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거라! 아시아 여성 폭력이여!

[새책] 마쓰이 야요리 <여성이 만드는 아시아>

등록 2005.09.10 12:08수정 2005.09.11 13: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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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 마쓰이 야요리 <여성이 만드는 아시아> 앞표지

마쓰이 야요리 <여성이 만드는 아시아> 앞표지 ⓒ 김선영

일본 언론인이지만 일본인이 아닌 듯한 여성운동가 마쓰이 야요리가 <여성의 아시아>를 낸 지 10년 만인 1996년에 펴낸 책 <여성이 만드는 아시아>. 이 책이 9년 만에 한국어판으로 나와서 신선한 느낌은 좀 떨어지지만, 21세기 아시아 여성 인권의 향상을 위하여 우리가 더 늦기 전에 꼭 짚어보고 가야 할 책이다.

(그녀는 세계 여성운동가들과 연대하면서, 2000년 12월에 일본 도쿄 '여성 국제전범법정'을 조직, 일본군 성노예제에 대한 범죄 행위와 관련해 히로히토 전 일본 천황 등 공범 25명과 일본 정부에 유죄 판결을 이끌어냈다.)


나는 처음에는 이 책이 아시아를 이끌어나가는 여성들을 인터뷰하여 쓴 대담 책인 줄 알았다. 그러나 아니었다. 아시아 여성으로서 이런저런 피해를 입은 여성들의 실화를 다루고 있으며, 그것을 극복하여 여성 인권 향상으로 나아가려는 풀뿌리 여성운동 이야기를 다룬 책이었다.

이 책에는 한국 여성 이야기도 들어있다. 크리스찬 아카데미에서 여성들에게 불온한 교육을 했다며 반공법 위반으로 체포되어 KCIA 본부에 연행, 온몸을 몽둥이로 맞아 피투성이가 되었던 여성운동가 한명숙씨(현 국회의원) 이야기.

1986년 권인숙씨 성고문 사건 등을 계기로 여성 인권을 찾기 위하여 20개 이상의 여성단체가 힘을 모아 결성한 한국여성단체연합 이야기. 1990년 가을에 여성단체연합을 중심으로 37개 단체가 연합하여 정신대문제대책협의회(공동대표 윤정옥)를 결성하여 위안부 문제의 침묵을 깨뜨리며 국제 문제로 확산시킨 이야기.

이 책에 실려 있는 윤정옥 교수의 아찔한 회고담과 힘찬 주장이 나를 사고(思考)하게 한다.

"대학 시절 어느 날 갑자기 지하실에 모이라고 해서 가보았더니 서류에 날인할 것을 강요했어요. 집에 돌아와 그 일을 얘기했더니 아버지가 걱정하시면서 저를 바로 자퇴시키셨어요. 그 일로 인해 저도 정신대에 끌려갔을지 모른다는 생각을 늘 하게 되었어요. 비슷한 세대인 여성들의 고통을 생각하면서 그녀들을 역사의 어둠 속에 그대로 두고 잊어버리는 것은 그들을 또다시 죽이는 일이라고 생각했어요."
-<여성이 만드는 아시아> 245쪽에서

"위안부 문제의 본질은 천황 군대가 식민지 조선의 여자를 병사들에게 천황의 하사품으로 내렸다는 데 있습니다. 식민지 젊은 여성을 강제로 연행해서 병사들의 성(性) 배출구로 사용한 것이죠. 그것은 국가의 범죄이므로 국가가 책임지고 보상하지 않으면 안 되는 문제입니다." -<여성이 만드는 아시아> 246~247쪽에서


이 밖에 빚을 갚기 위해 인신매매로 끌려가 일본에서 매춘을 하다가 에이즈에 걸려 강제송환 된 태국 여성 노이(29세·애칭) 이야기는 가슴을 섬뜩하게 한다.


일본은 세계 최대의 인신매매 여성 접수국이다. 이 책에서야 태국 여성을 언급했지만 어디 그녀들뿐이겠는가. 일본 유흥가 르포 등에 의하면, 한국 여성도 꽤 많이 나가 있다고 한다. 전격적인 성매매특별법 제정과 집창촌 집중단속 이후 일본 등으로 매춘 돈벌이를 위하여 떠난 한국의 20대 초반 여성들도 적지 않을 것이다. 에이즈 감염자가 많은 나라 일본에서 에이즈라도 옮겨올까 무섭다.

이 밖에 중국에서의 남편의 아내 폭력 이야기, 필리핀 개발계획에 의해 내몰리는 여성 이야기, 이주 노동으로 학대받는 인도네시아 여성 이야기 등 여러 여성 인권 문제를 다루고 있는 <여성이 만드는 아시아>. 이 책은 <아사히신문> 기자였던 일본인 여성운동가 마쓰이 야요리가 아시아 현장을 발로 뛰면서 기록한 1990년대 중반의 리포트다. 후기에 밝힌 저자의 바람대로 이 책이, 여성들의 아픔과 기쁨, 그리고 미래에 대한 희망을 나눌 수 있는 작은 실마리가 되었으면 좋겠다.


68세인 2002년에 간암으로 세상을 등진 마쓰이 야요리는 <여성이 만드는 아시아>의 후기에 이런 명언을 남겼다.

"그녀들과 함께 '또 하나의' 아시아 여성과 남성이, 인간과 자연이, 남과 북이 더불어 잘 살아갈 수 있는 21세기를 만들고 싶다."
-<여성이 만드는 아시아> 277쪽에서

덧붙이는 글 | <여성이 만드는 아시아> 마츠(쓰)이 야요리 쓰고 정유진, 미야우치 아키오 옮김/2005년 8월 30일 들린아침 펴냄/214×153 신국판 304쪽/책값 1만2000원

덧붙이는 글 <여성이 만드는 아시아> 마츠(쓰)이 야요리 쓰고 정유진, 미야우치 아키오 옮김/2005년 8월 30일 들린아침 펴냄/214×153 신국판 304쪽/책값 1만2000원

여성이 만드는 아시아

마츠이 야요리 지음, 정유진. 미야우치 아키오 옮김,
알음(들린아침), 20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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