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것이 바로 ‘여행의 로망’의 결정체

긴급구호 활동가로 두 번째 삶을 살고 있는 한비야의 <지도 밖으로 행군하라>

등록 2005.09.14 11:50수정 2005.09.14 14: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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많은 이들의 가슴에 ‘여행’이라는 씨앗을 퍼뜨렸던 한비야. 대한민국의 국토는 물론이요 세계 곳곳에 숨겨진 오지까지 서슴지 않고 발걸음을 내딛었던 그녀는 ‘여행자 로망’과도 같다. 그래서일까? 그녀의 이름에서는 자연스럽게 지도가 떠오른다. 또한 한비야, 하면 지도와 호흡하며 당찬 걸음걸이를 놀리는 장면이 상상된다.

그런 그녀가 새로이 내놓은 <지도 밖으로 행군하라>에서 ‘지도 밖’을 이야기하고 있다. 뜻밖이다. 그녀가 긴급구호 활동가로 변신했다는 건 익히 알려진 사실이지만, 여행에 관한 책을 기대했던 이들에게 이 사실은 약간은 의아하게 다가올 수 있다. 그렇다. ‘여행자의 로망’이 지도 밖을 이야기하는데 어찌 쉽게 받아들이겠는가?


<지도 밖으로 행군하라>는 겉모양새만 본다면 이제껏 그녀가 말했던 테마를 비껴난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인간의 손길이 닿지 않는 곳에 순수한 인간의 아름다움이 있다는 걸 보여줬던 그녀인만큼 그녀의 작품을 제목만 보고 판단하는 건 곤란하다. 더욱이 자신의 긴급구호활동에 관한 내용을 다루었다는 사실만 갖고 한비야가 외도를 하는 것이 아닌가 하는 의심을 품는 것도 곤란하다. 속내를 살펴본다면 <지도 밖으로 행군하라>는 이제껏 그녀가 부른 여행의 노래 중에서 으뜸이라고 말할 수 있기 때문이다. 물론 ‘여행의 로망’이라는 테마 속에서 말이다.

그녀는 5년 전부터 긴급구호 활동을 시작했다. 오지를 찾아다니면서 어려움을 겪은 사람들에게 자신의 힘을 더해주고 싶었다는 그녀는 월드비전의 제의를 받고 선뜻 손을 내민 것이다. 그리하여 아프가니스탄, 잠비아, 이라크, 네팔, 시에라리온 등 세계 곳곳에서 도움의 손길을 필요로 하는 곳에 자신의 몸을 맡기게 된다.

지도 밖 그곳은 지도에는 결코 나오지 않는, 고통이 스며들어간 지옥과도 같은 곳이다. 미국이나 영국 같이 원조 잘해주는 나라들도 아예 외면하는 그곳은 희망도 없고 기쁨도 없다. 그곳에서는 인간이 하루하루를 살아간다는 것, 그것이 무의미하게 느껴질 정도로 고통의 악순환이 인간을 지배하고 있다. 뱃속 채우기에 급급한 권력자들 때문에 총성과 폭음이 사방을 뒤흔드는 그곳, 먹을 것이 없어 아사자가 속출하고 그나마 먹을 것이 있어도 허무하게 총성 소리와 함께 귀한 목숨을 떠나보내야 하는 그곳, 그곳은 분명 지도에는 존재하지 않는 외면 받는 곳이다.

그런 그곳에 인간 한비야가 갔다. 그곳에서 그녀는 무엇을 하는가? 아프리카에서는 사람들에게 희망과도 같은 씨앗을 주는 사람이 되려고 한다. 이라크에서는 식수대를 만들어 물과 사랑을 나눠주는 사람이 되려고 한다. 시에라리온에서는 그곳의 어려운 사정을 알리고 그들이 인간답게 살 수 있도록 지원금을 모금하는데 앞장서려고 한다. 그리고 네팔에서는 환한 미소를 만들게 해주는 식량을 주려고 백방으로 뛰어다닌다.

