 이민 온 한 한국인사업가는 높은 세금율이 두려워 어떻게 하면 세금면제를 받을까 궁리하다 몇몇 복지기관 등에 기부금을 냈다. 기부금을 낸 영수증을 들고 세무서를 찾아간 그는 "돈을 많이 버니까 기부를 할 수 있고 본인이 원해서 기부금을 냈으니 세금면제혜택과 전혀 관계없다"는 답변만 듣고 왔다. 한국적인 세금면제방법이 이곳에서는 통하지 않는다.

익명을 요구한 한 한국인 컨설턴트는 "잠도 제대로 못자고 짜낸 아이디어를 팔아서 살고 있는데, 이곳 세무서에서는 말 한마디로 돈을 버는 줄 알고 어마어마한 세금을 먹였다"고 불만을 토로했다.

오스트리아에서 정신노동을 하는 화이트칼라의 직장인들은 '가만히 앉아서 돈버는 사람들'로 분류되어 '세금을 당연히 많이 내야 하는 그룹'에 속하게 된다.

고소득층이 낸 세금은 오스트리아의 복지와 건강, 주택문제를 해결하는데 가장 많이 투자되며 그 다음으로는 일반적인 공중행정과 교육, 과학연구, 문화보급 등 인프라를 구축하는데 투자된다.

정당과 언론들도 "고소득자 세금비율 낮추자"

고소득자들의 세금정책에 대한 불만이 높아지자 오스트리아의 국민당(OEVP)은 다가올 2007년도에는 세금제도가 개혁될 수 있다는 가능성을 8월 중순부터 내비치고 있다. 국민당은 그동안 세금제도개혁을 줄곧 반대해온 당. 그런 국민당이 고소득자 그룹의 세금율을 조금 낮추는 법안을 제출할 것으로 알려지자, 고소득 중산층의 특별한 관심이 이어지고 있다.

오스트리아 의회에서 법안이 통과되려면 3분의 2 이상의 찬성을 얻어야 하는데, 사회민주당까지도 긍정적으로 나오고 있어 통과가능성이 매우 높다. 특히 신당인 미래연합당까지 "8만4000유로 이상 버는 그룹에 한해 50% 세금을 내게 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데어 슈탠다드> 신문에 실린 8월 21일자 세금정책개혁기사. '높은세금에 독단없다'라고 적혀있다. 지도에 실린 주황색 부분의 국가들이 고세금정책국가. 영국, 프랑스, 독일 등의 대부분 유럽국가들은 노란색, 동유럽 국가들은 보라색 초록색 등의 색깔로 구분되어 있다.
<데어 슈탠다드> 신문에 실린 8월 21일자 세금정책개혁기사. '높은세금에 독단없다'라고 적혀있다. 지도에 실린 주황색 부분의 국가들이 고세금정책국가. 영국, 프랑스, 독일 등의 대부분 유럽국가들은 노란색, 동유럽 국가들은 보라색 초록색 등의 색깔로 구분되어 있다.
오스트리아의 경제전문가들과 현지 언론들도 환영하는 분위기다. 세금제도개편이 현재 오스트리아의 경제를 더 성장시키는 촉진제가 될 것이라는 것. 일간지 <데어 슈탠다드>는 앞으로 연봉 5만1000유로를 받을 사람들의 인구 증가와 인플레이션 등이 세금개혁 후의 정부금고를 채워줄 수 있을 것이라는 긍정적인 예상을 하고 있다.

세금제도개혁에 절대적으로 반대하는 곳은 녹색당 뿐이다. "저소득자들의 세금은 언제나 면제되어야 한다"고 주장해온 녹색당은 세금제도가 개혁될 경우 저소득자들도 적게나마 세금을 내야하거나 혹은 고소득자들이 내는 세금이 줄어들어 불리한 복지정책을 누리게 될 가능성을 우려하고 있다.

한편 세금제도 변화예고에 고소득 중산층들은 대부분 환영한다는 반응을, 저소득층 시민들은 별 반응을 보이지 않고 있다.

시내 중심가의 카페 아이다(Aida)에서 웨이트리스로 일하는 이가(20)씨는 "그동안 고소득자들의 세금율이 일괄적으로 높았던 것은 사실"이라며 "보다 개혁적이고 절충적인 제도개선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저소득층이 불리하게 될 수도 있다는 의견에 대해서도 이가는 "오스트리아의 세금제도는 어디까지나 있는 사람, 더 버는 사람에게서 세금을 더 내게 하는 시스템이고 그 기본은 변하지 않을 것"이라며 일축했다.

유럽에서 실업률이 가장 낮은 국가, 상위 복지국가, 정치적 중립국가인 오스트리아의 자존심 강한 세금정책이 저소득층의 복지를 유지하면서 고소득층까지 회유하려는 '두 마리 토끼잡기' 정책으로 바뀔 수 있을지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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