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영하와 함께 하는 엿보기의 절대 미학

[이주의 오마이북] 9월 첫째 주, 이 책을 주목하자!... 소설가 김영하의 미니홈피 엿보기

등록 2005.09.02 08:45수정 2005.09.04 10: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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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세이] 랄랄라 하우스– 김영하

<랄랄라 하우스>
<랄랄라 하우스>마음산책
미니홈피와 블로그의 인기는 새삼 어제 오늘만의 일이 아니다. 점차 개인화 성향을 띠고 있는 현대인의 생활에 맞물려 나만의 사적인 공간을 마련함과 동시에 타인과의 정보 공유가 가능한 이른바 '쌍방향성'이라는 완벽한 인터넷 환경을 구현하고 있는 데다가 손쉬운 인터페이스와 디지털 카메라의 보급 등 과히 21세기 초고속 인터넷 정보화 시대가 제공하는 축복의 선물에 다름 없다.


그러나 블로그나 미니 홈피의 폐단 또한 만만치 않다. 정보 공유와 커뮤니티 활동을 통한 인간 관계 형성이라는 긍정적인 역할도 하지만, '은둔형 외톨이'라는 이른바 '방콕족'이 양산되었을 뿐 아니라 엿보기와 과시하기로 인한 사생활 침해라는 심각한 부작용을 낳고 있다.

얼마 전 자신의 미니홈피 홍보를 위해 산부인과 간호조무사가 갓난아기 학대 사진을 올린 것을 비롯하여 유명 연예인들이 자신의 미니 홈피에 올린 사적인 대화나 사진들이 유출되어 큰 낭패를 겪은 것은 안타깝지만 그 좋은 예라 할 수 있겠다.

엿보기의 미학을 절대적으로 좇는, 딴에는 보여주고 과시하기에 핏발을 세우는 우리들의 모습이 어느 여고 앞의 바바리맨과 다름 없다고 하면 지나친 비약일까? 아니다. 최소한 나만큼은 그러한 자료들을 보고 좋아라 하던 그때의 모습들을 떠올리며 깊은 죄의식을 느끼고 있는 지금이다.

물론, 비단 미니홈피와 블로그에 국한되는 문제는 아니다. 90년대 초반 유행했던 모 방송의 <몰래카메라>에서부터 미국에서 한창 주가를 올리고 있는 <리얼리티 쇼>와 같은 TV 드라마나 <트루먼 쇼>와 같은 영화를 보다 보면 전 세계적으로 엿보기와 보여주기의 절대 미학이 절정에 달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모든 이들을 관음증 환자로 몰아가고 있는 현대 대중 매체의 대표적인 병폐라고 하기에는 11세기 영국으로 거슬러 올라가는 피핑 톰(peeping Tom)의 어원이 그저 놀라울 따름이다.


자, 그럼에도 불구하고 시종 엿보기의 '미학'이란 표현을 쓴 까닭은 바로 지금 소개할 이 책을 통해 만끽할 수 있는 엿보기가 가진 또 다른 면인 바로 순수하고도 짜릿한 매력 때문.

올해로 등단 10년째, 그리고 10번째 작품집 <랄랄라 하우스>를 선보이는 김영하씨가 여전히 신세대 작가로 불리고 있는 것은 당장 이 책만 보더라도 전혀 아이러니하지 않다.


작가가 직접 운영하고 있는 미니 홈피의 양식을 따와 < Free Talk > <사진첩> <방명록> 등 총 3부로 구성되어 있는 이 책은 김영하씨가 일상 속에서 겪거나 느꼈었던, 소소하지만 누구나 한 번쯤은 생각해 봤음직한 이야기들을 그만의 독특한 언어유희를 통해 한없이 맛깔스런 이야기로 맘껏 풀어내고 있다.

< Free Talk >는 두 고양이 <방울이와 깐돌이>의 이야기는 물론이거니와 비슷한 세대라는 것을 공감할 수밖에 없는 현실이 안타깝긴 하지만 어린 시절 최고의 로망이었던 <소년중앙>, 나 역시 궁금했던 <얼음과 석유> 집 이야기, <야성은 살아있다!>와 <심폐소생술>의 예비군 민방위 이야기를 비롯해서 <말풍선> <방에서 보내는 휴가법> 등 다방면에 걸친 그의 놀라운 식견과 번뜩이는 재치는 '역시 김영하'라는 생각에 앞서 언제 이처럼 유쾌하게 읽어본 책이 있었나 싶었을 정도로 '랄랄라' 하기에도 바쁘다.

