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밀 싹 된장에 조물조물...비벼서 한 입 쏙~

[고향의 맛 원형을 찾아서 94] 메밀나물

등록 2005.08.28 12:44수정 2005.08.28 17: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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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나물 천국에서 보낸 한철


a 콩이 덜 찧어진 된장이라야 맛이 납니다.

콩이 덜 찧어진 된장이라야 맛이 납니다. ⓒ 김규환

봄철엔 마당과 들, 산에 있는 풀과 꽃, 나뭇잎 대부분이 나물이다. 생으로 쌈 싸 먹고 데쳐서 무쳐먹고 국을 끓여 먹기도 한다. 종류가 셀 수 없이 많아 다 기억하기도 힘들다. 약은 나물이고 싹은 온통 우리 입을 즐겁게 한다.

봄은 겨우내 김장김치와 몇 가지 묵나물에 한정되어 부족하기 쉬운 비타민과 철분, 섬유질 등 몸에 필요한 영양소 갖가지를 보충해 나른한 몸을 새롭게 깨워준다. 봄에 나물반찬이 없다면 우린 어떻게 살아갈까.

아마도 봄이 찬란한 건 화려한 꽃이 있어서라기보다 혀끝을 자극해 입맛을 되살리고 콧구멍을 건드려 향기를 채워주기 때문이다. 금수강산 앞 다퉈 피어나는 나물을 먹어보지 못하고 떠나보내는 아쉬움도 별 것 아니다. 워낙 가지가지라 열댓 가지 챙겨먹으려면 생업을 반은 포기하고 덤벼야만 하니 자연의 변화를 따라가기조차 바쁘다.

피어나는 나물을 순서대로 살펴보자.

a 강원도 높은 산에 있는 엘러지꽃. 나물 향도 그윽하고 씹히는 맛도 기가 막힙니다. 요, 이쁜 걸 다 먹었지요.

강원도 높은 산에 있는 엘러지꽃. 나물 향도 그윽하고 씹히는 맛도 기가 막힙니다. 요, 이쁜 걸 다 먹었지요. ⓒ 김규환

맨 먼저 눈밭에서 봄동나물과 냉이로 첫 미팅을 하면 쑥쑥 자란 쑥이 쑥대밭에 깔려있다. 코딱지나물, 광대나물도 빠지지 않고 좁쌀뱅이 국끓이기에 좋다. 달래와 산부추가 맞이한다. 머위와 민들레 씀바귀, 고들빼기 쓴맛을 보고 깨어난 정신은 봄을 실감케 한다. 칼을 들고 들로 나가 미나리 몇 줌 캐면 밥상이 넉넉하지, 돌나물로 물김치 담그면 사각사각 씹히는 소리로도 행복하다.


밭으로 가 산자락에 오르면 땅두릅이 먼저 인사를 하고 며칠 후 두릅이 맞이한다. 소로록 잠든 새 비가 살포시 나리면 고사리, 고비 구부정하게 땅을 비집고 올라오고 뒤따라서 더덕과 잔대, 삽주 싹이 바닥에 깔린다. 위쪽엔 빨간 옻 순이 대롱대롱 매달려 있다. 개두릅 엄나무 싹과 가시오가피 진한 내음 접하니 새큼한 초고추장 생각이 간절해진다.

a 곰취 뜯으러 가자는 좋은 소식을 받고 달려가 보니 배낭에 가득 가져와 쌈으로 먹고 데쳐먹고 장아찌에 박아두고 그래도 남아 말려뒀습니다.

곰취 뜯으러 가자는 좋은 소식을 받고 달려가 보니 배낭에 가득 가져와 쌈으로 먹고 데쳐먹고 장아찌에 박아두고 그래도 남아 말려뒀습니다. ⓒ 김규환

넝쿨째 다래 데려오고 싶고 화살나무 홑잎과 고춧잎도 따오련다. 봄나물 자랑 이것으론 성에 차지 않는다. 취나물 향기 방방곡곡 골짜기마다 잡초처럼 산 바닥을 뒤덮고 주위엔 구절초 쑥부쟁이 수리취 미역취 며느리취 병풍취 바위취 단풍취 개미취 벌개미취가 거들어 다닥다닥 붙어 있다. 금낭화 꽃피기 전에 몇 개 맛볼까 보다.


