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랄랄라 하우스>마음산책
미니홈피와 블로그의 인기는 새삼 어제 오늘만의 일이 아니다. 점차 개인화 성향을 띠고 있는 현대인의 생활에 맞물려 나만의 사적인 공간을 마련함과 동시에 타인과의 정보 공유가 가능한 이른바 '쌍방향성'이라는 완벽한 인터넷 환경을 구현하고 있는 데다가 손쉬운 인터페이스와 디지털 카메라의 보급 등 과히 21세기 초고속 인터넷 정보화 시대가 제공하는 축복의 선물에 다름 없다.
그러나 블로그나 미니 홈피의 폐단 또한 만만치 않다. 정보 공유와 커뮤니티 활동을 통한 인간 관계 형성이라는 긍정적인 역할도 하지만, '은둔형 외톨이'라는 이른바 '방콕족'이 양산되었을 뿐 아니라 엿보기와 과시하기로 인한 사생활 침해라는 심각한 부작용을 낳고 있다.
얼마 전 자신의 미니홈피 홍보를 위해 산부인과 간호조무사가 갓난아기 학대 사진을 올린 것을 비롯하여 유명 연예인들이 자신의 미니 홈피에 올린 사적인 대화나 사진들이 유출되어 큰 낭패를 겪은 것은 안타깝지만 그 좋은 예라 할 수 있겠다.
엿보기의 미학을 절대적으로 좇는, 딴에는 보여주고 과시하기에 핏발을 세우는 우리들의 모습이 어느 여고 앞의 바바리맨과 다름 없다고 하면 지나친 비약일까? 아니다. 최소한 나만큼은 그러한 자료들을 보고 좋아라 하던 그때의 모습들을 떠올리며 깊은 죄의식을 느끼고 있는 지금이다.
물론, 비단 미니홈피와 블로그에 국한되는 문제는 아니다. 90년대 초반 유행했던 모 방송의 <몰래카메라>에서부터 미국에서 한창 주가를 올리고 있는 <리얼리티 쇼>와 같은 TV 드라마나 <트루먼 쇼>와 같은 영화를 보다 보면 전 세계적으로 엿보기와 보여주기의 절대 미학이 절정에 달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모든 이들을 관음증 환자로 몰아가고 있는 현대 대중 매체의 대표적인 병폐라고 하기에는 11세기 영국으로 거슬러 올라가는 피핑 톰(peeping Tom)의 어원이 그저 놀라울 따름이다.
자, 그럼에도 불구하고 시종 엿보기의 '미학'이란 표현을 쓴 까닭은 바로 지금 소개할 이 책을 통해 만끽할 수 있는 엿보기가 가진 또 다른 면인 바로 순수하고도 짜릿한 매력 때문.
올해로 등단 10년째, 그리고 10번째 작품집 <랄랄라 하우스>를 선보이는 김영하씨가 여전히 신세대 작가로 불리고 있는 것은 당장 이 책만 보더라도 전혀 아이러니하지 않다.
작가가 직접 운영하고 있는 미니 홈피의 양식을 따와 < Free Talk > <사진첩> <방명록> 등 총 3부로 구성되어 있는 이 책은 김영하씨가 일상 속에서 겪거나 느꼈었던, 소소하지만 누구나 한 번쯤은 생각해 봤음직한 이야기들을 그만의 독특한 언어유희를 통해 한없이 맛깔스런 이야기로 맘껏 풀어내고 있다.
< Free Talk >는 두 고양이 <방울이와 깐돌이>의 이야기는 물론이거니와 비슷한 세대라는 것을 공감할 수밖에 없는 현실이 안타깝긴 하지만 어린 시절 최고의 로망이었던 <소년중앙>, 나 역시 궁금했던 <얼음과 석유> 집 이야기, <야성은 살아있다!>와 <심폐소생술>의 예비군 민방위 이야기를 비롯해서 <말풍선> <방에서 보내는 휴가법> 등 다방면에 걸친 그의 놀라운 식견과 번뜩이는 재치는 '역시 김영하'라는 생각에 앞서 언제 이처럼 유쾌하게 읽어본 책이 있었나 싶었을 정도로 '랄랄라' 하기에도 바쁘다.
<사진첩>을 통한 김영하씨의 추억 엿보기도 너무나 매력적이고, <방명록>이란 제명에서 알 수 있듯이 독자들과의 댓글 달기 또한 한마디로 '촌철살인'이란 말을 절로 실감할 수 있는, 짧지만 엉뚱하면서도 깊이가 있다.
<책 머리에>가 아닌 <집주인의 말>을 통해 김영하씨는 말한다.
"영영 생각나지 않는 가사처럼, 아니 가사가 생각나지 않아도 충분히 즐거운 음악처럼, 삶의 어떤 부분들은 그냥 '랄랄라'들로 처리되어도 되지 않겠는가, 하는 생각을 하던 참이었다. 좀 더 쉽게 말하자면 이 책에 실린 글과 사진, 이상한 그림들은 김영하 라는 인간의 '랄랄라'라는 말씀. (중략) 랄랄라들이 모여 있는 내 '랄랄라 하우스'에 여러분을 초대하게 되어 얼마나 기쁜지 모르겠다. 이 책(같기도 하고 아닌 것 같기도 한 책)은 친구 집에 놀러 가서 친구가 올 때까지 남의 방에서 뒹굴면서 이리 뒤적 저리 뒤적 하기 좋아하는 분들을 위해 만들어졌다. 졸업앨범도 들춰보고, 재밌는 책이 있으면 한 권 슬쩍 하기도 하고, 일기장도 훔쳐보는 그런 재미, 이 책에서 얻으셨으면 좋겠다"라고….
하지만 이걸 어쩌랴, 그 이상이다. (마음산책 / 9900원)
[인문] 악마의 사도 – 리처드 도킨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