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일파 찾은 땅 110만평은 '빙산의 일각'

'조상땅 찾기운동'이 변질... "땅 팔면 환수도 어렵다"

등록 2005.09.21 17:07수정 2005.09.22 01: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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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일파 송병준 후손이 자신들 땅이라고 주장하고 있는 부평미군기지 전경
친일파 송병준 후손이 자신들 땅이라고 주장하고 있는 부평미군기지 전경한만송
"송병준, 이윤용(이완용의 형), 이근호(을사오적 이근택의 형)…."

각 지방자치단체가 벌이고 있는 '조상 땅 찾아주기 사업'으로 땅을 되찾은 후손들의 조상 명단이다. 조상은 나라를 판 대가로 축재하고 후손은 해방된 나라에서 그 땅을 돌려받고 있는 셈이다.

최용규 열린우리당 의원이 행정자치부에서 제출받아 민족문제연구소에 의뢰·분석한 자료에 따르면 지난 한 해 '조상 땅 찾아주기 사업'으로 땅을 찾은 이들 중 166명(매국형 11명, 중추원 관직 수혜자 21명, 기타 134명)이 친일파 후손일 것으로 추정되며 이들이 찾은 땅은 110만평에 이른다.

3년 중 1년 자료의 절반만 검토해도 110만평이라니...

지난 1995년 시작, 2002년부터 전국적으로 시행 중인 '조상 땅 찾아주기 사업'이 엉뚱하게도 친일파 후손들에게 악용되고 있는 셈이다. 더욱 큰 문제는 친일파 후손들에게 악용된 사례가 이날 발표된 내용보다 훨씬 많을 가능성이 높다는 것. 이번에 공개된 자료가 지난 한해 돌려받은 땅의 절반도 분석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이번 조사는 2004년 각 시도별로 진행된 '조상 땅 찾아주기 사업'으로 땅을 돌려받은 이들 중 자료확인이 가능했던 3009명(약 4182만㎡)만 대상으로 했다. 2004년 '조상 땅 찾아주기 사업'을 통해 땅을 돌려받은 7056명(1억 250만㎡)의 절반에도 못 미치는 규모이다. 따라서 '조상 땅 찾아주기' 사업 자료 전체를 조사할 경우 이번 친일파 후손의 땅찾기 현황은 '빙산의 일각'일 수 있다.

송병준·이용구·김갑순 등 친일거물 즐비


'을사오적'의 한 사람인 이완용(왼쪽), 친일단체 '일진회' 간부를 지낸 송병준(가운데)과 역시 '을사오적' 중 한 사람인 이근택(오른쪽).
'을사오적'의 한 사람인 이완용(왼쪽), 친일단체 '일진회' 간부를 지낸 송병준(가운데)과 역시 '을사오적' 중 한 사람인 이근택(오른쪽).오마이뉴스 자료사진
최용규 의원실이 지난 한해 땅을 되찾아간 것으로 공개한 친일파 후손 166명 중 분명하게 친일파로 확인된 주요 인사 12명을 보면 다음과 같다.

일진회를 조직한 송병준은 1910년 나라 파는 데 앞장선 공로로 훈1등 자작과 은사금 10만엔을 받았으며 이후 중추원 고문 등을 역임했다. 아들 송종헌도 일제에게서 작위를 받았으며 사위 구연수는 1895년 일제의 명성왕후 살해 공작 당시 행동대원으로 활약했다.


송병준의 후손들은 그동안 4건의 재산반환소송을 냈으며 지금도 부평 지역 토지 13만평에 대한 소송을 진행하고 있다. 이들은 '조상 땅 찾아주기 사업'으로 충북 지역 토지 420평을 찾았다.

1910년 은사금 3만엔과 자작 작위를 받은 이기용은 1937년 조선국방협회 발기인으로 참여했고 1945년 귀족원 의원을 지낸 친일파다. 그의 후손들은 지난해 충남지역 토지 11만2000평을 찾았다.

이근호는 을사오적 중 하나인 이근택의 형으로 1910년 남작 작위와 은사금 2만5000엔을 받았다. 그의 후손들은 경북과 충북에서 2326평을 찾았으며 안성과 수원 일대에서 땅찾기 소송을 벌이고 있다.

일진회 회장으로 '한일합방청원서'('미개한 조선을 일본이 너그럽게 받아들여달라'는 청원) 발표를 주도했던 이용구는 자위대를 조직해 의병 '토벌'에도 앞장섰다. 그의 후손들은 경기도에서 7243평을 찾았다.

친일파 후손들의 땅찾기 계속 이어져

연대미상의 김갑순. 복장으로 봐서 군수자리에 있던 1910년대로 보인다.
연대미상의 김갑순. 복장으로 봐서 군수자리에 있던 1910년대로 보인다.<동우수집>
충남의 갑부였던 김갑순은 중추원 참의, 흥아보국단 충남도위원, 임전보국단 이사 등을 역임하며 친일에 매진했다. 그의 후손들은 강원도에서 1006평을 찾았다.

지난 96년 그의 손자가 공주 등의 3만4449평을 찾아간데 이어 최근에는 손녀가 행정중심복합도시 예정지 주변인 공주·연기·부여 등에 흩어져 있던 김갑순의 땅 6273평을 찾아갔다.

매국형 친일파였던 '조선의 갑부' 민영휘의 상속인이었던 민대식의 후손은 충북에서 13만6845평을 되찾았다. 또 전쟁협력자일 뿐 아니라 '암태도 소작쟁의' 당시 지주였던 문재철의 후손은 전남에서 15만223평을 찾았다.

이밖에도 남작 작위와 은사금 2만 5000엔을 받은 이윤용(이완용의 형)과 김학진, 중추원 참의를 역임한 민건식, 남작 작위를 받은 정두화와 한상기의 후손들도 '조상 땅 찾아주기 사업'의 수혜자였다.

"땅 팔면 환수 어렵다, 재산환수특별법 조속히 제정해야"

분석 작업을 수행한 민족문제연구소의 백동현 박사는 "친일파들이 35년간 축재한 땅이 1억평 이상일 가능성도 있다"면서 "조사의 자료적 한계를 감안하면 친일파 후손들의 '땅찾기' 사례는 이번에 드러난 것보다 몇 배는 많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지난해 말부터 행정자치부에 자료를 요청했지만 몇 달이 지나서야 동명이인을 식별할 수 있는 한문 이름과 주소 등이 빠진 한글 이름만 담긴 매우 불충분한 자료만 받았다"며 행정자치부를 비판했다.

행정자치부는 이번에 개인정보 보호 등을 이유로 사업시행 이후 전체 자료가 아닌 2004년 한해 자료 중 일부만 제공했다.

최용규 의원실의 홍경선 보좌관도 "'친일반민족행위자 재산환수특별법'이 제정되기 전에 친일파 후손들이 땅을 팔아버리면 현재로서는 환수할 길이 달리 없다"고 지적했다. 이어 "정부는 법이 제정될 때까지만이라도 '조상 땅 찾아주기 사업'을 중단해 친일파 후손에게 악용되는 일이 없도록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지난 2월 24일 최용규 열린우리당 의원과 노회찬 민주노동당 의원이 공동발의한 '친일반민족행위자의 재산환수특별법'은 현재 국회에 계류돼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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