누룩치 당귀 어린잎 가지런히 모으노라면 곰 발바닥 또렷하게 콕콕 찍혀 있으니 이게 바로 취나물의 왕자 곰취로다. 어느새 내 몸은 땀을 뻘뻘 흘리며 향기를 따라 1000미터 고지를 넘어 가니 참나물 그득하고 피나물 붉은 피를 똑똑 흘린다. 산마늘 명이나물이 넓게 땅을 들어올리고 얼레지 한 통속으로 자주색 꽃을 가녀리게 피었네라.

산삼 몇 뿌리 먹은 것이나 다름없는 효과

a 구황작물 곤드레로 밥을 지으면 전염병과 각종 성인병을 예방한답니다. 소화력도 탁월하지요.

구황작물 곤드레로 밥을 지으면 전염병과 각종 성인병을 예방한답니다. 소화력도 탁월하지요. ⓒ 김규환

오매! 여기까지 봄을 마중하고 몰입하여 사귀는데 힘겨워라. 정신을 바짝 차리고 산자락을 내려오는 길에 곤드레 고려엉겅퀴 싸 담아 삶아서 죽이든 비빔밥을 만들어 보리라. 질경이 더하면 곤드레만드레 향취에 쓰러지지 않으면 다행이다.

하여 산에 드니 나물을 먹지 않았어도 관절 물렁뼈에 생기가 돈다. 산삼 몇 뿌리 먹은 것이나 진배없다. 피톤치드 맘껏 마시니 가슴 속이 후련하였다. 돌아와 한 망태 풀어 놓으니 집안이 좁아 보이네. 양념 하나마다 하게 둘둘 주무르니 그 많던 양이 대폭 줄었다. 몇 번 주섬주섬 넣으면 몇 개 먹지 않아도 금세 허기가 가셨다.

향기를 마시는 건 덤이다. 두통도 사라진 기분이다. 쓴맛, 신맛, 쌉쌀한 맛, 씁쓰레한 맛, 새콤한 맛 된장 고추장 초고추장 조선간장에 어울리니 이제 본격 효험을 느낄 차례다.

목 줄기를 타고 몸속에 버티고 있던 노폐물을 밖으로 밀어내니 비만도 끝이요 변비가 언제 괴롭혔나? 피가 맑아지고 잠자던 살과 근육이 활력을 되찾는다. 도사리고 있던 온몸 병마 덩어리는 더 이상 버티지 못하니 자연에 저항성 좋아져 항균 항암 절로 된다. 거친 나물 갖가지 골고루 먹어주니 약이 따로 없다.

산채원 촌장이 메밀을 심은 까닭

a 어제 산나물 관련 촬영을 하면서 열댓 가지 나물요리를 해서 맛나게 먹었습니다.

어제 산나물 관련 촬영을 하면서 열댓 가지 나물요리를 해서 맛나게 먹었습니다. ⓒ 김규환

찬란한 봄 화려한 봄을 밀어내는 더위에 산나물 산야초도 맥을 못 추고 밭에 몇 가지만 가둬놓고 즐길라치면 감질 맛이 나는데 열무나 호박, 가지, 오이, 고구마순, 참비름, 명아주, 들깻잎에 만족하며 사느니 어서 김장무, 배추가 굵어지길 손꼽아 기다린다.

한여름 못내 아쉬워 된장 고추장 간장에 미리 박아뒀던 장아찌로 궁금한 입을 달래주고 뽕잎으로 뽕잎 칼국수, 뽕잎수제비, 뽕잎차, 뽕잎두부 만들어 처서(處暑)에 이르면 뭐랄까, 먹는데 삶의 가치를 으뜸으로 치는 사람들은 정말이지 맥이 풀린다.

시장에 가도 빤한 채소니 몇 달여를 그 나물에 그 밥이니 고깃국을 물리게 먹은들 속이 허전하기 한량없다. 주체할 수 없는 미식가의 허기는 쉴 틈 없이 방망이질을 해대는데 속절없이 참는데 한계가 있다.

하이에나처럼 기웃기웃 해보지만 마땅한 꺼리가 없으니 이를 어쩔거나. 이 때를 위해 비장의 카드 하나를 숨겨뒀는데 이제 굳이 봉평까지 멀리 갈 필요 없이 <산채원시험포지>로 차를 몰고 달려간다.

a 우리집에 있는 산나물 장아찌가 맛이 들었습니다.