그녀는 인간이다. 그래서 마음은 예수처럼 약간의 음식으로 많은 이들을 먹이고 싶지만 그럴 수가 없다. 그래서 그녀는 신음한다. 그 안타까움은 그녀의 가슴을 찢는다. 너무나 거대한 재앙 앞에서 무기력함을 느끼는 인간처럼 그녀 역시 자신의 힘으로 어찌할 수 없는 현실에 가슴이 타들어갈 뿐이다.


그러나 그녀는 역시 인간이다. 인간이기에 그것이라도 하려고 하는 것이다. 처음은 홀로 들고 있는 그 희망의 빛이 무엇을 할 수 있을까 회의가 들고 몸과 마음이 고단하기도 하지만 작은 그 빛이 사방을 비출 수 있는 계기가 될 거라는 기대감을 갖기에 오늘까지도 긴급구호 활동을, 지도 밖으로의 행군을 멈추지 않는 것이다.

사실 말이 쉬워 긴급구호 활동에 참여했다는 것이지, 어찌 그 결심을 오늘날까지 지키는 것이 쉬웠겠는가? 살인적인 무더위 속에서도 웃음을 잃지 않아야 하고, 전쟁과도 같은 내전 속에서도 자신감을 잃지 않아야 한다는 것이 어찌 쉬운 일이겠는가? 더욱이 자신을 위협하는 총성 소리에 두려운 밤을 보내야 했던 날도 있을 정도로 목숨까지 위협을 받기도 한다. 더욱이 그녀는 나름대로 자신의 분야에서 탄탄한 입지를 쌓은 인물인데 어째서 그런 것인지 <지도 밖으로 행군하라>에서 가슴 쓰린 장면들을 보면서도 한편으론 의아할 수밖에 없다.


그런데 이유는 뜻밖에도 간단하다. 아니, 어쩌면 이미 책의 제목에서부터 나와 있는지도 모른다. 그녀가 말했던 여행, 그것은 반드시 지도상의 그곳만 찾아다닌 건 아니다. 또한 어딘가를 방문하는 것이 여행의 전부가 될 수도 없다. 여행의 완성, 적어도 ‘여행의 로망’이라는 건 내가 방문한 그곳에서 호흡할 줄 알고, 그 호흡이 나를 성장시켜 주는 것일 게다.

그녀는 비록 자신이 실수도 많이 한다고 수줍게 말하지만 한편으로는 일에 대한 자부심을 밝히고 있다. 자신이 하는 일에는 남에게 부끄럽지 않은 ‘여행의 로망’이자, ‘여행자의 로망’이 있기 때문이다. 그녀는 지금까지의 여행을 방문으로만 끝내지 않았다. 그녀는 호흡을 했다. 그래서 두 번째 삶이라고 할 수 있는 긴급구호 활동을 할 수 있었고 스스로를 성장시킬 수 있었다. 남을 위해 기꺼이 희생할 줄 아는 그것이 그녀의 마음을 이끌고 있는 것이다.

한비야, 그녀가 ‘여행자의 로망’의 상징이라면 <지도 밖으로 행군하라>는 ‘여행의 로망’의 결정체다. 이제껏 그녀가 여행을 준비하고 여행을 실천하는 것들을 보여줬다면 <지도 밖으로 행군하라>는 여행이 어떻게 삶을 바꾸는지를 보여준다. 이제껏 그녀가 눈앞에 보이는 산맥을 향해 걸어가는 것을 알려줬다면 <지도 밖으로 행군하라>는 인생이라는 산맥을 향해 걸어가는 것을 보여준다. 그렇다. 그렇기에 <지도 밖으로 행군하라>는 ‘여행의 로망’의 결정체이자 이제껏 그녀가 부른 여행의 노래 중에 으뜸이라고 밖에는 달리 말할 도리가 없다.

덧붙이는 글 | 이 글은 도서정보 사이트 '리더스가이드(http://www.readersguide.co.kr)'에도 실렸습니다.

덧붙이는 글 이 글은 도서정보 사이트 '리더스가이드(http://www.readersguide.co.kr)'에도 실렸습니다.

지도 밖으로 행군하라

한비야 지음,
푸른숲, 20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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