<사진첩>을 통한 김영하씨의 추억 엿보기도 너무나 매력적이고, <방명록>이란 제명에서 알 수 있듯이 독자들과의 댓글 달기 또한 한마디로 '촌철살인'이란 말을 절로 실감할 수 있는, 짧지만 엉뚱하면서도 깊이가 있다.

<책 머리에>가 아닌 <집주인의 말>을 통해 김영하씨는 말한다.

"영영 생각나지 않는 가사처럼, 아니 가사가 생각나지 않아도 충분히 즐거운 음악처럼, 삶의 어떤 부분들은 그냥 '랄랄라'들로 처리되어도 되지 않겠는가, 하는 생각을 하던 참이었다. 좀 더 쉽게 말하자면 이 책에 실린 글과 사진, 이상한 그림들은 김영하 라는 인간의 '랄랄라'라는 말씀. (중략) 랄랄라들이 모여 있는 내 '랄랄라 하우스'에 여러분을 초대하게 되어 얼마나 기쁜지 모르겠다. 이 책(같기도 하고 아닌 것 같기도 한 책)은 친구 집에 놀러 가서 친구가 올 때까지 남의 방에서 뒹굴면서 이리 뒤적 저리 뒤적 하기 좋아하는 분들을 위해 만들어졌다. 졸업앨범도 들춰보고, 재밌는 책이 있으면 한 권 슬쩍 하기도 하고, 일기장도 훔쳐보는 그런 재미, 이 책에서 얻으셨으면 좋겠다"라고….

하지만 이걸 어쩌랴, 그 이상이다. (마음산책 / 9900원)

[인문] 악마의 사도 – 리처드 도킨스

<악마의 사도>
<악마의 사도>바다출판사
<이기적 유전자>로 유명한 리처드 도킨스의 신작 에세이 <악마의 사도>가 출간되었다.

도킨스는 그만이 가진 뛰어난 위트와 명쾌한 설명, 그리고 독창적인 비유를 통해 생명체의 복잡한 현상을 말끔하게 풀어줌으로써 난해한 학문으로만 여겨졌던 진화생물학은 물론이거니와 과학의 대중화에도 혁혁한 공을 세우고 있는 입지적인 인물.

이 책은 지난 25년간 리처드 도킨스가 썼던 기고문과 연설문, 회고록과 논설문, 서평과 서문, 헌사 가운데서 정수만을 가려 뽑아 엮은 책으로 그가 발표해 왔던 기존의 책들과는 다른 인간 도킨스를 이해하는 데 큰 도움을 주고 있는 일종의 자서전 성격을 띠고 있다.

따라서 그 동안 출간된 책만으로는 리처드 도킨스가 주장하는 바를 이해하기가 수월하지 않았던 독자들에게 이 책에서 그가 말하는 과학, 진리, 윤리 같은 커다란 테두리, 한마디로 '과학적 사고로 세상을 보라'라는 메시지를 통해 우리 '인간'들의 모습을 이해함으로써 도킨스라는 진화생물학자의 진실한 주장을 발견할 수 있는 좋은 기회가 될 수 있을 것이다.

DNA 구조 발견으로 노벨상을 수상했던 프랜시스 크릭의 "영혼을 구원받고 싶다면 도킨스의 글을 읽어라"는 말을 몸소 실천해 보자. (바다출판사 / 1만 4800원)

[인문] 생각 없이 살기 – 한네스 슈타인

<생각 없이 살기>
<생각 없이 살기>황소자리
'어디 한번 아무 생각 없이 읽어 볼까?'라고 펼쳐 보다가는 그 난해함에 당황하기 십상이다. 세상 돌아가는 이치는 하나도 모르면서 지나치게 똑똑하신 이른바 사상가 분들을 마음껏 비웃고 조롱하는 것은 기본이요, 지성의 무용함을 설명하기 위해 오히려 더 폭넓고 심오한 지성을 들춰내며 차라리 생각을 끊으라고 역설하기 때문이다.

