슈뢰더와 고이즈미, 희한하게 닮았다

조기 총선과 당 분열... 결과도 닮을까?

등록 2005.09.01 11:14수정 2005.09.01 16: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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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달 11일과 18일 각각 총선을 앞두고 있는 일본과 독일의 선거 양상이 대단히 비슷하다.

집권당이 추진해왔던 개혁이 지지부진하고 지지율이 하락하자 그 돌파구로 국회 해산이라는 '깜짝 카드'를 선택한 점, 총리의 개혁노선에 반대하는 일부 여당 의원들이 신당을 만들어 집권당이 분열된 점, 야당의 약진으로 정권교체 여부에 이목이 집중되고 있는 점 등 비슷한 양상을 띄고 있다.

'국회해산'이라는 극약처방

a 9월 11일 예정된 일본 총선(중의원 선거)이 선거전에 돌입한 가운데, 일본 집권 자민당 총재인 고이즈미 준이치로 총리가 지난달 30일 도쿄의 한 지하철역 근처에서 선거유세를 펼치고 있다.

9월 11일 예정된 일본 총선(중의원 선거)이 선거전에 돌입한 가운데, 일본 집권 자민당 총재인 고이즈미 준이치로 총리가 지난달 30일 도쿄의 한 지하철역 근처에서 선거유세를 펼치고 있다. ⓒ AP/연합뉴스

독일 게르하르트 슈뢰더 총리는 실업률이 11.5%로 고공비행하고 있는 가운데 실업수당을 삭감하는 등 고통을 동반한 개혁을 단행해 왔다. 개혁의 핵심은 바로 '하르츠 Ⅳ법'.

이 법은 실업자의 취업노력 의무화와 실업보험과 실업수당을 통합해 수령액을 15% 삭감, 눈덩이처럼 불어나는 사회보장비용을 줄이고 노동시장의 활성화를 꾀한다는 경제 회생정책이다.

그러나 노조를 기반으로 둔 사민당 당내 좌파들은 '하르츠 Ⅳ법'이 사회적 약자의 희생과 소비 부진만 초래할 뿐이라고 거세게 반발했다. 또 실업자가 500만명에 이르고 재정적자가 3.9%에 달하는 등 어려운 경제사정이 계속되자 국민들의 불신도 깊어만 갔다.

그 결과 지난 5월 39년 동안 사민당이 한 번도 패한 적이 없는 노르트라인 베스트팔렌주 선거에서까지 참패했다. 또 정권 장악력이 약화되자 그가 재집권한 뒤 상정한 정부법안 중 6분1이 상원에서 부결되는 수모를 겪어야 했다. 결국 당내 반발과 지지도 하락이라는 이중고에 시달린 슈뢰더 총리는 연방의회(하원)를 해산하고 총선을 앞당겨 국민의 재신임을 묻겠다는 정치적 '도박'을 강행하기에 이르렀다.


이런 고민은 고이즈미 준이치로 일본 총리도 마찬가지다.

'성역없는 개혁' '고통을 동반한 개혁' 등 구조개혁을 부르짖어 왔으나 국민들의 핵심 관심사인 연금문제가 표류하자 지지율이 곤두박질쳤다. 또 그가 정치생명을 걸고 추진해온 우정민영화 법안이 당내 이권다툼과 거대 노조를 기반으로 둔 민주당의 거센 반발에 부딪혀 부결됐다.


이처럼 지지율 추락과 당내 반발로 자신의 개혁 드라이브에 제동이 걸리자 고이즈미 총리는 '국회해산→조기총선 실시'라는 과감한 카드로 지지기반 회복에 나섰다.

여당의 분열

중도 좌파인 슈뢰더 총리는 노동자층을 선거기반으로 두고있는 당내 좌파의 반대를 무릅쓰고 개혁 정책을 추진해 왔다. 특히 그가 많은 논란에도 불구하고 강행한 '하르츠 Ⅳ법'에는 사민당 내의 반발이 속출해 일부는 당을 떠났다. 탈당한 좌파 의원들은 동독 공산당의 후신인 독일 민주사회당(PDS)에 합류해 신 좌파연합을 결성했다.

이 좌파연합의 선봉장은 제1기 슈뢰더 정권에서 재무장관을 역임한 오스카 라퐁텐 전 사민당 당수다. 사민당 내에는 아직도 그를 지지하는 세력이 많이 남아있고, 그가 이끄는 신 좌파연합의 지지도도 8%를 기록하고 있어 '친정' 사민당의 총선 레이스에 변수로 작용할 전망이다.

이런 사민당의 분열과 고전은 자민당이 분열한 일 총선 상황과 흡사하다. 고이즈미 총리는 우정민영화에 반대한 당내 의원들을 공천하지 않고 탈당마저 종용하자, 반대파 의원들이 주축이 되어 '국민신당'과 '신당일본' 등을 만들었다.

실제로 이번 총선에서 자민당 공천후보와 우정반대파가 격돌하게 될 소선거구가 33개구에 이르러 자민당의 '집안싸움'이 정권 새판짜기로 이어지는 것이 아닌가라는 관측마저 나오고 있다.

