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따리의 한국인 이장, 문씨 아저씨

[중국 운남 여행기9]

등록 2005.09.01 20:38수정 2005.09.02 16: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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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 안개 자욱한 따리 고성에서 내려다본 성안 풍경

안개 자욱한 따리 고성에서 내려다본 성안 풍경 ⓒ 최성수

쿤밍 역에서 밤 11시 25분에 출발한 기차는 불빛 하나 없는 어둠 속을 덜컹거리며 달린다. 삼층으로 된 침대칸의 맨 아래에 누워, 어둠 속으로 스쳐가는 이국의 밤 풍경을 나는 멍하니 바라본다. 그 어둠 속에 때때로 또 다른 나의 얼굴이 스쳐 지나간다.

어쩌면 우리의 삶이란 이렇게 깊이 모를 어둠 속으로 스쳐 지나가고 있는 것일 뿐인지도 모른다. 마음이 한없이 가라앉는 것 같다. 여행자는 삶을 사는 사람이 아니다. 자신이 살아온 세계와는 또 다른 삶, 다른 풍경을 훔쳐보는 존재일 뿐이다. 그래서 여행자가 만나는 모든 것들은 덧없게 느껴지는지도 모른다.


나는 그런 상념에 젖어 불 꺼진 기차 침대에 누워 있다. 두 번째 운남 여행, 그리고 지난번의 길을 되짚어 다시 따리로 가는 길이다. 남조국과 따리국의 수도였던 따리는 백족(白族)의 마을이다. 눈앞으로 희디 흰 백족의 집과 고풍스럽게 이어지던 따리 고성의 서로 잇닿은 처마들, 흐릿한 불빛 속에 먹었던 한 끼의 식사…. 그런 지난 여행의 기억이 되살아난다.

a 백족 전통 물건을 파는 가게의 백족 아주머니, 옷 색깔이 화려하고 곱다.

백족 전통 물건을 파는 가게의 백족 아주머니, 옷 색깔이 화려하고 곱다. ⓒ 최성수

그러다 깜빡 잠이 들었나보다. 잠 속에서 무언가가 나를 마구 흔드는 느낌이 들어 퍼뜩 눈을 뜨니 어느 새 차창 밖이 훤하다. 날이 밝은 것이다. 머리를 몇 번 휘둘러 정신을 차려 보지만, 여전히 머릿속이 멍하다. 그냥 누워 창 밖으로 스치는 풍경을 바라본다.

기차는 밋밋한 산을 계속 타고 오른다. 나무도 없는 산, 산들이 첩첩 이어져 있다. 높은 산인 것은 분명한데, 오르는 길은 밋밋하다. 하긴 큰 산은 가파르지 않다. 백두산도 계속 평지를 오르는 것 같으면서, 훌쩍 해발 2천 미터를 넘어선다. 무등산은 제 옷자락을 더할 나위 없이 넉넉하고 부드럽게 벌려 호남을 감싸 안으면서도 호남에서 가장 높다. 이 산들도 그런가보다.

그리고 그 산의 어느 굽이를 넘으면, 따리다. 배낭 여행자들의 영원한 휴식처인 따리, 비 오는 몇 해 전 겨울, 따리의 이층 카페에서 마시던 맥주의 쌉싸름하며 상큼한 맛이 새삼 기억난다. 부겐베리아 핀 넘버 쓰리와 남조 풍정도의 그 나른하고 잔잔한 풍경도 되살아난다. 쿤밍에서 따리까지의 밤 기차는 그런 기억을 되살리는 가장 좋은 공간이다. 적당한 거리에, 적당한 흔들림, 자주 나타나는 터널마다 덜컹덜컹 울리는 기차 바퀴 소리, 그런 것들로 정겨운 길이다.

a 따리의 한국인 이장 문씨 아저씨. 그의 가게 넘버 쓰리는 배낭 여행자들의 집이다. 이곳에서 비자 연장도 받을 수 있다.

