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머리도 빠지고 나이 들어 보이는 내 모습이 민망하여 사진 올리기를 망설였으나, 어린애처럼 반딧불을 보고 좋아하는 모습이 재미있다는 아내의 말에...지요하
다음날 6일(화요일)은 신부님이 계시지 않아 저녁 미사가 없음에도, 아내는 여교사들의 친목 모임에 참석하고 나는 성당의 레지오 주회에 출석하는 관계로 저녁 운동을 할 수 없었습니다. 하지만 다음날 7일도 성당에 미사가 없는 덕에 우리 부부는 저녁 식사 후 느긋하게 걷기 운동을 할 수 있었습니다. 다시 냉천골 산책로를 걸었고, 디지털 카메라를 휴대했지요.
25분쯤 걸은 다음 우리는 잔뜩 기대를 머금고 냉천로 산길로 들어섰습니다. 아내는 카메라를 케이스 속에서 꺼내 들고 사진 찍을 준비를 했습니다. 하지만 반딧불은 보이지 않았습니다. 산길 중간 지점, 첫 번째 공터에 이르도록 한 마리도 볼 수 없었습니다.
그래도 우리는 기대를 버리지 않고 거기에서 드라마 '장길산'의 산채 촬영장 쪽으로 방향을 틀었습니다. 어둠 속에서 고르지 않은 노면에 발을 조심하며 촬영장까지 갔지만 반딧불은 보이지 않더군요. 우리는 실망을 했고, 다음날을 기대해 보기로 하고 다시 산길 쪽으로 발길을 돌렸지요. 그런데 거의 공터까지 왔을 때 갑자기 반딧불이 나타나는 것이었습니다. 그것도 두 마리가 함께….
나는 재촉을 했고, 아내는 케이스 속에 넣었던 카메라를 꺼내어 서둘러 셔터를 눌렀습니다. 그런데 이게 웬일, 카메라의 플래시가 터지지를 않는 거였습니다. 카메라를 급히 꺼내다가 어디를 잘못 건드렸는지 말을 듣지 않는데, 어둠 속에서 확인을 해볼 수도 없고, 최근에 구입한 카메라를 익숙하게 다룰 수 있는 것도 아니고, 사람 환장하겠더군요.
내가 안타까움을 머금고 아내와 카메라를 싸잡아 타박하는 사이 반딧불들은 사라져 버리고 다시는 보이지 않았습니다. 잔뜩 실망을 안고 투덜거리며 산길을 내려오는데, 아내가 "너무 그러지 말아요. 내일이 있잖아요"라는 말로 나를 위로하더군요.
다음날 8일은 목요일로 저녁 미사가 없는 날이었습니다. 우리는 어두워질 무렵 다시 집을 나섰습니다. 전날 아내의 손끝에 채여 동영상이 찍히도록 되어 있던 카메라를 바로잡아 놓았으니 어제와 같은 일이 다시 생기지는 않을 터였습니다. 우리는 더욱 긴장한 가운데 이리저리 숲 속을 살피며 걸음을 옮겼습니다. 그러나 역시 첫 번째 공터에 이를 때까지 반딧불이는 한 마리도 보이지 않았습니다.
우리는 다시 드라마 <장길산> 산채 촬영장 쪽으로 내려갔습니다. 그리고 산채 관망대 앞까지 갔을 때였습니다. 넓은 풀밭 위에서 반딧불이들이 날고 있는 것을 보고 우리는 똑같이 환성을 질렀습니다. 반딧불이들은 여러 마리였습니다. 제각기 이리저리 나는데, 아내는 반딧불들이 가까이 올 때마다 연거푸 사진을 찍었습니다. 플래시 터지는 소리가 그렇게 듣기 좋을 수가 없더군요.
실컷 반딧불을 구경하며 즐기다가 이윽고 우리는 다시 산길로 나왔습니다. 그리고 산길을 내려오는데, 그 산길에서도 반딧불이를 여러 마리나 볼 수 있었습니다. 나는 산길을 다 빠져나왔을 때 아내의 손을 잡았고, 사진 찍느라 수고한 아내의 볼에 입맞춤을 해주었지요. 그러고 나서 이런 말을 했답니다.
"그런데 우리가 왜 이렇게 반딧불을 본 것 때문에 흥분을 하지? 반갑고 기분 좋은 것은 확실한데, 도대체 그 이유를 모르겠는 걸."
"그러게 말예요. 나도 확실한 이유를 모르겠네요. 우리가 왜 이러는지…."
"우리가 좀 이상한 사람들이 아닐까? 반딧불을 본 것 때문에 크게 감격을 하고, 반딧불을 카메라에 담느라고 애를 썼으니…."
"하여간 너무 좋아요. 오늘 저녁은 참 행복한 시간이에요."
우리 부부는 정말 행복한 마음이었습니다. 우리 고장의 명산인 백화산 뒤편 냉천골에서 반딧불을 보았다는 사실이, 가까운 생활 주변에 아직 반딧불이의 서식지가 남아 있다는 사실이 그렇게 기쁘고 즐거울 수가 없었습니다.
우리 부부는 앞으로도 매주 월요일, 목요일, 금요일 저녁마다 반딧불을 보기 위해 어두워진 시간에 냉천골을 가기로 했습니다. 오늘은 월요일입니다. 나는 오후 낮에 또 혼자 백화산을 오르겠지만 저녁에는 다시 아내와 함께 냉천골을 갈 겁니다. 냉천골에서 사는 반딧불이들을 보고, 반딧불과 함께 잠시나마 깨끗한 자연 속 저 동심의 세계로 나아가기 위해….
우리 부부는 오늘도 반딧불을 보러 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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