턱 밑에 다가온 가을, 녹차 한 잔 어때요?

<음식사냥 맛사냥 43>향긋하고 그윽한 깊은 맛 '지리산 야생차'

등록 2005.09.01 14:53수정 2005.09.02 14:37
0
원고료로 응원
a 올 가을에는 건강에 좋은 지리산 야생차 드세요

올 가을에는 건강에 좋은 지리산 야생차 드세요 ⓒ 이종찬

불가에 '향 싼 종이 향내 나고 생선 싼 종이 비린내 난다'라는 말이 있다. 이는 사람의 삶과 마음에 비유한 말이 아니겠는가. 즉, 욕심 부리지 않고 깨끗하게 사는 사람에게서는 깨끗하고 아름다운 내음이 풍길 것이고, 탐욕과 노여움에 얽매여 어리석게 사는 사람에게서는 지독하게 더러운 내음만 풍긴다는 그런 뜻 말일 게다.

요즈음 사람들이 건강음료로 즐겨 마시는 차도 마찬가지다. 사람의 손길이 닿지 않는 심심산골에서 비와 바람과 햇살을 먹고 자란 찻잎에서는 향긋하고 그윽한 내음이 나면서 사람의 건강을 지켜줄 것이요, 농부가 찻잎 생산을 더 빨리 더 많이 하기 위해 비료를 주고 농약을 쳐서 키운 찻잎에서는 비료와 농약내음이 나면서 사람의 건강을 해치지 않겠는가.

남도 끝자락, 경남 창원에 가면 '대나무숲이 있는 언덕'이란 뜻을 가진 '죽림원'이란 찻집이 있다. 그렇다고 이 찻집 주변에 어른 팔뚝 만한 그런 대나무숲이 빼곡하게 우거져 있는 것은 아니다. 창원 시내 한복판에 있는 이 집 주변에는 대나무의 그림자조차 볼 수가 없다. 근데 왠 죽림원? 아마 불가의 말처럼 이 찻집을 찾는 사람들의 삶과 마음 속에 청정한 대나무숲을 심겠다는 그런 뜻은 아닐는지.


a 경남 창원에 있는 지리산 야생차 전문점 '죽림원'

경남 창원에 있는 지리산 야생차 전문점 '죽림원' ⓒ 이종찬


a 찻집에 들어서면 각종 다기와 야생차가 빼곡하다

찻집에 들어서면 각종 다기와 야생차가 빼곡하다 ⓒ 이종찬

"차는 달고, 쓰고, 맵고, 짜고, 신맛을 가지고 있어서 인생의 희노애락에 종종 비유되곤 하지예. 요즈음 우리 나라의 산에서 자라는 야생차가 항앙성분을 많이 함유하고 있다는 연구발표가 나오면서 야생차를 즐기는 사람들이 부쩍 늘어났어예. 아예 집에서 틈틈이 야생차를 즐기기 위해서 저희 집에서 야생차를 사가는 손님들도 많아예."

눈이 부시도록 하늘이 몹시 푸르렀던 지난달 23일(화) 오후 4시. 나 홀로 초가을 하늘의 푸르름에 흠뻑 취해 용지공원 주변을 산들바람처럼 걷다가 마주친 지리산 야생차 전문점 '죽림원'(경남 창원시 신월동 48-3). 이 찻집 주인 한양숙(48)씨는 "차는 찻잎도 좋아야 하지만 찻잎을 우려낼 좋은 물과 정갈스런 다기가 있어야 한다"고 말한다.

좋은 찻잎을 고르는 정성이 마음이라면, 그 정성스런 마음을 담을 좋은 물이 있어야 정신이 맑아지며, 정갈스런 다기를 다루는 조심스런 몸가짐까지 어우러져야 그윽한 사람의 향기가 뿜어져 나온다는 것. 그래서일까. 아까 이 찻집에 들어설 때부터 웬지 모르게 이 곳에서는 큰소리를 내면 안 될 것 같은 느낌이 들면서 나도 모르게 마음이 차악 가라앉는다.

a 자그마한 유리병 속에 가득가득 담긴 자리산 야생차

자그마한 유리병 속에 가득가득 담긴 자리산 야생차 ⓒ 이종찬


a 이 찻집에서는 손님들에게 차와 다기를 팔기도 한다

이 찻집에서는 손님들에게 차와 다기를 팔기도 한다 ⓒ 이종찬

스무 평 남짓한 깔끔한 공간. 곳곳에 촘촘촘 놓인 백자 같은 다기와 막사발, 기묘한 모습의 나무뿌리 그리고 찻잎이 빼곡히 담긴 자그마한 유리병. 차를 마시지 않고 찻집 안의 정갈스런 분위기만 보아도 금세 차를 마시고 있는 듯한 착각이 든다. 금세 입속에 은은한 향내가 나기 시작한다. 삶에 찌들어 지친 몸과 마음이 점점 가벼워진다.

잠시 뒤, 한씨가 뜨거운 물로 직접 우려내고, 직접 따라주는 지리산 야생차(5천원) 한 잔을 조심스레 입에 머금자 입속에서 지리산 바람이 부드럽게 이는 것만 같다. 두 번째 잔을 입에 머금자 지리산 골짝 골짝에 숲의 목마름을 달래주는 단비, 그 단비 내음이 은근하게 코 끝으로 파고 든다. 세 번째 잔을 입에 머금자 지리산에 찬란한 빛을 뿌리는 햇살, 그 햇살이 숙취에 시달린 속을 부드럽게 쓰다듬는 것만 같다.