따리의 한국인 이장 문씨 아저씨. 그의 가게 넘버 쓰리는 배낭 여행자들의 집이다. 이곳에서 비자 연장도 받을 수 있다. ⓒ 최성수

머지않아 쿤밍에서 따리까지 고속도로가 완성된다고 한다. 이미 상행은 완성이 되었고, 내년쯤이면 전 노선이 개통될 것이라고, 그러면 네 시간 정도면 갈 수 있는 거리가 된다고 한다. 돈으로 거리와 시간을 사는 날이 머지 않았다는 말이다. 그러면 이제 아무도 쿤밍에서 따리까지 이 기차를 타지 않을 지도 모른다. 몇 시간이면 갈 거리를 밤 새워 기차를 타고 갈 사람들이라곤 그저 하룻밤 잠자리 비용이 아쉬운 배낭여행자들 뿐일지도 모른다.


그런 생각을 하며 나는 노래 하나를 흥얼거린다.

바람이 불어오는 곳 그곳으로 가네.
그대의 머릿결 같은 나무 아래로
덜컹이는 기차에 기대어 너에게 편지를 쓴다.
꿈에 보았던 길 그 길에 서 있네.

설레임과 두려움으로 불안한 행복이지만
우리가 느끼며 바라볼 하늘과 사람들
힘겨운 날들도 있지만 새로운 꿈들을 위해
햇살이 웃고 있는 곳 그곳으로 가네.


나뭇잎이 손짓하는 곳 그곳으로 가네.
휘파람 불며 걷다가 너를 생각해.
너의 목소리가 그리워도 뒤돌아 볼 수는 없지.
바람이 불어오는 곳 그곳으로 가네.


김광석의 <바람이 불어오는 곳>이다. 이 노래처럼 나는 덜컹이는 기차에 기대 있지만, 편지 쓸 너는 없다. 아니, 너무 많다. 세상의 모든 이에게, 또 다른 나에게 나는 마음의 편지를 쓰고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 따리에서 나는 너의 목소리를 그리워하게 될 지도 모른다. 그래서 휘파람을 불며, 처마 뾰족한 대리 고성의 길을 걷다가 갑자기 뒤돌아보게 될지도 모른다. 그때 너는 거기 서 있으리라. 내가 서울이라는 일상의 도시, 그 숨 막히는 잡답의 거리에 두고 왔던 또 다른 나인 너. 나의 따리 여행은 어쩌면 내가 두고 온 또 다른 나에 대한 그리움일지도 모르니까.

a 따리 역이 있는 샤관의 8번 버스. 이 버스를 타면 고성으로 갈 수 있다.

따리 역이 있는 샤관의 8번 버스. 이 버스를 타면 고성으로 갈 수 있다. ⓒ 강마을

이런저런 상념을 휙 지나치기라도 하듯, 기차는 따리역에 도착한다. 비가 제법 굵다. 두 번째 따리행이지만, 첫 여행처럼 또 비를 만난다. 그때는 겨울비였고, 지금은 여름비다.

역을 빠져나와 조금 내려가니 버스 정류장이다. 색 고운 8번 버스를 타고 따리 고성으로 향한다. 버스비는 1원. 그래도 운전석 위쪽에 설 정류장 안내가 문자로 표시되는 최첨단 버스다. 버스는 빗길을 뚫고 고성 근처에 닿는다. 빗줄기가 마치 한 공간과 다른 공간의 경계인 것처럼, 고성 안은 다른 세상이다. 드디어 따리에 온 것이다.

먼저 넘버 쓰리에 들린다. 넘버 쓰리는 한국인 사장 문영배씨가 운영하는 게스트 하우스다. 나는 지난 번 여행 때 이곳에서 이틀을 묵으며 얼하이의 섬 남조풍정도 여행을 하기도 했다. 문 사장의 별명이 따리 문씨다. 그리고 대부분의 배낭 여행자들은 그를 따리 이장이라고 부른다. 턱수염이 무성한 그의 선한 웃음이 보고 싶은데, 그는 남조풍정도에 가서 오후에나 돌아온단다.

