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도소 철문도 가두지 못한 국화 열정

'국화 작품의 달인' 안양교도소 김윤수 교위

등록 2005.09.24 16:19수정 2005.09.26 09: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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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화의 달인' 김윤수(54) 교위를 찾아 안양시 호계3동 안양교도소를 찾았다. 정문을 통과했지만 이내 또 하나의 높은 담과 커다란 철문이 가로막혀 있다. 담벽에는 동화 속 이야기처럼 아기자기한 그림이 그려져 있고, 육중한 철문 안에는 푸른 하늘과 흰 구름만 갇혀 있는 듯했다.


신분증과 핸드폰을 맡기고, 육안으로 식별되지 않는 도장을 손등에 찍고 출입증을 목에 걸었다. 높은 담 안에는 화초용 고추와 코리우스 등 김 교위의 손길이 머물었음직한 이름조차 생소한 갖가지 화초들이 있었다.

김장인 보안과장은 "김 주임은 소명의식을 갖고 수용자들을 지도하며 만날 후줄근한 옷을 입고 국화작품에 주력합니다. 한 작품이 탄생하기까지는 엄청 많은 일손과 열정을 필요로 하지요. 김 주임처럼 전국 지도를 작품으로 만든 사람은 아직 없습니다. 교화위원으로 진귀한 작품을 전국적으로 출품하여 아름다움을 줄 수 있다는 것이 무척 기쁩니다"라며 극찬을 아끼지 않는다.

a 작업 중인 김윤수 교위

작업 중인 김윤수 교위 ⓒ 김재경


국화로 꾸민 비닐하우스 속 별세계

정원 금빛 부처의 자애로움을 뒤로하고 또 하나의 철문을 통과했다. 300여 평 비닐하우스 안에는 꼼짝달싹도 힘들 정도로 지구 볼, 전국지도, 사람, 인형, 말, 잠자리, 오리, 별, 7층탑 등 각종 모양을 한 진귀한 작품들로 빽빽했다. 행사 일정에 따라 개화시기를 맞추고 작품 밑에 설치된 선을 따라 매고 끌어 붙이는 유인작업은 생각처럼 쉽지 않은 고난도 기술이었다.

지구 볼만 해도 5대양 6대주를 각종 품종과 색상으로 구분하는 것이 만만치 않은 작업이지만, 작거나 크지 않게 일정한 꽃송이를 유지하며 개화시키는 기술력은 경이롭기까지 했다. 노지 국화는 누런 떡잎이 생기기에 하우스에서 비 가림 재배를 해야 줄기나 잎이 싱싱하다고 한다.


김윤수 교위는 "퇴근하며 4시 30분쯤 비닐하우스에 검은 차양 막을 씌우고, 다음날 아침 출근하여 8시쯤에 걷게 돼요. 토, 일요일은 물론, 공휴일이 겹치는 날에는 아무리 생명력이 강한 국화라도 한여름 찜통열기에 삶아 놓은 듯 익지요. 국화가 좋아하는 온도는 18도 내외지만, 한여름 하우스의 온도는 족히 50도는 될 듯한데 강한 생명력은 놀랍기만 해요"라고 말한다.

더러는 더위에 고사하는 국화처럼 여기서 일하는 김 교위나 수용자들의 고생도 이만저만이 아니다. 한낮 폭염은 대형 선풍기를 돌리며 물수건으로 연신 닦아도 땀인지 물인지 눈조차 뜰 수 없을 지경이다.


a 지구볼 뒤에 김 교위가 서 있다.

지구볼 뒤에 김 교위가 서 있다. ⓒ 김재경

꽁꽁 얼어붙는 겨울의 혹한과 찜통더위의 만고풍상을 이겨낸 국화의 그윽한 향기가 고고한 자태와 함께 더욱 소중해 보인다. 들깻묵, 쌀겨, 어분, 계분 등을 숙성 발효시켜 물과 희석하여 국화에게 영양을 공급하며 사시사철 작업은 계속된다.

금방이라도 잠자리나 나비가 훨훨 날아오르고 말이 초원 위로 뛰어 다니고, 사람이 성큼성큼 걸어 나올 것만 같은 형상들을 보며 국화의 강한 생명력이 부활하는 듯했다. 만고풍상을 이겨내며 절벽 아래로 떨어질 듯한 작품, 현애의 고고한 자태가 더욱 인상적이다.

김 교위는 "전시작품을 보며 아이들이, 야! 말이다. 오리다. 이건 우리나라 지도, 하며 외칠 때가 가장 보람되고 또 감격스럽다"고.

김영호 교감은 "김 교위는 아주 훌륭합니다. 교도관으로서 화훼방면에 독보적인 존재며 보물입니다. 대형지도 하나 완성하는데도 서너 사람이 달라붙어야 하기에 상업적이나 개인적으로 이런 작품을 내긴 힘들지요"라고 말했다.

흰 메리야스 차림의 수용자가 전국지도를 철심으로 묶고 있기에 작업 과정에 대해 물었다.

"이 작업은 키를 맞추고 성장을 일정하게 하지만, 주임님이 안 계시면 어림도 없는 일이지요. 일에 몰두하다 보면 차분해지고 시간이 금방 지나가서 밤인지 낮인지조차 몰라요."

