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카'가 접수한 세상, '필름 시대' 저문다

필름 사용량 급격한 감소 추세...필름 살아남을까

등록 2005.09.15 18:01수정 2005.09.19 00: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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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 '디카'가 몰고온 디지털 바람에 '필름시대'가 저물어 가고 있다. 시중에서 판매되고 있는 필름들.

'디카'가 몰고온 디지털 바람에 '필름시대'가 저물어 가고 있다. 시중에서 판매되고 있는 필름들. ⓒ 오마이뉴스 이승훈

경기도 일산구에서 조그마한 사진관을 운영하고 있는 박정수(48)씨는 요즘 고민이 많다. '디카(디지털카메라)'가 일반화되면서 사진을 '뽑으러' 필름을 들고 오는 고객들이 거의 없기 때문이다. 불과 4~5년 전인 2000년대 초반만 해도 한 달에 평균 1만장 정도의 사진을 인화해서 주 수입원 중 하나로 삼던 것과 비교하면 격세지감을 느낄 정도다.

증명사진이나 기념사진 촬영을 통해 근근히 사진관을 유지해나가고 있다는 박씨는 요즘 디지털인화 장비를 도입할지를 놓고 고민 중이다. 필름 인화가 사라지고 있는 만큼 매출을 늘리기 위해서는 '디카' 사진 인화 장비가 필요하지만 가격이 수억원에 이르는 게 큰 부담이다.

또 이미 디지털 사진 인화 프랜차이즈점들도 크게 늘었고 온라인 인화서비스와 집에서 전용프린터를 이용해 사진을 뽑는 '홈프린팅'이 일반화되는 등 경쟁이 치열해진 것도 박씨를 망설이게 하고 있다.

박씨는 "요즘 사진 인화를 맡기는 필름들은 일회용 카메라로 찍은 것들이 대부분"이라며 "디카가 이렇게 빨리 필름을 없애버릴 줄 몰랐다"고 말했다.

'필름시대'가 저물어 가고 있다. 필름 없이 사진을 찍는 디카가 몰고 온 '디지털 바람'은 필름의 몰락을 재촉하고 있다.

저물어가는 '필름시대'... "일회용카메라만 인화한다"

지난 5월 파산선언을 한 138년 전통의 '아그파포토'는 이런 변화를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1889년 흑백필름 개발에 이어 1936년 세계 최초로 컬러 필름을 내놓으며 세계 필름시장을 주도했던 기업이, 세상에 나온지 10여년밖에 되지 않은 디카에 밀려 무너진 것이다.


일본의 후지필름과 세계 시장의 양대 산맥을 이루고 있는 미국의 이스트먼코닥(이하 코닥)도 위기를 맞고 있기는 마찬가지다. 특히 코닥은 지난 1분기 주력사업인 필름 분야의 매출부진으로 1억4200만 달러의 손실을 기록하며 회사채 신용등급이 정크펀드 수준으로 추락했다. 코닥은 흑백인화지 생산을 중단하고 중국에서의 필름 생산 규모를 축소하는 등 대대적인 구조조정에 나서고 있다.

애초부터 디카의 등장은 필름 산업의 쇠락를 예고하는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하지만 세계 필름시장의 최고 전성기가 불과 4년전인 지난 2001년이라는 점을 볼 때 몰락 속도는 예상 밖이었다. 앞으로는 그 속도가 더욱 빨라질 것으로 전문가들은 보고 있다.


사진판촉협회(Photo Marketing Association)가 지난 2월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올해 전세계 카메라용 필름 판매량은 3억1500만통으로 2000년 7억8600만통의 절반에도 못미칠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또 사진 현상업자들도 2000년 62억달러어치의 필름을 인화했던 것에 비해 올해는 37억달러어치 인화에 그칠 것으로 예상된다.

이는 국내에서도 마찬가지다. 한국코닥, 한국후지필름 등 업계가 추정한 바에 따르면 올해 시장 규모는 1200만통 가량이다. 국내 필름 시장의 최고 전성기였던 90년대 후반에는 대략 8000만통까지 소비됐으니 그때에 비하면 15%에 불과한 수준이다. 특히 국내 필름 시장은 2003년 4500만통에서 2004년 2200만통으로 매년 50% 가량 판매가 줄어드는 급격한 감소 추세를 보이고 있다.

한국후지필름 관계자는 "국내에서는 디카뿐만 아니라 카메라폰의 보급률도 매우 높아 필름시장 축소 속도가 해외에 비해 더 빠른 추세를 보이고 있다"고 말했다.

"국내에선 디카·폰카 때문에 필름 시장 축소 더 빨라“

a 다양한 종류의 디카들.

다양한 종류의 디카들. ⓒ 이윤석

디카가 몰아낸 것은 필름뿐만이 아니다. 세계 유명 필름카메라 업체들도 고사위기에 몰렸다.

독일의 '라이카'는 지난해 순손실이 1950만달러에 달해 파산위기에 처했고, 세계 최초로 달에 착륙한 닐 암스트롱이 달에서 사용했던 카메라로 유명한 스웨덴의 '하셀블라트'도 경영난을 이기지 못하고 지난해 합병의 운명을 맞았다. '롤라이'는 카메라 업체라는 타이틀을 벗어던지고 MP3플레이어와 플래시 메모리 카드를 주력제품으로 삼고 있다. 국내에서도 삼성테크윈이 올해 필름카메라 사업을 완전히 접었다.

하지만 이러한 추세에도 불구하고 필름의 위력이 여전한 곳도 있다. 바로 영화 필름 시장이다. 국내만 해도 충무로 필름 시장은 오히려 성장세를 타고 있다.

영화 제작이 활기를 띠면서 촬영에 사용되는 필름의 양도 늘었고 복합영화상영관(멀티플렉스)이 크게 늘어 각 상영관에 보내는 프린트 필름 수가 많게는 200~300벌에 이르고 있기 때문이다. 또 필름만이 표현해 낼 수 있는 질감이 따로 있어 디지털 시대에도 필름의 위세가 여전하다.

업계 추정에 따르면 현재 국내 영화 필름 시장은 300억원 규모로 앞으로 매년 10% 성장을 할 것으로 예상된다.

영화시장은 아날로그 필름 '위세'... 필름업계 '생명연장'에 절치부심

그렇다면 필름의 운명은 어떻게 될까. 필름업계에서는 거센 디지털 바람에 시장은 시간이 갈수록 줄어들겠지만 필름이 완전히 자취를 감추지는 않을 것으로 보고 있다. 디지털이 줄 수 없는 필름의 질감을 원하는 예술가들이나 매니아층의 수요가 필름의 '생명 연장의 꿈'을 이어갈 것이라는 전망이다.

코닥의 버나드 매슨 수석부사장도 지난 2월 열린 사진판촉협회 국제회의에서 "필름이 죽어가고 있느냐"는 물음에 "필름 산업이 내리막길을 걷고 있음을 인정하지만 세계 모든 지역에서 다 그렇지는 않다"고 대답했다.

그럼에도 생존을 위한 전통적인 필름 업체들의 변신은 피할 수 없는 지상과제다. 필름을 제조하고 인화지를 만드는 '화학산업'에서 탈피해 디지털 부분의 비중을 늘리는 구조조정은 시작된 지 오래다. 코닥, 후지필름 등은 디카제조, 디지털인화 장비 보급 등 디지털 사업의 인지도를 높이기 위해 절치부심하고 있다.

후지필름 관계자는 "디카 제조, 디지털인화 장비 보급 등 디지털 부분의 사업이 활기를 띠고 있다"며 "필름 제조 말고도 사업 분야가 다양하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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