짐을 풀고, 비 오는 따리 시내로 나선다. 수로를 따라 졸졸 물이 흘러내리고, 빗속에서도 사람들은 고성 이곳저곳을 구경 하느라 정신이 없다. 운남이 우기라는 것을 보여줄 심산인지, 빗줄기가 점점 굵어진다. 우산을 받쳐 들고 골목골목을 돌아다니며 따리의 뒷모습을 구경하는 재미가 제법 쏠쏠하다.

a 비가 오자 가게 아주머니가 꽃병을 가게 밖에 내놓았다. 비에 젖은 꽃이 더 촉촉해 따리의 여행자 마음을 아련하게 한다.

비가 오자 가게 아주머니가 꽃병을 가게 밖에 내놓았다. 비에 젖은 꽃이 더 촉촉해 따리의 여행자 마음을 아련하게 한다. ⓒ 최성수

어느 가게를 지나는데, 백족 옷을 곱게 입은 아주머니가 꽃병에 꽃을 꽃아 가게 앞에 내놓는다. 그 아주머니의 표정이 환하게 밝다. 내 놓은 꽃도 아름답지만, 아주머니의 모습이 더 아름답다. 고성 위로 올라가 따리 시내의 숱한 전통 가옥들 지붕을 내려다보다 따리 박물관에 들러보기도 하고, 마차를 빌려 얼하이 포구에까지 가보기도 한다.

비에 젖은 얼하이는 온통 물 안개다. 자욱하게 넓디넓은 호수를 감싸고 있는 안개를 보니 마음 역시 나직하게 가라앉는다. 다시 넘버 쓰리로 돌아오니, 문씨 아저씨가 돌아와 있다. 나를 보더니 반가우면서도 머쓱한 표정으로 씨익 웃는다. 반가움을 겉으로 표현하지 않고 부끄러움으로 감출 줄 아는 그의 성격이 그대로 드러난다.

지난 번, 여행 뒤 <오마이뉴스>에 쓴 나의 남조풍정도 기사를 컬러로 뽑아 묶어 놓은 것도 보여준다. 얼마나 많이 들춰 봤는지, 종이가 바래 있다. 좋은 기사 고맙다고 하는 그의 얼굴에 반가움이 가득하다.

4시 반에 남조풍정도로 떠나기로 하고, 그동안 따리 성당 구경을 간다. 큰 길을 따라 가다 좁은 골목으로 들어서고, 물어물어 또 그 골목에서 꺾어 들어가니, 고풍스러운 따리 성당이 나타난다. 문이 닫혀있어 쭈뼛쭈뼛 들어서니 관리인인 듯 한 사람이 나와 무어라고 한다.

내부에서는 사진을 찍으면 안 된다는 말이다. 백족 전통 가옥 양식으로 지은 따리 성당은 건물 모양도 아름답지만, 성상에 달려있는 글씨가 특히 눈에 띈다. 사회주의 국가 중국에서, 아직 가톨릭 성당이 버젓이 존재하고, 정기적으로 미사도 보고 있다니, 신기하기까지 하다.

a 따리 성당의 한 건물. 마리아라고 쓴 한자 글씨가 보기 좋다.

따리 성당의 한 건물. 마리아라고 쓴 한자 글씨가 보기 좋다. ⓒ 최성수

양인가(洋人街)를 천천히 걸어 넘버 쓰리로 돌아온다. 빗줄기는 많이 가늘어졌다. 저녁이면 포장마차로 들어차던 거리에 빗줄기가 내려, 오래 된 바닥돌이 반질반질하다. 세월을 하나하나 되짚으며 걷듯, 따리의 세월을 고스란히 담고 있을 바닥돌을 디디며 돌아오니, 남조풍정도로 출발할 차가 도착해 있다.