외교적 마찰 불사

a 게르하르트 슈뢰더 독일 총리(오른쪽)와 프란츠 뮌터페링 사민당(SPD) 당수(왼쪽)가 지난 13일 하노버에서 선거 유세 도중 관중들에게 인사하고 있다.

게르하르트 슈뢰더 독일 총리(오른쪽)와 프란츠 뮌터페링 사민당(SPD) 당수(왼쪽)가 지난 13일 하노버에서 선거 유세 도중 관중들에게 인사하고 있다. ⓒ 로이터/연합뉴스

선거에서 승리할 수만 있다면 외교적 마찰도 불사하는 두 총리의 정치수법도 닮은 꼴이다.

슈뢰더 총리는 지난 2001년 선거에서 야당 연합에 밀리는 듯했지만 선거 막바지에 '미국의 이라크전 반대'라는 반미 카드를 내세워 어렵게 재집권에 성공했다. 그러나 미국과의 외교 마찰로 비화되면서 부시 대통령과 슈뢰더 총리의 회담이 결렬되기도 했다.

그는 이번 총선에서도 '미국의 이란에 대한 무력행사 저지'라는 카드를 들고나와 독일 내의 뿌리깊은 반미 여론을 등에 업고 다시한번 반전을 노리고 있다.

한편 고이즈미 총리는 지난 자민당 총재전에서 태평양전쟁 전사자 가족들의 모임인 '일본 유족회'의 지지를 얻기 위해 야스쿠니신사 참배를 공약으로 내걸었다. 총리 재임 뒤에도 매년 참배를 강행해 한·일, 중·일 관계가 악화일로다.

그러나 지난달 29일 열린 각 당 당수 토론회에서 "자신이 야스쿠니 신사를 참배하지 않는다고 한·일, 중·일 관계가 개선될 것이라고 보지 않는다"며 선거 후 총리직을 유지하면 연내에 참배하겠다고 시사했다.

야당의 약진... 정권교체 될까?

일본과 독일의 이번 총선은 모두 제1야당의 약진으로 과연 정권교체가 이루어질 것인가에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우선 일본 총선은 자민당과 민주당 공천 후보가 격돌하게 될 소선거구가 280개에 달해 그야말로 자민당 정권이냐 민주당 정권이냐를 묻는 '정권선택' 선거가 될 전망이다.

그러나 12일간의 선거전에서 유리한 고지를 선점한 것은 고이즈미 총리의 인기를 등에 업은 자민당이다. 일본 언론사들이 연일 쏟아내는 여론조사에서 고이즈미 내각 지지율이 50%를 넘고 자민당 선호도도 30%대를 넘으면서 10%대의 민주당을 크게 앞서고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유권자가 언제까지 자민당의 손을 들어줄지는 미지수다.

지난 30일 <도쿄신문>이 발표한 여론조사에서 "차기정권에게 기대하는 정책"으로 민주당이 내세운 '연금제도개혁과 육아 등 사회보장정책'이 41.1%를 기록, 6.1%의 '우정민영화'를 크게 웃돌았다.

또 <교도통신>이 실시한 여론조사에서는 "아직 (선호 정당을) 결정하지 않았다"는 응답이 41.2%에 이르러 앞으로 판세가 바뀔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따라서 민주당의 약진이 정권교체로까지 이어질지 여부에 이목이 집중되고 있다.

한편, 독일 총선에서도 야당연합 총리후보인 앙겔라 메르켈 기민당(CDU) 당수가 슈뢰더 총리를 누르고 독일 사상 최초의 여성총리로 등극, 정권교체가 이루어질지 여부가 최대의 관심사로 떠오르고 있다.

최근 실시된 여론조사에서 앙겔라 당수가 이끄는 기민(CDU)-기사당(CSU) 연합의 합계지지율이 43%를 기록, 슈뢰더 총리가 이끄는 여당 사회민주당(SPD)의 지지율 29%를 크게 앞질렀다. 또 독일 주요기업 360개 사를 대상으로 실시한 조사에서도 약 80%가 현 슈뢰더 정권 이상의 구조개혁을 바란다고 응답, 노조를 기반으로 둔 사민당(SPD)보다는 기민당(CDU)에 기대를 거는 목소리도 커지고 있다.

그러나 총리후보 선호도에서는 슈뢰더 현 총리가 43%로 29%의 메르켈 총리를 앞서고, 선호정당을 묻는 질문에 절반 정도의 응답자가 "아직 결정하지 못했다"고 대답, 총선 결과를 섣불리 점치기 어려운 상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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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 뉴스 국제부에서 일본관련및 일본어판 준비를 맡게 되었습니다. 일본에서 1998년부터 2000년까지 2년간 채류한 경험을 바탕으로 이화여자대학교 통번역 대학원 한일 통번역을 전공하였습니다. 현재는 휴학중입니다만, 앞으로 일본과 한국간의 주요 이슈가 되고 있는 기사를 독자들과 공유해나가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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