그의 얼굴은 수도승처럼 평안해 보인다.

a 전시 작품 속에 7층 탑과 우리나라 지도가 보인다.

전시 작품 속에 7층 탑과 우리나라 지도가 보인다. ⓒ 김재경


500여 작품 출품

작품 하나에 한 사람이 하루 종일 매달려도 다 끝내지 못한다고. 아무리 분주하게 손질해도 한계가 있기에 완성되는 순서대로 출전하게 된다는 작품만도 500여 점이다. 작업이 잘 못되면 애써 키운 국화가 죽기에 언제나 아기 다루듯 혼신을 다 해야 하는 작업 여건은 여간 힘든 게 아니다.

전시가 되어야 작품이지 이렇게 공들인 작품이 속절없이 죽어 갈 때는 수용자나 김 교위 또한 허탈함을 감출 수 없다. 여기서 만들어지는 작품 하나하나는 어떠한 교과서가 있는 것도 아니고, 오로지 투혼을 불태우며 창작되는 예술일 뿐이다.

국화는 크기에 따라 소국, 중국, 대국으로, 한 뿌리에 한 송이만을 키우는 일간작은 성인 얼굴보다 클 수도 있다. 바퀴가 많다 해서 붙은 이름, 다륜대작은 1뿌리에 120송이, 대작은 여덟 바퀴 한 뿌리에 300~400송이가 나온다. 그 이상의 작품도 가능하지만, 현행 익스프레스 차량으론 운반할 수 없기 때문이라고.

a 다륜대작이 자라는 모습.

다륜대작이 자라는 모습. ⓒ 김재경


알루미늄 철제에 감긴 채 괴석이나 고목 위에서 자라는 국화분재 역시 예술의 극치였다. 낚시대각을 이용해 국화뿌리를 내리듯, 김 교위의 눈에 띄면 쓰레기로 버려질 흔한 소재조차 훌륭한 도구며 작품이다.

하우스 자재 역시, 양재동 화훼공판장에서 쓰던 것을 설치한 것이다. 김 교위는 "낡고 노후한 시설에 테이프를 붙여 쓰다보니 지난 태풍에 한 개 동이 날아가 버렸다"며 안타까워했다. 남아 있는 하우스 역시 낡아서 훼손된 부분마다 덕지덕지 붙은 테이프가 흥부의 옷자락과 흡사했다.

수용자 화훼재배사 75명 배출

전북 고창 출신인 김 교위는 77년 교도관으로 입문, 줄곧 안양교도소에 몸담으며 안양시민으로 뿌리를 내렸다. 12년 전, 교정에서 원예로 보직이 옮겨지며 그는 물고기가 물을 만난 듯 국화에 미쳐 살았다.

쉬는 날이면 화훼분야 교수를 찾아갔고, 국화재배에 관한 전문서적을 탐독해 나갔다. 기술 습득을 위해 농업학교와 영등포교도소 등 현장을 찾아 두루두루 발품을 팔았다. 그 결과 교도관으로서는 처음 전국국화협회 회원이 되었다.

1994년부터 전시회에 출전, '전국국화작품경진대회'에서 대상을 거머쥐는 영광의 주인공이 되었다. 국화작품에 사력을 다한 그는 매년 특선이나 우수상을 빼놓지 않고 수상하며 국화작품의 달인으로 급부상 했다. 그는 "취미가 일터가 되었기에 후회 없는 대만족이라"며 지난 세월을 회상한다.

사회와 격리되어 자유롭지 못한 수용자들이 마음 붙이고 가정으로 돌아갈 수 있도록 열정을 쏟은 결과, 75명의 화훼재배사를 배출했다. 출소 후 여기서 배운 기술로 7~8명은 생업에 종사하며 자문을 구해 오고 있다.

나무이식이나 분재 등의 현장지도는 물론 함께 술잔을 기울이는 이들은, 경제적으로 성공을 거두었기에 뒤돌아볼 틈이 없다고. 교도관과 수용자에서 형님 아우 사이로 탈바꿈한 끈끈한 인간미는 또 다른 즐거움이며 보람이다.

a 낚시각에서 뿌리내리는 국화 위로 수용자들의 옷이 보인다.

낚시각에서 뿌리내리는 국화 위로 수용자들의 옷이 보인다. ⓒ 김재경

인터뷰 중에도 출품을 요청하는 핸드폰이 울린다. 안양시민 축제에 이어 전국 국화협회를 통해서 이 작품들은 일산호수공원, 삼성동 코엑스, 용인에버랜드, 서울대공원 등등 전국으로 출품된다.

안양시민축제(10월 7일~9일) 때 서정주의 '국화 옆에서' 시를 음미하며 만고의 풍상을 이겨낸 땀과 인고의 결정체, 국화대작을 만나 볼 그 날이 기다려진다.

덧붙이는 글 | 월간 <우리안양>에도 송고했습니다.

덧붙이는 글 월간 <우리안양>에도 송고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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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기- 인간 냄새나는 진솔한 삶을 그리고 싶었습니다. 현재,한국문인협회 수필분과 회원이며 (사) 한국편지가족 회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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