으악새 슬피 우는 민둥산에서...

그곳은 또 다른 삶의 터전이었습니다

등록 2005.09.13 21:04수정 2005.09.15 15: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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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으악새 슬피 우니 가을인가요
지나친 그 세월이 나를 울립니다


억새하면 떠오르는 옛 노래 중의 한 구절입니다. 일제라는 암울한 시기를 배경으로 불렀던 노래로 가을 억새를 보고 슬픈 과거를 떠올리며 눈물을 흘린다는 내용을 담고 있지요.


그 억새가 군락을 이루며 드넓게 펼쳐진 곳이 강원도 정선군 남면에 있는 민둥산입니다. 민둥산 정상에 올라보면 20만 평의 드넓은 곳에 억새가 뿌리를 내리고 부는 바람을 따라 하얀 물결이 되어 출렁이고 있습니다.

민둥산 정상 억새 군락지
민둥산 정상 억새 군락지이기원
민둥산은 아래로 낮은 봉우리를 굽어보며 우뚝 솟은 산은 아닙니다. 기암괴석이 갖가지 자태로 여기저기 솟은 산도 아닙니다. 산 많고 골 깊은 강원도에서 대를 이어 살아온 이들의 애잔한 삶의 흔적이 깃든 산입니다.

예전에 탄광 지역인 강원도 정선군 신동읍에 근무하던 당시, 민둥산이란 이름을 처음 들었습니다. 석탄 경기가 한창 좋던 시절, 탄광 지역은 산도 물도 검다고만 생각했던 내게 정선군 남면에 있는 민둥산이란 이름은 고향의 뒷동산처럼 정겨운 느낌으로 다가왔습니다.

그 정겨운 느낌의 민둥산을 처음으로 오르게 된 것도 그 무렵입니다. 하지만 민둥산은 결코 쉽게 다가서지 않았습니다. 정겨운 느낌만 가지고 쉽게 오르려 했던 민둥산 등반길에서 가쁜 숨 몰아쉬며 힘겨워했습니다. 이름에서 풍기는 정겨움과 주워들은 귀동냥만 가지고 쉽게만 생각했던 오만이 초래한 부작용입니다. 쉽고 어려운 게 사람에 따라 상황에 따라 얼마나 가변적인지를 깨달은 건 훨씬 뒤의 일입니다.

민둥산 억새밭에서 아내와 함께
민둥산 억새밭에서 아내와 함께이기원
아내와 아이들을 데리고 찾은 민둥산에서 드넓게 펼쳐진 억새의 장관에 빠져들었습니다. 20만 평이 넘는 드넓은 산 정상에 끝도 없이 펼쳐진 억새 군락지의 장관, 부는 바람에 따라 흰 물결이 되어 출렁이던 그 아름다움에 취해 감탄사를 연발하기도 했습니다.


아내와 준수
아내와 준수이기원
그 뒤로도 여러 번 민둥산을 올랐습니다. 때로는 정상까지 오르면서 대책 없이 흩날리던 흙먼지에 얼굴을 찌푸린 적도 있습니다. 억새풀의 장관에도 익숙해져서 대충 사진 몇 장 찍고 내려온 적도 있습니다.

나중에 민둥산 정상의 억새 군락지가 자연적으로 생겨난 것이 아니라 인위적인 과정을 통해 형성된 것이라는 걸 알게 되면서 민둥산 산자락에 의지해서 살아온 사람들의 고단한 삶의 애환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이곳이 억새 군락지가 된 이유는 산나물을 채취하기 위해 불을 질러 초목을 없앤 결과라고 합니다. 초목이 불에 타 없어진 자리에 억새가 뿌리를 내리게 되어, 끝없는 억새 천국이 된 것이지요.

산에 불을 놓아 인간들이 이용한 대표적 사례가 화전입니다. 수령과 힘 있는 유력자들의 혹독한 수탈을 피해 갈 수 있는 곳이 산이었고, 그렇게 산 속에 터전을 잡은 백성들은 산자락에 불을 질러 초목을 제거하고 화전을 일구어 연명했던 것이지요.

살어리 살어리랏다
청산에 살어리랏다
멀위랑 다래랑 먹고
청산에 살어리랏다
얄리얄리 얄랑셩 얄라리 얄라

우러라 우러라 새여
자고 니러 우러라 새여
널라와 시름 한 나도
자고 니러 우니노라
얄리얄리 얄랑셩 얄라리 얄라

가던 새 가던 새 본다
믈 아래 가던 새 본다
잉 무든 장글란 가지고
믈 아래 가던 새 본다
얄리얄리 얄랑셩 얄라리 얄라


고려 가요 청산별곡은 이렇게 산 속에 들어가 살 수밖에 없었던 이들의 애환을 표현하고 있습니다. 머루와 다래를 따먹으며 청산에 사는 여유로운 삶이 아니라 머루와 다래밖에 먹을 게 없었던 이들의 애환을 표현하고 있는 작품입니다. 우는 새를 보며 함께 울고, 자신들이 경작하던 산 아래 옥답을 바라보며 슬픔에 잠기던 이들의 모습이 눈물겹게 그려지고 있습니다.

지금도 산에 오르다 보면 억새가 밀집한 지역, 그 중에서 인간들이 살았던 축대와 같은 흔적이 보이는 곳이 화전의 흔적입니다. 억새의 군락지는 이들이 살았던 삶의 흔적이 확인되는 곳입니다. 민둥산 역시 예외는 아닙니다. 산나물을 채취하기 위해 주기적으로 불을 놓아 생계를 연명하던 사람들의 애잔한 삶의 흔적이 묻어나는 곳입니다.

끝없이 펼쳐진 억새의 장관
끝없이 펼쳐진 억새의 장관이기원
흙먼지 풀풀 날리는 척박한 땅, 도심을 벗어나 맑은 공기를 마시길 원했던 사람들의 사치스런 생각에 찬물을 끼얹는 그 대책 없이 흙먼지 날리는 민둥산은 삶의 터전에서 밀려난 우리네 선조들의 또 다른 삶의 터전이었습니다.

그들의 애잔한 삶이 억새로 다시 피어, 부는 바람 따라 끝없는 물결이 되어 찾는 이들의 눈길을 사로잡고 있는 곳이 바로 민둥산입니다.

덧붙이는 글 | '내 고향 명소 소개 응모' 기사

민둥산에 대한 더 자세한 정보를 원하시면 민둥산 마을(http://www.mindoongsan.com/)을 방문하시면 됩니다.

덧붙이는 글 '내 고향 명소 소개 응모' 기사

민둥산에 대한 더 자세한 정보를 원하시면 민둥산 마을(http://www.mindoongsan.com/)을 방문하시면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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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서 있는 모든 곳이 역사의 현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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