그리스 철학과 이슬람 문화를 비롯하여 중세 근대 현대를 아우르는 철학, 문화, 종교 심지어 문학, 연극, 영화에 이르기까지 시대와 공간을 막론하고 지성이란 이름으로 꽃피울 수 있는 그 '무엇'이든 간에 자유롭게 넘나드는 작가의 눈을 따라가다 보면 어느새 지성은 한낱 다이너마이트 존재와 같다는 사실을 알려준다.

즉, 저자는 소위 지식인들의 위대한 사상들을 통해 점철되었다고 할 수 있는 나치즘의 유대인 학살, 맹목적인 자본주의 신봉으로 인한 빈부의 격차와 투기자본의 성행, 전세계에서 발생하고 있는 대부분의 분쟁을 야기하고 있는 종교 갈등 등을 예로 들면서 우리 모두가 생각을 끊어 버림으로써 다이너마이트의 뇌관 자체를 없애 버리자는 과격한 8가지 제안을 한다.

담배를 끊듯 생각도 끊어 보기에는 말도 많고 생각도 많은 너무나 지적인 아이러니가 아닐까? (황소자리 / 1만 3천원)

[사회과학] 이건희 시대 – 강준만

<이건희 시대>
<이건희 시대>인물과사상사
"또 이건희고 또 삼성이냐?" 하실 분들 많으시리라 믿는다. "강준만씨 또 책 냈네?" 하실 분 또한 부지기수리라. 하지만 '강준만이 쓴 이건희 이야기'라고 한다면 어떨까?

<인물과 사상>을 통해 한국 비평문화의 새 장을 열었다고 평가 받고 있는 강준만씨가 '우리는 정말 이건희를 알고 있는가?'라는 화두를 던지는 이 책은 전혀 새삼스럽지 않다.

한국 사회는 양극단의 입장만 존재하는 체제, 이른바 '모 아니면 도'식의 일방적인 지지와 반대만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중간자적 입장은 매우 희귀할 뿐만 아니라 회색분자 운운하는 박쥐 신세에 다름 없다. 이는 조선시대의 사화와 붕당정치 이래 극단적인 이념 대결을 통해 형성되어 온 안타까운 우리 역사의 배경에 기인한다.

강준만은 이러한 배경 아래 그간 제대로 된 이건희에 대한 평가는 없었으며 그와 삼성이 우리 사회에 미친 지대한 영향력을 생각할 때 경제 경영학적 분석뿐 아니라 사회 심리학적으로도 충분한 분석의 대상이 될 수 있다는 가치를 인정하면서 이건희가 즐겨 쓰는 표현인 소위 '입체적 사고'에 의한 이건희와 삼성의 이해를 도모하고 있다.

이건희의 꿈과 비전을 이해하고 그것을 통해 한국사회 전체와 소통할 수 있는 자리를 마련해주고 있는 강준만씨의 초대에 응해 볼 가치는 충분하다. (인물과사상사 / 1만 2천원)

[사회과학] 우리는 실패에서 희망을 본다 – 오세훈, 이영조 외

<우리는 실패에서 희망을 본다>
<우리는 실패에서 희망을 본다>황금가지
제목과 더불어 부제인 <대한민국 희망 프로젝트>만으로도 충분히 와 닿지 않는가?

변호사 오세훈씨가 이영조, 김호기, 강원택씨 등 정치, 외교, 사회 각 분야의 최고 전문가들과 모여 여러 선진국들이 겪어왔던 실패와 재도약의 사례를 거울 삼아 현재의 우리가 나아가야 할 21세기 대한민국의 희망적인 미래에 대한 방법론을 찾아보자는 취지에서 쓴 책.

소위 '영국병'까지 앓았던 영국, 사회주의 정책의 실패를 뼈저리게 경험한 프랑스, 중국의 문화 대혁명, 라틴아메리카의 민중주의 실패, 그리고 강소국 아일랜드, 네덜란드, 핀란드의 성공 사례 등 국가별 성공과 실패, 그리고 재도약에 대한 생생한 이야기를 담고 있으며 이를 토대로 대한민국이 연구하고 본 받아야 할 방법을 분야별로 일목요연하게 제시하고 있다.

각 분야의 전문가들이 모였다는 점에서 자칫 탁상공론에 빠질 수 있지 않을까 싶은 우려를 말끔히 씻어주는 실제적인 사례와 방법론을 제시했다는 점에서 기존에 출간되었던 여타 도서들과 성격을 달리 한다.

