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린 아이들이 무슨 죄 있다고.."

[심층취재] 끊이지않고 일어나는 어린이집 아동학대 사건

등록 2005.09.09 15:51수정 2005.09.09 19: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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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 원장이 생후 19개월된 여아를 때려 상해를 입힌 혐의로 구속된 대구 J어린이집. 어린이집 주변 주민들은 "멀쩡한 사람이 어떻게 아이를 때릴 수 있냐"면서 황당해 하면서도 분노했다.

원장이 생후 19개월된 여아를 때려 상해를 입힌 혐의로 구속된 대구 J어린이집. 어린이집 주변 주민들은 "멀쩡한 사람이 어떻게 아이를 때릴 수 있냐"면서 황당해 하면서도 분노했다. ⓒ 오마이뉴스 이승욱

"정말 어떻게 그런 일이 있을 수 있죠." "끔찍해요." "아이들이 무슨 죄가 있다고 그러는지…."

지난 7일 원장의 보육원생 '상습학대' 사실이 알려져 충격을 준 대구 북구의 J어린이집 앞. 이날 아파트 단지 내에서 운영돼 왔던 J어린이집 앞에는 아파트 주민들이 충격이 채 가시지 않은 표정으로 삼삼오오 모여 술렁이고 있었다.

부모들 "어떻게 어린 아이를…." 분노

생후 18개월 된 딸아이를 키우고 있는 주부 김아무개(35)씨는 "원장이 아이들을 상습 학대해왔다는 보도를 보고 끔찍하면서도 황당했다"면서 "맞벌이 때문에 딸아이를 어린이집에 맡기려고 했는데 엄두가 나지 않는다"고 토로했다.

J어린이집에 외손자를 맡겼던 주아무개(81) 할머니도 "아이를 보호해야 할 원장이 어떻게 아이들을 때릴 수 있냐"며 목소리를 높였다. 주 할머니는 "한달 전부터 외손자가 어린이집에 가기 싫다는 말을 하기에 그러려니 생각했는데…"라며 한숨을 내쉬었다.

현재 J어린이집 원장의 아동학대 사건을 수사하고 있는 대구지방경찰청에 따르면 원장 E(35·구속)씨는 지난달 18일 여자 어린이 S(19개월)양을 손과 함께 스케치북을 말아 때려 장파열을 일으키는 등 상해를 입힌 혐의를 받고 있다.

하지만 E원장의 구타는 여기서 그치지 않았다는 주장이 제기되고 있다. 어린이집에서 근무했던 이아무개(28) 교사 등 4명의 교사들이 E원장의 상습학대 사례를 폭로한 것.


이 교사는 <오마이뉴스>와의 인터뷰에서 "원생들이 잠투정을 하면서 운다는 이유로 모포로 말아 방치하거나 100일 된 아이의 발을 잡고 거꾸로 매단 채 흔들기도 했다"면서 "상습적으로 아이들을 학대해왔다"고 주장했다.

특히 경찰 조사과정에서 E원장이 아토피를 앓는 원생의 상처부위를 커터칼로 긁는 행위를 했다는 주장까지 나와 충격을 주고 있다. 하지만 경찰 조사과정에서 구속된 E원장은 S양을 때린 혐의는 일부 시인하고 있지만 상습학대에 대해서는 '전면 부인'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저출산 우려만 해서야..."아이들 맡길 곳이 없다"

그러나 최근 어린이집 '사고'가 잇따르고 있는 가운데 이번 아동학대 논란의 진위를 떠나 어린이집에 대한 불신은 높아가고 있는 실정이다.

지난 4월 대구 서구의 S어린이집(자진폐쇄)에서도 원장이 보육중이던 자매를 때려 상해를 입힌 혐의로 불구속됐다. 당시 문제가 된 원장에 대해 경찰은 상해혐의만 인정하고 상습학대에 대해서는 무혐의 처분했지만 세간에 충격을 줬다.

폭행을 동반한 아동학대뿐 아니라 부실운영 등으로 논란을 빚기도 했다. 지난 6월 서울 강북의 K어린이집이 원생들에게 먹다 남은 음식을 끓여 먹인 것으로 보도돼 말썽을 빚기도 했다. 또 대구 달서구의 한 어린이집의 경우 정원의 3배를 초과해 운영해왔던 사실도 드러나 물의를 빚었다.