예전에 갔던 길 그대로, 얼하이 호수를 오른쪽 옆구리에 매달고 한참을 달린다. 지난 번 여행, 유채꽃이 군데군데 피어있는 얼하이 부근에는 여름이 한창이다. 강미(江尾)를 지나고, 포구에서 배로 갈아타고, 남조풍정도에 짐을 내린다. 백족의 신화와 풍경이 여전히 남아 있는 남조풍정도는 여전히 아름답다. 겨울보다 물결이 덜 파랗지만, 그러나 하늘과 호수가 잇닿은 그 넉넉하고 아득한 풍경은 그대로다.

사일(四壹) 부인이 용의 감응으로 잉태하고, 구남 구녀를 낳았으며, 그 중 막내가 용감무쌍하여 백족의 시조가 되었다는 백족의 창세 신화가 적혀있는 남조풍정도 포구의 모습도 변함이 없다. 그 신화는 하늘(天)과 인간(人)의 관계를 통해 부족의 신성성을 드러내는 전형적 이야기다. 그리고 다산(多産)으로 민족의 힘을 키우려는 의미가 담겨 있는 백족의 탄생 신화는, 이제 소수민족으로 중국이라는 거대한 나라에 편입된 그들의 현실 때문에 더 애잔하고 슬프다.

새우 된장국에, 삼겹살, 온갖 음식들을 차려놓은 남조풍정도의 저녁 식사는 진수성찬이면서 마음 그득한 기쁨이다. 문씨 아저씨는 그렇게 차려놓고도 차린 것이 별로 없다고 미안해 한다. 술잔이 돌고, 수묵화처럼 어둠 속으로 번지는 풍경을 바라보며, 남조풍정도의 밤이 깊어간다. 모닥불을 피우고 이런 저런 이야기를 나누며, 사람들은 모두 술이 아니라, 이국의 낯선 풍경과 찰싹이는 얼하이의 물살에 젖어, 취해간다.

불가에 앉아 있던 문씨 아저씨의 표정이 쓸쓸해진다. 노래 몇 자락이 돌고 난 뒤다. 부르는 노래가 지난 70년대의 시간들을 담고 있는 것들이어서 일까? 모두들 흥 끝에 조금은 가라앉고 아득한 기분이 드나보다. 문씨 아저씨가 갑자기 나직하게 <봄날은 간다>를 부르기 시작한다. 모두들 그 노래를 따라 부른다.

연분홍 치마가 봄바람에 나부끼더라.
오늘도 옷고름 씹어가며
산제비 넘나드는 성황당길에
꽃이 피면 같이 웃고, 꽃이 지면 같이 울던
알뜰한 그 맹세에 봄날은 간다.


노래 끝에 목이 메인다. 한때 나도 <봄날은 간다>처럼 햇살 나른하게 비추는 언덕에서 아무 것에도 매이지 않고 살고 싶었다. 그런데 따리 이장 문씨 아저씨가 나와 같은 마음을 털어놓는다.

a "8년 전에는 일년에 한국 여행자 겨우 두어명이 다녀갈 뿐이었지요." 지금 그는 따리 여행자들의 친구이고, 온갖 뒤치다꺼리를 해주는 딸이 이장이다.

"8년 전에는 일년에 한국 여행자 겨우 두어명이 다녀갈 뿐이었지요." 지금 그는 따리 여행자들의 친구이고, 온갖 뒤치다꺼리를 해주는 딸이 이장이다. ⓒ 최성수

“나 죽기 전에 꼭 한 편의 글을 쓰고 싶어요. <봄날은 간다>처럼 낮고 쓸쓸한 분위기를 배경으로 담은 이야기를 한 편 써보고 싶어요. 아무도 읽지 않아도 좋아요. 그 글을 우리 아이들에게 읽어보게 하고 싶은 게 내 꿈이에요. 아버지가 살았던 삶의 온갖 굴곡과 어쩔 수 없었던 시절의 안타까운 마음 같은 것들을, 그저 나이 든 아버지의 삶과 느낌은 이렇다는 듯이, <봄날은 간다>의 그 분위기로 써서 우리 아이들에게 보여주고 싶어요.”