한때 아시아의 4룡으로 군림했으나 이제는 친디아(Chindia)에조차 GDP에서 밀리고 있는 이때, 이 눈 앞의 혼란과 고통을 극복하고 제2의 한강의 기적을 일궈낼 수 있는 계기가 하나의 '희망 프로젝트'로 다가오는 이 책을 통해 마련될 수 있기를 기대해 본다. (황금가지 / 1만 5천원)

[문학] 노래하던 새들도 지금은 사라지고 – 케이트 윌헬름

<노래하던 새들도 지금은 사라지고>
<노래하던 새들도 지금은 사라지고>행복한책읽기
케이트 윌헬름은 우리에게 다소 낯선 작가이긴 하지만 영미권에서는 어슐러 K. 르귄과 더불어 SF 소설계의 여성 파워를 과시했던 명망 있는 작가이다.

H. G. 웰즈에 이어 SF 소설계의 최고봉이라고 칭송 받고 있는 <마이너리티 리포트>, <블레이드 러너>의 필립 K. 딕과도 견줄 수 있다면 무리일까? 최소한 둘은 같은 1928년생으로 1970년대 SF의 황금기를 이끈 작가임에는 틀림없다. 물론 위에 언급했던 르귄도 마찬가지.

이번에 소개된 <노래하던 새들도 지금은 사라지고>는 최근 한국을 비롯하여 전세계에 이슈화되고 있는 인간 복제를 소재로 '인간으로 산다는 것은 어떤 의미인가?'라는 의미심장한 질문을 통해 담아낸 윌헬름의 놀랍고도 탁월한 철학적 통찰력이 한껏 빛을 발한 작품.

인류 멸망과 인간 복제라는 절망적인 디스토피아 속에 피어나는 복제 인간들의 존재 인식과 자아 실현, 그리고 사랑이야기를 통해 휴머니즘과 과학적인 엄밀함을 동시에 보여주는 '인간 복제를 테마로 한 과학소설의 최고봉'이라는 평가가 결코 헛된 것이 아니라는 것을 알 수 있다.

최근 개봉하여 370여만에 이르는 폭발적인 흥행을 기록하고 있는 마이클 베이 감독의 영화 <아일랜드>와 비슷한 맥락을 지녔다고 하기에도 무리가 없다. (행복한책읽기 / 1만 2천원)

[문학] 외출 – 김형경

<외출>
<외출>문학과지성사
<사랑을 선택하는 특별한 기준>의 작가 김형경의 일곱 번째 장편소설로 한류열풍의 주역인 배용준이 출연했다는 것만으로도 국내는 물론 일본에서도 큰 화제를 일으키고 있는 동명 영화 <외출>과 같은 스토리 라인을 가지고 있다는 점에서 상당히 주목할 만하다.

소설을 원작으로 한 작품은 차치하고 이른바 '영상소설'이라 불리는 대부분의 작품들이 영화 개봉 직후 대필작가들을 통해 급조된 소설로 출간되고 있는 데 반해 이 작품은 하나의 시나리오를 통해 영화와 동시에 소개된다는 차원을 떠나 '김형경'이라는 국내의 대표적인 순수문학 작가의 손을 통해 집필되었다는 점이 문학계나 영화계에 있어서 아주 특별한 '외출'임에 틀림 없다.

같은 시나리오를 바탕으로 했지만 영화에서는 보여줄 수 없는 치밀한 내면 묘사와 다양한 에피소드의 재구성을 통해 또 하나의 전혀 새로운 문학 작품으로 탄생했다는 점은 딴에는 소설에서는 느낄 수 없는 섬세한 심리 표현과 뛰어난 영상미학을 통해 구현될 허진호 감독의 연출력과 비견된다는 점에서 단순한 비교 차원을 넘어선다.

소설과 영화라는 장르적 특성이 독자와 관객이라는 판이한 소비자 층을 겨냥하여 어떤 시너지 효과를 창출할 수 있을지, 나아가 새로운 문화 현상으로써 대중적으로 어떤 반응을 얻고 어떻게 자리매김할 수 있을지 사뭇 기대가 남다른 작품. (문학과지성사 / 8000원)

랄랄라 하우스

김영하 지음,
마음산책, 20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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