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잘 익었는데 급히 따다보니 풋고추도 섞여 있다. 태양초 말릴 생각에 한껏 부풀었다.김규환
이유를 한번 들어보라. 웃기지도 않게 여름엔 덥다고 야단법석을 떨더니 얼마 전부터 사람이 확 달라졌다. 쳐다보지도 않던 그를 몸을 말린다고 밖으로 나가질 않나, 고립된 영혼이라도 가볍고 살가운 가을 햇살에 쬐어 보겠노라며 집구석을 박차고 나간다.
밭으로 가서는 농약도 안치고 기른 100포기 고추가 빨갛게 익었다며 기뻐하며 날뛰었다. 자랑도 보통이 아니었다. 풋고추로 어린이집에 갖다 주고 몇몇 사람들과 나눠먹지 않았다면 정말이지 대단한 수확이 있었을 거라는 뻥까지 쳐댔다.
그러던 어느 날 태풍 매미가 오기 전부터 붉은 고추 한 무더기를 따온 다음날 사람이 이렇게 바뀔까 싶게 돌변했다. 비가 정말 철 천지 원수로 바뀌더니, '전하, 제발 해 좀 제대로 비춰주세요'하며 애걸복걸 하는 거다. 얼마나 올 한해를 엉망으로 살았는지 답은 시원치가 않았다. '전하마!'라니! 답답할 노릇이었다. 무슨 해신은 이다지도 매정한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