그의 말을 들으며 나는 한없이 가라앉는다. 오랜 세월을 이국의 땅에서 떠돌았을 그의 말 못할 곡절어린 삶이 짐작되어서다. 오십을 훌쩍 넘어버린 나이의 한 사내, 이제 세상의 신산을 다 겪고, 따리에서 삶의 뿌리를 내린 그의 심사가 눈에 보이는 듯하다. 한없이 낮고 가라앉고 쓸쓸한 그의 삶은 얼마나 아득한 것일까?

사철 꽃이 피고, 또 지는 곳, 겨울에도 부겐베리아가 곱게 피어 늘 옷고름 씹어가며 성황당길에 서 있어야 할 곳 같은 따리, 그 따리에서 따리의 한국인 이장 문씨 아저씨의 노래와 이야기를 듣는 것은 슬프고 아름다운 일이다. 그가 따리에 자리를 잡은 것이 벌써 8년째, 처음에는 일년에 겨우 두어 명의 한국 사람만 이곳에 들렀단다. 그것도 일본 여행객에 묻혀.

“그래도 그때가 좋았어요.”

일하고 싶으면 일하고, 여행하고 싶으면 여행하고, 한국 고추씨를 얻어다 심어 고춧가루를 만들어 김치를 담그고, 그러면서 일 년에 두어 달은 그것들을 버리고 훌쩍 여행을 떠나곤 했다는 털보 이장 문씨 아저씨. 지금은 많은 한국 사람이 찾아와 즐겁기도 하지만, 일이 많아지니 여행도 훌쩍 못한다며 웃은 그의 얼굴이 모닥불빛에 빛난다.

“시안 병마용 앞에 가서 포장마차를 해 보는 것이 내 소원이요.”

언뜻 보면 엉뚱하기까지 한 그의 소원이 절실해 보이는 것은, 그의 삶이 지금까지 새로운 것, 편안한 것 보다는 하고 싶은 것 쪽에 가까웠다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a 남조풍정도에서 본 얼하이의 아침. 민물새우 그물을 올리는 부부의 모습이 정겹다.

남조풍정도에서 본 얼하이의 아침. 민물새우 그물을 올리는 부부의 모습이 정겹다. ⓒ 최성수

밤 늦도록 노래를 부르다 돌아와 잠든 귓전에 얼하이 물결 소리는 문씨 아저씨의 이야기처럼 밤새 속살거린다. 새벽에 일어나 얼하이를 바라보며 호숫가에 앉아 있는데, 지난 여행의 풍경 그대로 민물 새우잡이 배들이 호수 위를 서성인다. 새우를 잡는 그 배가 서성이는 것처럼 보이는 것은 그물을 올리는 부부의 모습이 아련해 보이기 때문이다. 이제 떠나야 할 시간이다. 여행이란 늘 사람들과 만나고 떠나는 일의 반복이다. 따리를 떠나 갈 곳은 리지앙. 리지앙으로 가면 언제 다시 따리를 찾아올 수 있을까?

평생을 살며 늘 꿈만 꾸다 한 번도 가보지 못하는 곳도 있고, 전혀 생각지도 않았는데 몇 번씩이나 가보게 되는 곳도 있다. 나는 따리를 두 번 찾았다. 그러니 따리와 두 번 이별을 하는 셈이다. 따리의 가장 편안한 풍경 중 하나인 남조풍정도와도, 언제 찾아가도 이웃 같은 문씨 아저씨의 넘버 쓰리도 어쩌면 다시는 찾아오지 못할지 모른다.

아니다. 마음이 움직이면 몇 번이라도 더 갈 수 있고, 가고 싶은 곳 중의 하나가 따리다. 따리의 고성에서 빗소리를 들으며 밤새도록 술잔을 기울이고도 싶고, 창산에 말 타고 올라 내가 한국어를 가르쳐준 조홍방씨도 다시 만나보고 싶다.