대구에 사는 주부 이아무개(34)씨는 "어린이집에서 빚어지는 학대나 부실운영 사례가 빈번히 일어나고 있지만 정부나 행정기관의 대책은 없는 것 같다"면서 "최근 들어 저출산을 우려하는 목소리는 크지만 맞벌이 부부가 급증하는 추세에서 안전한 보육대책도 마련하지 않은 채 아이만 낳으라는 것도 무리한 얘기 아니냐"고 말했다.

특히 어린이집을 이용하는 원생 대부분이 생후 4개월부터 5세까지 어린 아동들이어서 내부 학대나 부실운영 등이 잘 알려지지 않는 점도 문제점으로 지적된다. 거기다 교사들도 원장의 눈치를 보느라 쉽게 내부 사정을 고발하지도 못하는 경우가 많다.

5년째 어린이집 보육교사로 일하고 있는 한 교사는 "원장이 잘못된 운영을 하더라도 해고 우려 때문에 쉽게 외부에 알릴 수 없고 만약 문제를 제기하면 다른 어린이집에도 취직이 어렵다"면서 "원장에게 문제점을 몇번 이야기하다 안될 것 같으면 어린이집을 그만 두는 경우도 있다"고 말했다.

a 지난달 18일 J어린이집 원장으로부터 상해를 입어 병원에서 수술을 받은 19개월 여아의 수술 당시 사진. 등에 붉은 자국이 선명하다.

지난달 18일 J어린이집 원장으로부터 상해를 입어 병원에서 수술을 받은 19개월 여아의 수술 당시 사진. 등에 붉은 자국이 선명하다. ⓒ 대구지방경찰청 제공

조용하게 이뤄지는 어린이집 사고들...해결책 없나

관리감독을 해야 하는 관할 기관으로서도 답답하긴 마찬가지. J어린이집의 경우 가정보육시설(5인 이상 20인 이하)로 인가를 받아 운영해왔다. 이러한 가정보육시설은 1년 1회 이상 관할 구청의 지도·점검을 받아야 한다. 북구청 여성청소년계 한 관계자는 "지도·점검을 나가더라도 아동학대 등은 내부에서 은밀히 이뤄지기 때문에 적발하기가 쉽지 않다"고 토로했다.

담당 공무원의 부족도 지속적으로 제기되는 문제다. 대구의 한 구청의 어린이집은 110여개 이상이지만 담당 공무원은 단 3명. 엄밀하게 따지면 1명을 제외하고 나머지 2명의 공무원은 보육시설 외에 다른 업무도 맡고 있어 1명의 공무원이 전담하고 있는 셈이다. 이 구청은 그나마 나은 편이라는 게 담당 공무원들의 이야기다.

이 구청의 담당 직원은 "매년 1회 이상 지도·점검을 하게 돼 있지만 직원이 태부족인 상황에서 어린이집을 한 차례라도 점검하자면 서너 달 이상은 걸린다"면서 "이런 상황에서는 면밀하게 어린이집 실태를 조사하지도 못한 채 형식적인 점검으로 그치기 일쑤"라고 털어놨다.

이런 가운데 빈번한 어린이집 사고에 대처하기 위한 보육체제의 전면적인 개선을 주장하는 지적도 있다. 민주노동당 대구시당 여성위원회는 9일 오전 기자회견을 열고 "민간위주의 보육현실에 대한 전면적인 전환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민간위주에서 공공보육으로 전면 전환해야"

이날 여성위원회는 빈번한 어린이집 사고에 대해 "정부와 지방자치단체는 보육의 공공성 강화를 외치면서 속내는 민간시장 위주로 가고 있는 현실 때문"이라면서 "이윤과 영리위주로 운영되는 민간보육시설에서는 일어날 수 밖에 없는 사고"라고 지적했다.

여성위원회는 이와 관련해 ▲보육시설 설치기준 강화 ▲시설장과 교사의 자격강화 및 교육 ▲양심선언 교사들에 대한 보호조치 ▲전면적인 실태조사와 민간보육시설 운영의 민주성·투명성 제고 ▲관리감독이 불가능한 민간중심 보육사업 탈피해 국공립 보육시설 확충 ▲지자체별 보육조례 제정 등을 대안으로 제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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