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보랏빛 가을꽃이 시리네

멀어져가는 여름, 이제 잊어야겠다

등록 2005.08.30 00:59수정 2005.08.30 11: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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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일홍 배롱나무꽃은 백일동안 화려하게 피어 지고 있네.
백일홍 배롱나무꽃은 백일동안 화려하게 피어 지고 있네.김규환
태양이 작열하는 백일홍을 가슴에 보듬고 여름이 갔다. 물기도 머금고 떠나갔다. 붉은 건 빠트림 없이 가져갔다. 노랗게 익어가는 것마저 작별을 고했다.


메꽃과 털부처꽃, 울타리콩이 약해보이는 요즘이다.
메꽃과 털부처꽃, 울타리콩이 약해보이는 요즘이다.김규환
연분홍 메꽃이 짙어지면 얼마나 짙어지겠는가. 산자락 털부처꽃 지면 집 앞 울타리엔 넝쿨째 오르겠구나.

벌써 봉평에는 메밀꽃이 흐드러지게 피었겠네.
벌써 봉평에는 메밀꽃이 흐드러지게 피었겠네.김규환
대체 얼마나 굵은 서해 천일염 바가지로 퍼부었길래 모양마저 아다지 각 지게 생겼는가.

올 한 해 층층이 쌓아올린 정성이 하늘을 받치고 있다. 푸른 빛이 층꽃 꼭대기까지 내려왔다.
올 한 해 층층이 쌓아올린 정성이 하늘을 받치고 있다. 푸른 빛이 층꽃 꼭대기까지 내려왔다.김규환
비가 그쳤다. 하늘이 열렸다. 파랗다 못해 쪽빛 바다를 닮은 하늘이 기지개를 켰다. 바닥에 있는 층꽃마저 보랏빛 하늘을 빼닮았다.

꿀풀은 논두렁에 물꼬트러 다니는 사람 심심지 않게 한다. 맥문동은 햇볕을 피하려는 누이에게 좋다. 저리도 크고 진한 아욱도 있으려나.
꿀풀은 논두렁에 물꼬트러 다니는 사람 심심지 않게 한다. 맥문동은 햇볕을 피하려는 누이에게 좋다. 저리도 크고 진한 아욱도 있으려나.김규환
호박이 누렇게 익고 벼가 숙여도 꽃은 더 찬란하게 보란 듯 보랏빛이다. 아욱꽃도 이렇게 피었다. 개승마도 가을에 적응한다. 두메부추는 세상을 향해 골고루 관심을 쏟는다.

가을은 왜 가슴이 시릴까.
가을은 왜 가슴이 시릴까.김규환
꿀풀 몇 개 남아 있으면 사루비아마냥 몇 개 입에 가져가면 늦여름이 아쉬워도 달콤하다. 나무 그늘에서 쉬고 있던 맥문동도 시린 이슬을 받아 차갑다 한다. 나팔꽃도 저리 피었는가. 서풍이 좋다지만 이리 빨리 가을 문턱을 넘다간 곧 겨울이겠네. 비비추 보잘것없더니만 꽃망울은 이렇게 크고 탐스러운가.


물봉선화는 손톱에 물이 들여지는지 모르겠다. 모든 자주빛 꽃은 내 가슴을 물들였다.
물봉선화는 손톱에 물이 들여지는지 모르겠다. 모든 자주빛 꽃은 내 가슴을 물들였다.김규환
장독대 봉숭아보다 더 서러운 물봉선화 올 가을엔 꼭 소원성취 하라. 아니 오거든 칡넝쿨로 꽁꽁 묶어서라도 데리고 와 칡꽃 술 한 잔 대접하면 겨우내 연기 한 점 나지 않는 싸리나무를 때리라.

너른 벌개미취 밭에 가고 싶다.
너른 벌개미취 밭에 가고 싶다.김규환
범나비 막바지 꿀을 따느라 바쁘다. 가을걷이 할 것이 얼마나 될까. 하늘 뭉개구름에 덮힌 세월이 차마 견디지 못하고는 화려한 옷을 벗어 가을빛마저도 옅어지려 한다. 끝내 겨울이 시작되면 꽃은 나를 위해 따뜻한 노란 이불 덮어주겠지.


취는 국화다. 국화는 대부분 취다. 국화향, 취꽃 향기에 빠지면 헤어나지 못한다.
취는 국화다. 국화는 대부분 취다. 국화향, 취꽃 향기에 빠지면 헤어나지 못한다.김규환
취꽃 느긋하게 피어 가슴을 싸하게 어루만지매 모두 국화라. 술 담가 차 다려 온기를 더하자꾸나.

가을 춘궁기에 보리밥을 달고 있는 달개비만 보면 배가 고프다.
가을 춘궁기에 보리밥을 달고 있는 달개비만 보면 배가 고프다.김규환
아이구나! 나 몰라라. 화려한 꽃 하나 없이 후련하네. 쳐다보기 아쉬워 눈에 박아 두리라. 멀어져 가는 여름 이젠 잊어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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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규환은 서울생활을 접고 빨치산의 고장-화순에서 '백아산의 메아리'를 들으며 살고 있습니다. 6, 70년대 고향 이야기와 삶의 뿌리를 캐는 글을 쓰다가 2006년 귀향하고 말았지요. 200가지 산나물을 깊은 산속에 자연 그대로 심어 산나물 천지 <산채원>을 만들고 있답니다.도시 이웃과 나누려 합니다. cafe.daum.net/sanchaewon 클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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