남조풍정도의 포구에서 문씨 아저씨와 작별을 한다. 포옹을 하고, 마치 다시는 만나지 못할 것 같은 아쉬움으로 우리는 헤어졌다. 그러나 그의 삶의 곡절과 쓸쓸함은 <봄날은 간다>는 노래 곡조로 내게 영원히 남을 것이다. 희주를 들러, 백족의 옛 집들을 살펴본다. 그 집 어느 곳에 지붕이 비치는 우물이 있다. 이끼가 잔뜩 낀 우물을 들여다보면, 나는 새삼 시간이라는 놈에 대해 생각한다.

a 희주, 이끼 낀 우물. 저 우물 속으로 또 다른 나의 모습이 있다. 그리고 아득한 세월이 잠겨 있다.

희주, 이끼 낀 우물. 저 우물 속으로 또 다른 나의 모습이 있다. 그리고 아득한 세월이 잠겨 있다. ⓒ 최성수

늘 비 오는 때 찾게 되는 따리, 시간 속을 거슬러 찾아온 것 같은 따리, 그 중에서도 전통 백족 옛 마을인 희주에서 나는 늘 시간 여행자가 되는 것 같다. 오랜 세월 시간의 더께를 온통 휘감고 있는 옛 집들의 모습. 기둥에도 벽에도, 지붕의 기왓장에도 시간은 칭칭 매달려 내게 속삭인다. 어디 먼 속을 헤매고 다니다 이제야 찾아왔냐고, 네가 걷던 그 길이 바로 이 시간 여행을 위해 존재한 것이라고. 희주 옛 집의 그 이끼 낀 우물은 시간을 거꾸로 되살려 주는 것 같다.

오래 전 나는 실크로드의 옛 마을 트루판의 교하고성에서 깊이 아득한 우물을 본 적이 있다. 한 200미터 가까이 파 만들었다는 고창국의 그 우물은 그대로 역사였다. 그래서 트루판의 우물은 역사로 나를 이끌고 들어가는 문이다.

반면 희주 백족 옛 집의 우물은 기억이다. 어린 시절, 시골집 입구, 뽕나무 서있는 옆에 있던 정(井)자 우물을 떠올리게 하기 때문이다. 역사는 감정이 아니라 객관이고, 기억은 주관이며 느낌이다. 희주의 옛 우물에는 윤동주의 시에서처럼 미워져 돌아가다, 다시 그리워져 돌아가 보는 내 얼굴이 있다. 그래서 희주, 백족 마을 따리는 늘 내 마음에서 지워지지 않는 지도 모른다.

따리를 떠나 리지앙으로 가는 산굽이 길에서 나는 고개를 길게 빼고 따리를 바라본다. 따리는 쓸쓸하고 허전한 표정으로 거기 서 있다. 그 따리의 또 다른 표정인 문씨 아저씨의 얼굴도 거기 겹쳐진다. 나는 나직하게 속삭여본다.

아, 따리! 안개 짙고, 바람 불어 늘 그리운 그곳 따리여, 안녕.

a 내가 두 번 묵은 남조풍정도의 고풍어린 숙소. 밤새도록 얼하이의 찰싹이는 물결 소리가 귀에 선하다.

내가 두 번 묵은 남조풍정도의 고풍어린 숙소. 밤새도록 얼하이의 찰싹이는 물결 소리가 귀에 선하다. ⓒ 최성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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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집 <장다리꽃같은 우리 아이들>, <작은 바람 하나로 시작된 우리 랑은>, <천년 전 같은 하루>, <꽃,꽃잎>, <물골, 그 집>, <람풍>등의 시집과 <비에 젖은 종이 비행기>, <꽃비> , <무지개 너머 1,230마일> 등의 소설, 여행기 <구름의 성, 운남>, <일생에 한 번은 몽골을 만나라> 등의 책을 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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