우리집에 있는 산나물 장아찌가 맛이 들었습니다. ⓒ 김규환

200여 평 터에 갖가지 밭곡식은 거의 다 심어져 있다. 콩이 배가 불러가고 옥수수는 막차를 타려 한다. 상추, 부추, 파, 들깨, 호박, 오이, 가지, 고추, 고구마줄기, 토마토가 여름을 챙겨주었다. 산나물도 어느새 밭에 턱 차지하여 주인공이 되었다. 비닐 하나 쓰지 않고 풀과 시름하는 것이 만만치 않지만 보름 전 쯤 김장거리를 심으면서 철이 지난 옥수수 대를 베어 퇴비로 직행하고 득득 긁어 한 가지 씨를 던졌다.

며칠 지났더니 비를 흠뻑 맞고 뽈그족족 지렁이와 구별이 되지 않는 가녀린 몸매를 과시하며 메밀 싹이 돋았다. 꽃을 보려거나 묵, 국수를 먹어볼 생각이 아니었으니 가능한 배게 뿌렸다. 한 뼘도 되지 않는 싹을 솎지도 않고 마구 뽑아서 가져왔다.

조물조물 된장에 무치면 가을철 최고의 나물

a 시장에 갈 필요없이 밭에 한번 다녀오면 채소 걱정 끝입니다. 농약을 안 쳐도 되니 가족 건강도 염려없습니다.

시장에 갈 필요없이 밭에 한번 다녀오면 채소 걱정 끝입니다. 농약을 안 쳐도 되니 가족 건강도 염려없습니다. ⓒ 김규환

오늘 준비한 요리는 초가을 최고의 나물이다. 조리법도 간단하여 누구나 할 수 있다. 가지런히 정리된 메밀뿌리를 싹둑 잘라버리고 팔팔 끓는 물에 살짝 넣어 약간만 데친다. 얼른 건져 찬물에 담갔다가 물기를 꾹 짜서 둔다.

집 된장을 두어 숟가락 퍼서 수저로 둘둘 으깨고는 다진 마늘 대여섯 조각과 파 조금, 참깨를 뿌린 양념에 메밀을 넣고 주물러주면 끝이다. 참기름만 더 하니 시작한 지 5분 만에 메밀나물이 완성되었다.

a 메밀을 나물로 먹는다는 사실을 아는 분들이 많지 않지만 그 맛은 참 좋답니다. 예전엔 그냥 솎아서 해 먹었지요. 갑자기 어머니가 그립습니다.

메밀을 나물로 먹는다는 사실을 아는 분들이 많지 않지만 그 맛은 참 좋답니다. 예전엔 그냥 솎아서 해 먹었지요. 갑자기 어머니가 그립습니다. ⓒ 김규환

나물엔 덜 깨진 된장 알갱이 반쪽 콩알이 살아있다. 조물조물 풋내가 나지 않게 무치면서 서너 개 내 입으로 쑤욱 가져가 음식 만드는 사람만이 누릴 수 있는 특권을 누려본다. 짜지도 싱겁지도 않게 잘 무쳐졌다. 보드랍다. 깨알이 씹혀 고소하다. 된장과 어우러지니 어릴 적 어머니가 해주시던 시골 맛 그대로다. 선명하게 붉었던 대공이 시각을 깨운다.

두어 줌밖에 안 되는 메밀나물을 따로 소복이 담아두고 약간을 남겼다. 반찬 아무것도 손대지 않고 바로 밥을 양푼에 퍼 담았다. 인정사정 볼 것 없이 몇 번 흔들 듯 섞어주니 메밀비빔밥 대령이오. 꼭꼭 씹어 삼킬 일도 없으니 밥 먹는데도 5분이 걸리지 않아 아련한 추억의 맛을 즐기는 맛난 저녁이었다.

설거지 거리도 적어 이 정도면 일등 요리사 아닌가. 아! 이젠 어떤 나물을 찾아 헤맬까?

a 어제 차린 산나물 밥상. 수라상 보다 나은 자리에 앉는 기쁨을 누렸답니다. 들기름과 참기름을 적절히 사용했습니다. 오늘 아침이 편안하더군요.

어제 차린 산나물 밥상. 수라상 보다 나은 자리에 앉는 기쁨을 누렸답니다. 들기름과 참기름을 적절히 사용했습니다. 오늘 아침이 편안하더군요. ⓒ 김규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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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규환은 서울생활을 접고 빨치산의 고장-화순에서 '백아산의 메아리'를 들으며 살고 있습니다. 6, 70년대 고향 이야기와 삶의 뿌리를 캐는 글을 쓰다가 2006년 귀향하고 말았지요. 200가지 산나물을 깊은 산속에 자연 그대로 심어 산나물 천지 <산채원>을 만들고 있답니다.도시 이웃과 나누려 합니다. cafe.daum.net/sanchaewon 클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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