근데, 마셔도 마셔도 차가 끝없이 나온다. 이제 다 마셨는가 싶으면 찻집 주인 한씨가 다기에 뜨거운 물을 가득 붓는다. 게다가 차를 마실 때마다 그 맛이 조금씩 달라진다. 어떤 때는 약간 단맛이 나기도 하고, 어떤 때는 약간 쓴 맛이 나기도 한다. 아까 한씨의 말처럼 차를 마시며 인생의 단맛과 쓴맛을 한꺼번에 다 맛보는 것만 같다.

a 주인 한양숙씨가 찻물을 끓이고 있다

주인 한양숙씨가 찻물을 끓이고 있다 ⓒ 이종찬


a 야생차는 항암효과가 특히 뛰어나다

야생차는 항암효과가 특히 뛰어나다 ⓒ 이종찬

"1991년에 창원시청 후문에서 처음 문을 열었지예. 그곳에서 98년까지 찻집을 운영하다가 밀양에 장애인 작업장 운영 문제 때문에 문을 닫은 뒤 올 봄에 이곳에 '새롬복지센터'를 만들면서 다시 문을 열었지예. 사실, 이 찻집은 새롬복지센터를 운영하기 위한 부대사업입니다. 찻집 수익금 중 운영비 일부를 뺀 모든 금액이 새롬복지센터로 들어가니깐예."


찻집 주인 한양숙씨는 한국정신지체인애호협회 경남협회장이기도 하다. 한씨는 이 찻집을 운영하면서 장애인과 일반인을 위한 각종 사회교육프로그램까지 운영한다. 차와 예절을 비롯한 정신지체장애인 및 발달장애인특별반, 야생화 연구반, 천연염색 연구반, 사회와 자연을 연구하는 반, 인간관계 연구반 등이 그것(수시 접수).

한씨는 "절기에 맞추어 장애인들과 일반인들이 어우러져 떡국, 화전 등 각종 음식을 만들고, 절기에 맞는 놀이행사를 벌인다"고 귀띔한다. 그리고 올 시월 상달에는 관계기관과 기업체의 후원을 얻어 장애인과 창원 시민이 한데 어우러지는 달맞이 행사를 제법 크게 벌일 계획이다.

하지만 모든 일이 그리 쉽지 만은 않은 모양이다. 당장 나가는 찻집의 월세도 만만치 않다. 하루종일 찻집에 틀어박혀 열심히 차를 끓여내지만 실제 수익금의 대부분은 월세로 다 빠져나간다. 그 때문에 한씨는 이 찻집을 전세계약해 줄 뜻있는 후원자를 애타게 찾고 있다. 전세계약만 되면 월세로 나가는 140만 원을 장애인 교육프로그램에 다 쏟아부을 수 있기 때문이다.

a 차는 마실 때마다 맛이 다르다. 사람의 마음이 늘 변덕을 부리듯이

차는 마실 때마다 맛이 다르다. 사람의 마음이 늘 변덕을 부리듯이 ⓒ 이종찬


a 죽림원에서 차를 마시며 마음 속에 대나무숲이 있는 언덕을 심고 있는 사람들

죽림원에서 차를 마시며 마음 속에 대나무숲이 있는 언덕을 심고 있는 사람들 ⓒ 이종찬

장애우들과 사람들의 지친 마음에 대나무숲이 있는 언덕을 심어주는 향기 나는 찻집 죽림원. 이 찻집에서는 손님에게 지리산에서 나는 여러 가지 차를 우려내 팔기도 하지만 손님들이 집에 가서도 늘상 차를 즐길 수 있도록 찻잎(지리산 야생차, 꽃차)과 다기, 발효음료, 계절에 따른 건강식품 등을 직접 팔기도 한다.

"다산 선생께서 '술을 마시는 민족은 망하고 차를 마시는 민족은 흥한다'라고 하신 말씀 아시지예. 하긴 다산 선생께서도 유배시절 차를 즐겨 마셨을 때는 좋은 글을 많이 쓰셨지만 말년에 형 정약전이 죽고 나자 술을 입에 대기 시작하면서 결국 불우한 일생을 마감하고 말았지예. 그러니까 기자님도 이제부터 술 생각 날 때마다 차를 마시라니깐예."

덧붙이는 글 | ☞가는 길/서울-대진고속도로-마산-동마산 나들목-창원-경남도청-경남신문-용지공원 맞은 편-죽림원(055-274-1817)

덧붙이는 글 ☞가는 길/서울-대진고속도로-마산-동마산 나들목-창원-경남도청-경남신문-용지공원 맞은 편-죽림원(055-274-1817)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AD

AD

AD

인기기사

  1. 1 최근 알게 된 '평생직장', 정년도 은퇴도 없답니다 최근 알게 된 '평생직장', 정년도 은퇴도 없답니다
  2. 2 경남, 박근혜 탄핵 이후 최대 집회 "윤석열 퇴진" 경남, 박근혜 탄핵 이후 최대 집회 "윤석열 퇴진"
  3. 3 "은퇴 하면 뭐 하고 살거냐?" 그만 좀 물어봐요 "은퇴 하면 뭐 하고 살거냐?" 그만 좀 물어봐요
  4. 4 임종 앞둔 아버지, '앙금'만 쌓인 세 딸들의 속내 임종 앞둔 아버지, '앙금'만 쌓인 세 딸들의 속내
  5. 5 "V1, V2 윤건희 정권 퇴진하라" 숭례문~용산 행진 "V1, V2 윤건희 정권 퇴진하라" 숭례문~용산 행진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